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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구일 Mar 26. 2021

영수증 4화

오색수 - 입꽃


 "후, 고거했다고 땀이 차"

 창문 하나 없는 작은 방. 그래서인지 벽에 작은 에어컨이 불뚝 튀어나와 있건만 그것을 틀어 놓을 만한 계절은 또 아니었기에, 바람을 쐴 양으로 셔츠 단추를 두어 칸 풀고는 연신 펄럭이며 방 밖으로 나갔다.

 요리사를 마주하고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사쿠란장의 주방, 칵테일 바나 일식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쿠란장의 다찌에 손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앉아 있다.

 까만 머리카락은 아기처럼 가늘다. 빼곡이 늘어져 조용히 흐르는 시냇물처럼, 윤기도 머금고 있다. 그 사이로 힐끔 드러난 목덜미. 음식을 먹는지 볼록이 튀어나온 볼살이 우유보다 희고 샘물처럼 맑게 드러난다.

'오. 딱 봐도 미녀, 딱 봐도 귀염상!'

 주방장의 요리사들에게 인사나 하고 집에 들어갈 생각으로 테이블 바를 향해 걸어가던 차였다. 내 인기척 때문인지 그녀는 작은 어깨를 돌려 이 쪽을 바라본다.

 감, 바로 그 먹는 감의 씨앗만치 매끈하고 까만 눈망울. 식탁에 놓인 반쪽 뿐인 마끼가 입안에 든 때문인지 약간은 심통이 난 양 볼. 너무 투명한 피부 아래 발그레한 실핏줄 몇가닥, 다홍색 날치알이 한알 두알 올려진 분홍의 옅은 입가.

"이... 이랏샤이마세...!"




 그래도 나는 동네에서 필력이 좋은 편이었다. 으레 남정네들이 그러하듯, 음담패설을 늘어놓기도. 우습게도 이성에 대한 많은 경험 없이 그 표현력 만으로 친구나 동기 여럿을 흥분케하기도, 무리에서 인정받기도 했다. 아 이런 흑역사여!

 야설작가가 되는 것이 목표일 때가 있었다. 아니, 두어편의 성인소설을 출간하고자하는 욕망이 있었다. 돈을 위해.

그때까지만해도 진지하게 전업작가를 소망했었다. 비인기 작가들이 한달에 커피값을 벌기 힘들다는 사실에 돈이 되는 글은 무엇이 있을까 궁리하다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생을 연명하다보니 내게 이토록 많은 재주가 있는지 몰랐었고, 이토록 글을 못쓰는지 몰랐었다.

 제길. 내 한 달 원고료는 믹스커피 한 잔이 될 것이 뻔하다.


위 글은 '입꽃'이라 가제를 정하고 설정놀음을 하던 소설의 일부이다. 줄거리는 베일에 쌓인 고급 퇴폐업소 사쿠란장, 그곳에서 '골방꾼'으로 일하게 된 주인공 진양, 관리인, 13명의 여성들이 겪는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몇 장 쓰다보니 재밌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딱히 들지 않기도, 당시 고지식했던 내 도덕심이 외치는 배덕감에 의해 서랍 한 켠에 고이 모셔두게 된 글이다. 당시 공감각적 심상의 구현이 궁금하여 문장으로써 색감과 질감을 표현하고자 했던 흔적이 있다. 미완성 초고, 어찌보면 방대한 분량의 메모인지라 엄두가 안나긴 하지만 조각에 비유하자면, 덩어리가 좋아 언젠가 손보고 싶은 그런 글뭉치다. 내 메모들이 그러하였듯이 빛을 볼 날 있겠지! 이리도 주절주절 글을 써내려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필시 마음 저편 큼지막한 앙금으로, 미련이 남았으리라.


 야함을 표현한다는 것은, 오감에 의한 1차적인 성적 흥분보다는 내 표현욕의 해소요 사회문화로의 해방, 인류와 종의 본질을 자극하기도 한다. 어쨋든 성인소설에 대한 표현은 내게 창작욕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성욕보다 흥분되고, 하이얀 살갗이 야릇이 비칠 시스루를 들춰보는 것 보다 기대되는, 그런 일이었다. 하지만 현재로썬 그 뿐, 이 주제에 대한 글은 공책 한 권 분량이었으니 기 백여장의 소설로 출간하기엔 너무 미숙했고 역시도, 내 둔부의 의지가 밑바닥이었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고 하지 않나.


아래 메모는 입꽃에 대한 메모들 한 켠에 적혀 있던 글이다. 이번화의 분량을 위해 첨부한다.


 사람 또한 동물이기에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산다. 인간이 지구를 뒤덮고 있다라는 사실이 뛰어난 인간의 적응력을 보여준다. 사회, 문화, 자연과 과학 인간이 접하는 그 어떤 세계와 그 산물일지라도 결국 환경에 불과하다.


 두려울지라도, 눈 앞이 깜깜할지라도 결국 한 명의 인간이 사회로 내동댕이 쳐지면, 그럭저럭 적응하며 산다. 당신이 눈을 감지 않는 이상 세상은 끊임없이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며 당신을 현혹하기도, 당신에게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려고도 할 것이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느끼는 많은 이들, 사다리가 없다며 불평하는 어떤 이들은 과연 사다리 설계도를 갖고 있을까? 사회구조적으로 마련되어 있던 기존의 사다리만을 찾거나, 고집하는 일은 응석에 가깝다. 어제 오늘 열매를 따 먹던 나무에 더이상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고 계속하여 그 나무 주변을 서성이고 있으랴.

  '내 인생은 내가 주인, 나만의 것'이라는 생각에 공감한다면, 그만한 자의식이 있다면 사회의 틀 속에서 첨벙대기보다 차분하게 나무조각들을 엮어나가는 것부터 시작해 봄은 어떨까.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용기를 아무리 쥐어준다 한들 결국 한 발자국 내딛지 않는 이들, 시작하지 않는 이들은 불평어린 입술만 부르틀 뿐이다. 발이 부르트도록, 뛰지 말고 걸어라. 숨차니까.



아, 오색수는 작중 등장하는 소설가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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