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허구성

그럼에도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

by 탱귤도령

현대 사회에서 경제학은 단순한 학문을 넘어 국가 정책과 기업 경영, 그리고 개인의 삶을 규정하는 거대한 설계도로 작동한다. 많은 이들이 경제학을 물리학이나 화학과 같은 엄밀한 과학으로 간주한다. 정교한 수학적 모델과 수식으로 빼곡히 들어찬 듯 보이는 학문적 아우라가 신비의 광휘를 더한다. 이런 대중적 신념에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인물이 있다.


알렉스 로젠버그는 듀크 대학교의 철학 교수이다. 그는 과학철학의 관점에서 인간 행동과 사회 구조를 날카롭게 분석해 온 학자로, 이번 책 『무딘 도구: 경제 이론은 더 나아질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이유 (Blunt Instrument: Why Economic Theory Can't Get Any Better...Why We Need It Anyway)』 로 현대 경제학의 이론적 토대를 재검토한다.


WHHAJournal270058.jpg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 - 상상의 감옥 (1745-1750)


과학의 탈을 쓴 형이상학


로젠버그의 논지는 정통 경제학의 자기 이해를 뒤흔든다. 그는 경제학이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경험 과학'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고 단언한다. 17세기 과학 혁명 이후 자연과학은 데이터에 의해 이론이 수정되고 예측력이 향상되는 선순환을 거쳐왔다. 반대로 경제학은 지난 250년 동안 그 핵심 이론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경제학자들은 복잡한 방정식과 노벨 경제학상이라는 귄위를 방패 삼아 자신들의 학문이 정밀 과학인 척하지만, 실상 그들의 예측력은 수 세기 동안 뚜렷하게 개선되지 않았다. 로젠버그는 이를 '과학의 탈을 쓴 형이상학'이라고 꼬집는다. 물리학이 뉴턴을 넘어 아인슈타인과 양자역학으로 진보하며 우주의 비밀을 소수점 단위까지 하나씩 벗겨낼 때, 경제학은 여전히 아담 스미스가 만든 무대 위에서 맴돌고 있다.


합리적 선택 이론이라는 허상


로젠버그가 지목하는 경제학의 가장 큰 결함은 '합리적 선택 이론(Rational Choice Theory, 이하 RCT)'에 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부터 거시경제학의 정교한 모형에 이르기까지, 경제학의 논의는 이 이론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RCT는 인간을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계산하는 존재, 이른바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가정한다. 물론 현대의 경제학자들도 인간의 인지적 편향과 비합리성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CT는 경제학의 중심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로젠버그는 그 이유를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가설에서 찾는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시장을 통해 사회적 효율성을 낳는다는 명제를 수학적으로 정식화하려면 RCT가 필요하다. 경제학에서 RCT는 단순한 모델 이론이 아니라, 시장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는 주장을 구성하는 이론적 토대에 가깝다. 이를 제거할 경우 경제학의 핵심 구조 역시 흔들리게 된다.


비판에 맞서, 경제학자들은 RCT를 이상화된 모델로 옹호한다. 물리학의 당구공 모형이 실제 기체 분자의 복잡성을 단순화하듯 RCT 역시 복잡한 인간 행동을 추상화한 도구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학에서는 모델이 현실과 다를 경우, 모델을 점진적으로 정교하게 수정하여 예측력을 높인다. RCT는 수십 년 동안 실질적 개선이 없었다. 행동경제학이 인지적 편향을 이론에 도입하여 보완을 시도했지만 경제 이론의 핵심 구조를 바꾸지 못했다.



스크린샷 2026-03-27 113528.png 에드워드 버틴스키 - 제조#17 (2005)


시장 실패의 보편성


현실 세계는 이론과 달리 독점과 과점이 지배한다. 독점 기업은 생산량을 줄이고 가격을 올려 '소비자 잉여'를 자신의 이윤으로 가져간다. 더 심각한 건 노동 시장에서의 수요 독점이다. 고용주가 노동자보다 소수일 때, 기업은 노동자의 한계 생산가치보다 낮은 임금을 책정할 수 있다. 로젠버그는 아마존 물류 센터나 월마트 같은 대형 기업들이 이러한 수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노동자를 착취하고 시장 실패를 야기한다고 비판한다.


고전적 시장 모델이 현실을 설명하지 못할 때, '게임이론'이 구원투수로 등장한다. 게임 이론 중 가장 유명한 사례인 '죄수의 딜레마'는 각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할 때, 사회 전체적으로는 가장 나쁜 결과(둘 다 중형을 받음)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주먹'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러한 딜레마는 가로등, 국방, 환경 보호와 같은 공공재 공급에서 무임승차자 문제를 일으키며 시장을 붕괴시킨다.


금융 시장의 실패와 부의 집중


로젠버그는 금융 시장에도 비판의 칼날을 들이민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금융 시장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금융 시장의 핵심 주체인 투자은행, 헤지펀드와 같은 '시장 조성자'들은 개별 투자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정보를 독점한다. 그들은 이 정보 격차를 이용해 지대를 챙기며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한다. 로젠버그는 금융사와 규제 당국 간의 관계를 '군비 경쟁'에 비유한다. 규제가 만들어지면 금융사는 이를 우회하는 더 복잡한 파생 상품을 설계하고, 규제자는 이를 쫓아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시스템 전체의 위험은 배로 불어난다.


더욱 암울한 점은 완벽하게 경쟁적인 시장도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적 불평등을 부채질한다는 사실이다. 토마 피케티가 말했듯 자본 수익률(r)이 경제 성장률(g)를 상회하면 부유한 이들은 노동 없이도 점점 부유해진다. 로젠버그는 현재의 주류 경제 이론이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인정한다. 부유층의 자산을 몰수하는 정책은 투자 의욕을 꺾어 경제를 멈추게 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부의 집중으로 인한 불평등과 경제의 양적 성장 가운데에서 줄타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


스크린샷 2026-03-01 174704.png 코엔 형제 - 시리어스 맨 (2009) 스틸컷


그럴듯한 수식


이 책은 경제학이 사용하는 수학의 본질을 무자비하게 폭로한다. 경제학 논문을 가득 채운 복잡한 미분 방정식과 라그랑지안 수식은 사실 물리적 실체를 계산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의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선호 순위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수학적 편의'에 불과하다. 물리학의 수식은 행성 궤도의 미세한 오차를 예측하고 실험을 통해 검증하지만, 경제학의 수식은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든다'는 식의 자명한 상식을 정당화하는 데 그친다.


저자는 경제학자들이 수학적 미학에 매몰되어 "지저분한 현실의 진실을 아름다운 수학적 이론화로 대체했다"는 폴 크루그먼의 진단을 전한다. 숫자로 측정할 수도 없는 '효용(Utility)'이라는 개념을 마치 물리적 질량처럼 취급하며 정교한 수학적 모델을 쌓아 올리는 학문적 관행은, 로젠버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밀한 오답'을 양산하는 과정에 다름없다.



스크린샷 2026-03-01 175020.png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 99센트 (1999)


제도 설계라는 진정한 소명


그렇다면 이 무능하고 한계가 뚜렷한 '무딘 도구'를 왜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 로젠버그는 여기서 흥미로운 반전을 시도한다. 경제학이 세상을 예측하는 과학으로서는 실격일지라도, '제도 설계(Institution Design)'의 도구로서는 대체 불가능하다. 그는 토마스 홉스의 정치철학적 견해를 빌려온다. 인간 사회에는 항상 남의눈을 피해 규칙을 어기려 하거나 무임승차를 노리는 악당들이 존재한다. 경제학은 모든 인간을 잠재적인 이기주의자로 가정함으로써, 이기적 인간의 사악함이나 탐욕이 사회 전체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이것이 바로 로젠버그가 말하는 '유인 부합적(Incentive compatible)' 제도 설계다. 경제학은 인간의 이기심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기보다, 이기심이 공익으로 유도되도록 규칙의 체계를 짜는 법을 알려준다. 경매 시스템을 설계하거나, 신장 기증자와 수혜자를 매칭하는 알고리즘을 만들거나,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통해 환경오염을 줄이는 방식 등은 경제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성과들이다. 경제학은 세상을 예언하는 수정구슬이 아니라, 이기심과 탐욕이라는 야수를 가두고 길들이는 우리(cage)에 가깝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이 '무딘 도구'가 필요하다


로젠버그가 제안하는 전환은 인식론적이다. 자연과학이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려는 학문이라면, 경제학은 우리가 어떤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묻는 학문에 가깝다. 경제학은 인간 본성을 정확히 묘사하지 못할지라도, 인간이 충분히 이기적일 가능성을 가정하고 제도를 설계함으로써 사회적 붕괴를 방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때 경제학은 진리를 밝히는 학문이라기보다, 최악을 예방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된다.


우리가 경제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경제학자들의 예측이 맞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경제학자들이 만든 아이디어의 감옥과 설계된 제도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이라는 도구는 투박하지만, 인간의 탐욕이라는 거친 원석을 다듬어 ‘문명화된 사회’라는 구조물을 세우는 데 우리가 가진 가장 현실적인 설계도에 가깝다. 그러니 귀찮더라도, 죽은 경제학자의 아이디어를 붙잡고 씨름하는 일을 멈추지 말자.



71mL3N+mUwL._AC_UF1000,1000_QL80_.jpg Blunt Instrument - Alex Rosenberg,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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