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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then again, you're not to blame
You're just a human, a victim of the insane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너의 탓은 아니야 넌 평범한 사람이고, 광기의 피해자일 뿐이야
- Isolation 中
유튜브 뮤직의 플레이리스트를 멍하니 듣고 있다 익숙한 노래를 듣게 되었다. 존 레논이 첫 솔로 앨범으로 발매했던 John Lennon/Plastic Ono Band(1970)의 Isolation이었는데, 오랜만에 들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이 잔잔히 공기를 채우고, 레논 특유의 거칠지만 매력적인 음성으로 고립과 두려움을 진솔하게 고백한다. 자신을 오롯이 그대로 드러내는 정직함의 미학에 넋을 놓은 채 음악을 들었다.
이 앨범은 첫 인트로 곡부터 가히 예술성의 극치를 달성한다. 오프닝트랙 'Mother'는 존 레논의 아동기 시절 결핍과 슬픔의 기억을 절절히 토로하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 자식을 내팽개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응축되어 목을 긁어내며 게워내듯 토하는 목소리. 들으면서 얼얼하다는 느낌을 받는 곡은 대중음악에서 이 트랙 외에는 크게 느껴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 냉소적인 루 리드(Lou Reed)도 이 곡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겠지?
그 이외에 사랑의 본질을 가장 간단한 단어들로 넌지시 알려주는 'Love'도 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트랙 중 하나인 'God'도 놓치면 안 된다. 이 곡에서 존 레논은 자신만이 쓸 수 있는 파격적인 가사를 들려준다. "god is a concept by which we measure our pain(신이란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고통을 재는 도구야)"라며 절대자 신의 개념이 인간이 만들어낸 우상일 뿐임을 지적하고, 성경 주역 마법 만트라 붓다 예수 정치가 등 모든 위인과 경전, 신념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부정한다. 우상파괴자 니체조차도 이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곡 말미에 그는 이야기한다. 내가 믿는 것은 오직 나와 요코뿐이라고. 위풍당당한 거대서사를 거부하고 제 옆에 있는 인간의 실팍한 살집만을 믿겠다는 당당한 선언에 가슴이 뛰는 것은 나 한 명뿐일까? 아닌 듯하다. 어느 평론가는 이 앨범을 '위인들의 어떤 저서보다도 진실을 전해주는 더없이 소중한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동의한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곧 아름다움의 성취와도 직결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는 위대한 앨범이다.
어제 새벽, 남태령에는 경찰 차벽이 들어섰다. 농민들이 트랙터에 끌어내려지고 유리창이 박살 났다. 비폭력으로 거대 권력에 응수해 왔던 시위대의 행렬을 폭력과 강압으로서 막아내려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언제까지 "폭력이다!(하바꾹서 1:2)"라고 소리쳐야 할까? 뉴스 기사의 헤드라인을 읽을 때마다 혹여나 현실에 일어날 뻔했던 사건들을 생각하며 모골이 송연해지곤 한다. 막스 베버가 이야기했듯이 국가란 폭력을 독점한 정치 결사체이다. (소명으로서의 정치) 그 확연한 진실을 뼈 저리게 자각하게 만든 일이 이번 계엄령 사태였다. 아무리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헌법 조문을 들먹인들, 국가의 기반은 소수가 독점한 폭력에 기초한다는 외면하고 싶던 현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 소수가 정신 나간 망상적 사고관에 뇌가 장악된 무리일지라도 말이다.
이런 부박한 정국이 이어지는 중에 다시 듣게 된 존 레논의 노래는 몹시도 동시대성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가 쓴 노랫말은 작금의 상황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Power to the people (민중에게 권력을!)", "Give peace a chance (평화에도 기회를 주란 말이야)", "Working class hero is something to be (노동계급 영웅은 존재해야만 해)" 존 레논을 두고 쏟아졌던 그 숱한 비난들. 백만장자이면서 노동계급인 척 위선 떤다는 힐난, 순진한 아나키즘적 상상력을 향한 조소 등을 떠올려 본다. 전형적인 대인 논증의 오류를 반복하는 언사일 뿐, 그의 예술에 어떤 흠집도 내지 못한다. 오늘, 독재권력의 계보에 기생해 왔던 부역자 정당의 일원들이 내뱉는 언어의 융단폭격을 받았다. 형언하기 힘든 답답함에 목이 꽉 막힌다. 또 남 탓만 반복하는 그들의 오염된 언어에 나는 당장이라도 밑의 가사처럼 소리치고 싶다.
I've had enough of reading things
By neurotic, psychotic
Pig-headed politicians
All I want is the truth
Just give me some truth
나는 신경증과 정신병에 걸린
황소고집 정치가들의 글을 읽는 게
너무나 지긋지긋해
내가 원하는 건 진실이야
그냥 내게 진실을 말해
- Gimme Some Tru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