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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구일 Apr 08. 2021

영수증 - 10화

카페


축구 마니아 카페펍

카페/펍 컨테이너 밀리터리, 수영장

폐차장 카페(골동품-조양방직 참고)

든바다포차 아이덴티티와 핵심, 캐릭터




카페, 나도 언젠간 카페를 차리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 운영하는 카페.

로맨틱하다. 낭만적이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디테일의 악마를 품고 있는 법, 세상만사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 퇴직금을 쏟거나 대출을 받아, 혹은 수년 간 모은 종잣돈으로 카페 창업을 했던 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사유로 다시금 기존의 일터로, 또는 절망의 길로 접어들곤 한다.


카페. 나는 사실 카페와는 인연이 적은 편이다. 카페 알바 수개월, 커피를 좋아함 정도.

위와 아래의 발언들이 주제넘는다고, 카페를 운영해 본 이들은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도 카페 창업에 대한 로망과 몇 가지 생각들이 있어 글타래를 풀어나가 본다.


나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20대 청년들에게 상담을 해주곤 했다. 직업이 그랬으니까. 당시 가슴 깊이 느꼈던 것이 '아, 대부분의 청년들이 꿈이 없구나' 였는데 마침 젊고, 건강하고, 착실한 하사관 한 명이 내 사무실에 방문했다. 군대에서 아주 쓸모가 많은 축구 선수 준비생이었다.


"중대장님 저 고민이 있습니다."


가슴 떨어지게, 오 그래 일단 앉아봐. 무슨 일이야?

복무연장이나 장기근무 지원을 해 부대에 오래 남을지, 아니면 내년에 전역할지 고민이란다.

음, 그러면 나가서 뭐할 건데? 꿈이 뭐야?

"꿈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입니다. 당장 하고 싶은 건 없는데 군인은 싫습니다."


다수의 공무원이 그러하고 사회 초년생들이 그러할 것이다. 나름대로의 미래를 그리고, 막상 일 해보니, 마냥 꿈이 업무가 되어버리니 재미없고 그놈의 디테일 속의 악마들이, 그 일을 같이하는 주변 사람들이 내 인생의 방향키를 점차 골치 아픈 방향으로 이래저래 흔들어댄다는 것을.


꿈이 없어? 그럼 하고 싶은 거나 평소에 생각해둔 것도 없어?

"방금 생각났는데, 저 원래 카페 차리고 싶었습니다."

음 어떤 카페?

"그냥 서울 쪽에 카페 하나 내고.."

"아 그런데 이게 사실 당장에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말씀드렸던 것이.. 요즘엔 카페도 레드오션이니까.."


해보지도 않고 겁낸다. 그 이전에 자신의 꿈을 그릴 줄도 모른다. 당시엔 나도 몰랐지만 나름 창의적인 사람이었던 나는 그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그래 뭐, 군생활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지. 나도 아직 그런데 뭐, 그나저나, 너 축구 좋아하지? 그래서 선수 준비했던 거잖아?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걸, 좋아하는 걸 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다. 너도 그걸 깨닫기 시작하면서 그런 감정들이 생기는 것 같은데, 

만약 전역하고 나갈 거라면 지금은 추천하지 않는다. 일단 1-2년이라도 더 해서 목돈을 마련해야지, 젊음을 낭비하는 기분 들겠다면 안정적으로 돈을 모으기엔 최고의 환경이다. 너는 아직은, 너무 젊어서 조바심이라는 게 찾아온 것일 수도 있다.

둘째로, 내가 너라면, 카페를 차릴 때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다.'


'축구 마니아를 위한 카페를 만들어보는 게 어때?'


'그냥 생각나는 대로 늘어놓자면, 너는 술을 좋아하니 펍이 좀 더 어울린다. 물론 가게 주인이 술을 먹을 순 없지만 가게 닫고 소소하게 즐길 수는 있겠지'


'인테리어는 선수들 친필 사인이 쓰인 축구공이나 유니폼들을 걸어둬도 좋고 의자를 경기장 벤치처럼 꾸미는 거야, 누가 봐도 아! 여긴 축구!라는 아이덴티티가 있게. 나 같으면 카페 이름도 선수 등번호처럼, 그냥 숫자만 쓰는 것도 생각해 볼 것 같다.'


'가게에서 어디서든 보이는 각도에 커다란 스크린을 달아, 그리고 축구 경기를 마치 라디오 틀 듯 계속 들어놔, 큰 대회가 있으면 더 좋고. 날짜만 잘 맞으면 새벽 경기하는 동안 연장해서 영업할 수도 있겠지? 너 SNS도 잘하니까 잘 활용해보고'


'아니면 어디 마당 딸린 카페를 차려, 인조잔디 깔고 작은 풋살장이랑 같이 운영하는 거야. 음료 잘 팔리겠네, 축구 실력은 자신 있으니 지도 자격증 공부해서 축구 교실도 병행해보던지'


'커피 만드는데 필요한 중고 용품도 알아봐야 할 거고, 손님들 앉을 테이블이나 의자, 부동산 사이트도 찾아보고 휴가 때 발품 좀 팔아보고 하면 견적이 나올 거야, 그만큼이 네가 군생활 열심히 해서 모아둬야 할 금액이다. 그때까진 참는 거고 아니면 직접 카페 매장에서 아르바이 트라도 해서 일하는 겸, 배울 겸 실력을 쌓아야지.'


위 주절거림 또한 내 생각에 그칠 뿐이지만,

'돼라 뿅! 해서 뿅! 되는 건 없어 하나하나 알아가 봐, 넌 잘할 거고 뭐든 할 수 있다.'


이게 그때 나왔던 축구 카페&펍에 대한 창업 아이템이었다. 그 친구는 아직 열심히 전방을 수호하고 있다.


이 상담에서 정말로 득을 본 것은 이제 보니 나인 것 같다. 덕분에 '카페'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주제로 여러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고 명소나 목이 좋은 곳, 유명한 카페를 들렀을 때 그 카페가 가진 공간이나 서비스, 커피의 맛이 전달하고자 하는 게 뭔지 한 번쯤은 생각해보게 되었다. 심지어 벽의 재질이나 창틀의 마감, 소품의 디테일까지도.


[카페/펍 컨테이너 밀리터리, 수영장]이라 메모해둔 것 역시 내 메모들이 그렇듯, 어느 날 떠오른 아이디어 중 하나인데 '내가 돈이 많다면 이런 공간을 만들어 놀고 싶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유치한가?


컨테이너 여러 동을 합쳐 만든 듯한 외관, 내부는 컨테이너 느낌을 살려 공장이나 창고처럼, 한쪽 편에 기다란 바를 설치하고 그곳에서 서빙을 한다. 테이블과 의자는 검은색 캠핑용품들로 서바이벌 느낌을 강조하고 널찍널찍하게 배치한다. 한쪽 공간에는 가스건 사격장과 다트 기계를 놓는다. 가스건은 가급적 총기의 종류를 다양하게. 그 앞쪽으로 4-5평 남짓한 수영장을 판다. 수영장은 대관 시에만 개방하며 사용하지 않을 때는 덮개를 덮어 놓는다(선택사항)


밀리터리를 좋아하는 사람, 펑키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좋아하는 사람 등을 위한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저기서 재밌게 놀 수 있는데!


다음,


[폐차장 카페(골동품-조양방직 참고)]라고 메모해둔 내용을 자세히 써보자면, 이건 간단하다.

자동차가 곧 카페 테이블이자 좌석이다. 굳이 폐차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이건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방문하는 조양방직에서 생각한 것인데, 난 그때 'Blue bird'라는 구형 버스 안에서 커피를 한 잔 했었다. 버스 좌석이 곧 테이블이자 좌석이었던 셈. - 이 Blue bird 버스가 아직도 돌아다니는 곳이 있다! - 

특유의 분위기, 어디에도 없는 공간, 적절한 서비스와 괜찮은 상품. 즉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곳은 입소문을 잘 타면 크게 번창하는 것 같다. 안다, 짧은 생각이다. 그럼에도 그 넓은 공간을 직접 꾸미고, 가꾸고 또 그곳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자신이 준비한 상품, 실력을 뽐내고 또 어느 정도 성공을 맛보았으니. 얼마나 즐거울까.



[든바다포차 아이덴티티와 핵심, 캐릭터]


우리 형은 사업가다. 서핑보드를 손수 깎아 만들기도 하고, 재미있는 아이템들을 팔기도, 트렌디한 의류를 팔기도 한다.

서로 바빠 한동안 연락 없이 지내던 어느 날, 형이 술집을 낸다고 했다. 에이, 싶었는데 어라? 진짜로 차렸다. 너무도 멋지고 '힙'한 포차를. 이름도 '든바다포차'란다. 든바다는 가까운 바다, 근해를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가게 외부는 썰렁하다. 인천 가좌동의 완전 오래된 상가건물에 자리해 '길림성'이라는 완전 오래된 중국집의 흔적을 손수 지우고, 가게의 내부엔 진짜 바다를 닮은 세상 아기자기한 소품과, 인테리어로 빚은 풍경을 담고 있다. 보름달 같은 등이 반사되어 비치는 통유리만 보아도 소주가 절로 넘어가더라.


10년이 넘는 세월, 서핑을 즐기며 바다를 사랑했고 바다를 닮아갔던 우리 형. 외모는 점점 고래를 닮아갔지만 어쨌든. 결국 '바다를 닮은 포차'에서 친구들과 좋아하던 술을 판다. 안주마저도 자기가 직접 먹어보고, 맛있을 것 같은 메뉴, 마침 시장에서 싱싱했던 재료로 만든 안주들을 과감히 내어놓는다. 이른바 '든바카세'라고. 동생인 나는, 그냥 형이 성공한 것 같다.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자연스레, 든바다포차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아이덴티티와 캐릭터, 레드오션 속에서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려나갈 줄 안다면, 유니크한 자신만의 경험담을 어떠한 형태로든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돈 계산을 떠나 도전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내가 말했던 것들처럼, 번뜩이는 무언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조바심을 버리고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는 것도, 아직은 때가 아님을 알고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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