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구일 Mar 28. 2021

영수증 - 5화

혼술하며 남긴 글 쪼가리

상남자라 자부하며 인생의 모토를 남자의 '멋'이라 칭하는 나는, 인정하기 싫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인가보다. 뿐만 아니라 비교적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자부하는데, 애주가인 성향과 어울려 혼술을 제법 하는 편이다. 저 먼 북녘에 맞닿을 철원에서 스며드는 외로움과 향수병이란 갈고리에 저항하기 위해 제법 많은 소주와, 삼겹살을 입 안에 들이밀었고. 딱히 드라마나 TV, 영상물을 시청하는데 취미가 없는 - 다큐멘터리나 정보성 영상은 사실 자주 본다 - 나는 식사를 하며 종종 글귀를 메모하기도 했었다. 아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술과 고기를 탐닉하며 남긴 행복에 겨운 고뇌의 메모들인 것 같다. 블랙아웃까진 아니더라도,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키보드

손을 펼쳐 도달할 가장 빠른 기록의 경지

생각을 펼쳐 도달할 가장 빠른 기록의 경지

모든 생각을 세상에 남기고

함께 알아갈 때 세상의 모든 번목 사라지길

그것이 문화의 종점일지라.




 내가 가진 철학 중에서, '만'의 개념이 있다. 일 만 萬자, 부족하고 모자람이 없는 충만한 상태의 무언가를 나타내는데 세상은 불완전함이오, 진리는 '불완전함의 완전성 추구'라 믿는 내게 지식의 의의란 무엇일까? 인간이 이토록 호기심 많으며 굳이 정보를 기록하게 된, 그리고 그 방향성은 무엇일까 생각하다 남긴 글이다.

 생각이라는 것은 휘발성을 띄고 있다. 내가 수많은 메모를 끄적인 이유나 이 주제로 글을 발행하는 것들도 사라지려는 생각을 붙들어 놓으려 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키보드로 타자를 치는 행위가 가장 빠른 기록 행위일 것이다. 언젠가는, 굳이 이 건반을 두드리지 않더라도 인간의 뇌와 연결된 소자에 생각 자체를 저장하거나, [바이오센티니얼맨]이라는 영화에서 처럼, 기억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가 이미 인간의 뇌와 디지털을 연계하는 실험을 하고 있으며 [바이오센티니얼맨] 영화에서는 비록 로봇이지만, 주인공이 자신이 보고 녹화한 영상을 스크린에 비추기도 한다. [아이로봇]에서도 주역 로봇이 자신이 꾼 꿈을 마치 프린터와 같이 그림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

 여느 개인의 철학이 그러하듯, 두루뭉술하다. 나는 아마도 이 때 기계식 키보드에 꽂혀있었나 보다. (머쓱)



필요악

경계하고자

추상의 세계로만 남기고 싶어라



 필요악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악은 경계해야하니, 굳이 그 필요악이 없더라도 유토피아로 향할 길은 없을까? 고된 채찍질보다 거구를 춤추게할 칭찬이나 당근만으로 더 큰 발전을 이룰 순 없을까? 정말로 '필요' 악이라는 것이 있을까?

 현재는 이 생각을 넘어 '선과 악'의 명확한 경계선이 있는지 의심하는 단계이지만, 당시 사회생활을 하며 누군가에겐 나 자신도, 누구나라도 필요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적어두었다. 그러니까- 누구라도 사랑하자고, 친절히 대하자고. 화 내지 말자고.



차별

마음의 길로 겪고

스스로 판단해라

빛의 스펙트럼이나

양반(대립)의 기준이 아닌

스스로의 경험을 뚜렷하게 해야만

비로소 차별임을 깨달을테니



 인종차별에 관한 메모이다.

 본인이 깊이 알리없는 상대방의 인생에대해 가타부타하거나, 어줍잖은 지식으로 문화를 논하는 모습들을 보곤 적은 글이다. - 당시 샘오취리의 발언으로 매스컴이 시끌시끌했다. 자존심이 없냐 물을 순 있지만 일개 연예인의 발언에 수많은 사람들이 분개하고 떠들썩하는 모습이 내겐, 자존감 없이 군중심리에 떠밀려 바글대는 모습으로 비춰졌었다. 진정으로 차별을 알고 차별하지 않는 사람에겐 문제의 발언이나, 발언자 모두 우스울 뿐이다. 하지만 나도 안다. 타국의 까만 이방인, 우리를 사랑한다기에 정 주고 사랑했더니, 배신감 많이 들었을 것이다. -

 빛의 스펙트럼이라는 대목은 피부색을 뜻하며 찬반을 떠나 하나의 정신체, 경험의 알고리즘 집합체로 본다면 반목과 갈등이 없겠거니, 라는 생각으로 메모했던 글귀




당신의 알량한 거부감, 기득권의 보호인가 다름에 대한 두려움인가

알량한 자부심을 내비치는가.



 의견충돌, 정치에 대해 무지하여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여느 조직에서 겪는 충돌은 대부분 이랬다. 진정으로 공통으로 위하고 비전을 가진 사람들, 타인과 비교를 거부하고 오로지 성취만을 향한 사람들은 대개 여러 의견을 수용할 줄 알되, 그러지 못한 이들은 사사건건 반대요, 사사건건 불가능이다. 안되어를 입에 달고 오매불망 퇴근 시간과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을 온전한 자유를 바라곤 한다. 눈치를 살필 타인에 심안을 두고선.





좋은 사람

도리어

나를 좋은 사람이라 여기는 당신이

좋은 사람이다


유유상종

끼리끼리 논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내가 당신에게 좋은사람이라면,

당신은 좋은 사람이다.

적어도 내가 당신을 좋아하기에,

당신에게 좋은 사람이려 행할 것이기에.



 내 자존감이 낮은편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없이 헐벗은 그 때 - 지금도 별 반 다를바 없다만 - 날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주던, 또는 나의 친우들에게 든 감사한 생각이다. 까놓고 말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




마마보이

아내는 죽을 때까지 백년해로, 가족이 아닐 수 있으나

어머니는 태어날 적부터 단 하나의 존재다. 불변 그것이 잉태요, 낳는다, 근본이다.



 타지에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래 엄마 보고싶어 쓴 글이다.




악연은 초파리와 같아서

내 주변을 끊임없이 휘돌다 어느샌가 사라져 있다

그렇게 어느 시기 지나보내면 또 다시 내 주변을 멤돌지만

내 인생 전반에 걸쳐 그리 길지 않은 세월이었더라



 당신도 악연을 만나면 이 글과 같이 생각하길, 강한 멘탈은 재질의 문제가 아닌

깊이의 문제가 아닐까, 깊은 호수와 같이.

작가의 이전글 영수증 4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