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남성성, 할리우드로 읽다

현대 남성성 위기와 미디어 비평

by 탱귤도령
michaeldouglas-12-scaled.jpg 마이클 더글러스



미국의 비평가이자 작가인 제사 크리스핀(Jessa Crispin)의 저서 『남성들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나: 가부장제, 남성성의 위기, 그리고 어떻게 (당연히) 마이클 더글라스의 영화가 모든 걸 설명하는가(What Is Wrong with Men:Patriarchy, the Crisis of Masculinity, and How (Of Course) Michael Douglas Films Explain Everything)』 는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이 책은 개별 남성의 문제를 꾸짖는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가부장제라는 견고한 시스템이 어떻게 붕괴했는지, 그리고 그 잔해 속에서 길을 잃은 남성들의 몸부림을 추적하는 문화비평서다.


재밌는 점은 저자가 명배우 마이클 더글라스의 출연작을 사회 변화를 관찰하는 렌즈로 활용한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마이클 더글라스의 필모그래피가 현대 남성성의 위기를 어떻게 예언하고 설명하는지 유려하게 풀어낸다. 단순히 한 배우의 연기 인생을 복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부장제의 붕괴 이후 길을 잃은 남성들이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이며 '원한'의 문화를 형성해 온 과정을 되짚는다.


변화된 관계의 역학, 통제 불가능한 여성


스크린샷 2026-02-16 135330.png 원초적 본능 포스터


198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마이클 더글러스가 주연한 에로틱 스릴러들은 페미니즘이 남성에게 미친 심리적 타격을 가장 노골적으로 투영한다. 이 시기 영화 속 여성들은 남성에게 순응하는 조력자가 아니라, 남성의 삶을 파괴하려 드는 알 수 없는 괴물로 그려진다.


먼저 <위험한 정사> (1987)를 살펴보자. 댄(마이클 더글러스)은 불륜을 성공한 남성의 '보너스' 쯤으로 여긴다. 과거의 가부장적 질서 아래서 내연녀는 남자의 명예를 위해 조용히 사라져 주어야 했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한 '해방된 여성' 알렉스는 이 오래된 신사협정을 거부한다. 알렉스가 댄을 스토킹 하고 그의 가정을 위협하는 행위는 남성들에게 페미니즘이 가져온 공포—여성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를 시각화한다.


<원초적 본능> (1992) 은 남성성이 더 이상 여성에게 우위를 점할 수 없는 '포스트 페미니즘' 시대의 혼란을 다룬다. 캐서린 트라멜 (샤론 스톤)은 부유하고 똑똑하며 남성을 도구로 삼는 인물이다. 그녀는 형사 닉(마이클 더글라스)의 수사망을 비웃으며 오히려 그를 자신의 성적, 심리적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 크리스핀은 이 영화가 묘사하는 남성들의 세계가 얼마나 초라하고 추한지 보여준다. 형광등 아래 삭막한 사무실, 싸구려 양복으로 대변되는 남성의 공간은 캐서린의 우아하고 세련된 저택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영화 속 여성들은 남성 가족 구성원(아버지, 형제, 애인)을 살해함으로써 자유를 얻는다. 닉은 영화 말미에 캐서린에게 "아이를 낳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자"며 전통적인 핵가족의 환상을 제안하지만, 캐서린의 침대 밑에는 그녀가 남성들을 살해하는 데 쓰인 얼음송곳이 숨겨져 있다.


카지노 자본주의와 남성의 원한


IMG_3041.jpeg 영화 월 스트리트 (1987) 속 고든 게코


경제적 영역으로 눈을 돌리면 남성성 위기는 더욱 노골적이다. 1980년대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중산층 남성성을 지탱하던 '가족 임금' 체제를 붕괴시켰다. <월 스트리트> (1987)의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는 공동체를 책임지는 가부장제의 긍정적 측면을 버리고, 오직 숫자를 불리는 '약탈적 경쟁'에 몰두하는 새로운 남성성의 아이콘이 되었다. 성실한 중산층 아버지를 낙오자로 만들고 규칙을 어기며 자산을 가로채는 인물이 '진정한 승자'가 되었다. 많은 젊은 남성들이 게코를 롤모델 삼아 금융계로 뛰어든 현상은 현대 남성성의 중심이 '생산'에서 '축적'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스크린샷 2026-02-16 140152.png 영화 폴링 다운 속 분노한 백인 남성


이러한 '카지노 자본주의' 체제의 패자를 다룬 영화가 <폴링 다운>(1993)이다. 해고된 화이트 칼라 주인공의 폭주는 전형적인 '백인 남성의 원한'을 대변한다. 그는 국가와 회사를 위해 헌신했음에도 보상받지 못하는 원인을 자신을 해고한 자본가와 세계화 같은 구조적 문제가 아닌 이민자나 빈민층에게 투사하며 공격성을 표출한다. 크리스핀은 이 분노가 오늘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분출되는 남성들의 백래시(Backlash)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다.


포스트 가부장제 사회와 과장된 남성성


61tia+SspmL._AC_UF1000,1000_QL80_.jpg 앤드류 테이트의 알파메일 특강


가부장제의 명확한 규칙이 사라진 사회에서 남성들은 심각한 방향 상실을 겪고 있다. 오늘날 사회는 가부장제 대신 능력주의(Meritocracy)를 새로운 기준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현대 능력주의는 실제로는 이미 자산을 가진 엘리트만이 승리할 수 있는 정교한 함정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성실히 일해도 부모 세대의 안정적 삶을 얻을 수 없게 된 남성들은 극단적 도박에 자신의 정체성을 거는 '투기적 남성성'에 빠져든다. 가상화폐 열풍이나 주식 단타 매매에 남성이 압도적으로 몰리는 현상은, 돈이 유일한 남성성 측정기가 된 세상에서 하룻밤 사이의 인생 역전이 유일한 구원으로 신봉되기 때문이다.


hq720 (1).jpg 조던 피터슨의 여성학(?) 강좌


가부장제가 더 이상 실질적인 보상을 주지 못하게 되자, 남성들은 새로운 탈출구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강한 남성성을 다시 쇼핑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아버지로부터 삶의 지혜를 물려받지 못한 젊은 남성들은 온라인상의 남성성 인플루언서들에게 매혹된다. 앤드류 테이트나 조던 피터슨 같은 이들은 길 잃은 남성들에게 명확한 적(페미니즘, 좌파)을 지목해 주고 '알파 메일'이 되는 비결을 판매했다.


크리스핀은 이들을 사라진 진짜 부성을 대체하는 '가짜 아버지(False Father)'로 지목한다. 이들은 남성들에게 연대하는 법이 아니라 경쟁에서 이기고 군림하는 법만을 가르치며, 남성들을 더욱 고립된 원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남성들이 스스로를 공격받는 피해자로 규정하는 순간, 모든 책임은 외부(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 등)로 전가된다. 명백한 구조적 모순은 무시되고 희생양만이 공격받는 구도가 완성된다. 본인들을 가장 힘들게 한 건 소수 엘리트 남성들이 만든 사회구조인데 말이다.



페미니즘은 무엇을 놓쳤나



신디 셔먼 - 무제 필름 스틸 35 (1979)


저자는 페미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주류 페미니즘에도 비판의 날을 세운다. 그녀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남성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고 본다. 유리천장 깨기 중심 담론처럼 여성들이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정글 같은 자본주의 체제에 들어가 똑같이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동안, 체제 자체의 모순은 방치되었다는 것이다. 남성들에게 "착해져라" 혹은 "감수성을 키워라"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제는 개별 남성의 인성이 아니라, 인간을 오직 '쓸모'와 '서열'로만 판단하는 이 사회 구조에 있다. 남성들 역시 이 구조 안에서 소모되고 망가지고 있는데, 페미니즘이 단순히 그들을 교화와 가르침의 대상으로만 본다면 진정한 변화는 일어날 수 없다.


마이클 더글러스 이후의 세계를 상상한다


스크린샷 2026-02-16 145134.png 그레고리 크레드슨 - 무제 (구멍이 있는 방 안에 있는 남자), 2005


이 책은 마이클 더글러스라는 배우를 향한 공격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의 지각 변동을 기록해 온 초상임을 밝혀내는 작업이다. 가부장제는 붕괴했지만 평등한 세상이 도래하지는 않았다. 대신 우리는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패자는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잔혹한 포스트 가부장 신자유주의를 맞이했다.


가부장제는 결코 평범한 남성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수 엘리트 남성에게 권력을 건네주기 위해 대다수 남성과 여성의 영혼을 억압했다. 현대 남성들이 겪는 고통은 실재하지만 그 고통의 화살을 여성이나 소수자에게 돌리는 '원한 문화'는 문제 해결을 방해할 뿐이다. 그리고 능력주의라는 가짜 신화는 남성들에게 끊임없는 성취 압박과 수치심을 유발하며 히스테리적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해결책은 가부장제의 유령을 붙잡고 분노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남성들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할수록, 세상은 더욱 폭력적이고 살기 힘든 곳이 될 뿐이다. 저자는 ‘남성성’이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라고 촉구한다. 남자가 남자답지 않아도,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누군가 위에 군림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는 남성들만의 숙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성공’과 ‘권력’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강박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저자의 문체는 시종일관 냉소적이다. 남성들을 동정하지 않지만, 무조건 비난하지도 않는다. "너희가 느끼는 그 분노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젠더 갈등, 혐오의 시대 너머를 상상하게 만든다. 강성 페미니즘 입장에서 이 책은 지나치게 남성 유화적이지 않느냐는 반문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이 남초 커뮤니티에 올라온다면 역겨운 페미니즘 글이라며 격한 반응을 이끌어내지 않을까. 이것이 현재 우리의 비루한 현실이다.



A1u-Szwe2eL._AC_UF1000,1000_QL80_.jpg Jessa Crispin - What os Wrong With Men,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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