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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구일 Apr 01. 2021

영수증 - 9화

갯벌, 나무


다음날 갈메기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간조를 바라보니

거멓이 드러난 갯벌에서의 하루도 다시 시작됨을 보았을 때

무심하게도 그곳의 생태는 아무렇지 않게 순환하면서도 벼라별 일이 다 일어나는구나

무심하게 쳇바퀴 도는줄 그 질펀한 세계, 무수한 변화 속에 있구나


영흥의 간조 갯벌

이른새벽 갈메기의 발자국도

생기의 물기가 남은 미역줄기도 다시금 돌아온 태양에 말라간다

(저녁 만조에 또다시 활기를 되찾을지언정)


시는 사색에서 나온다 세상을 표면으로만 느끼는 자여 경각심을 가져 인생을 양파와 가히 여기느라



 회사 워크숍 때의 일이다. 전날 적당한 취기에 잠들고, 느즈막한 아침 끝자락에 바람을 쐬며 바싹 마른 비강과 목구멍을 바닷바람에 적셔볼 양으로 테라스 앞에 서니,

간밤의 만조를 지나 아침의 간조가 시작되고 있었다.

 분명 어제 물기를 충분히 머금고 통통히 초록빛을 내뿜던 해초들은 다시금 오늘의 태양에 말라들 것이오, 밀려드는 물살에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었던, 탁한 해수면 아래로 몸을 가렸던 조막게들은 다시금 빨빨거리며 그들만의 치열한 경쟁을 기지개켜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기똥찼다. 전날 신명나게 놀아놓고 아침 갯바람부터 왜 이런 감상에 젖었나, 아마도 만물을 사랑하여 삶의 가르침을 얻으려는 생각이나 세상의 시작, 흐름 또는 끝을 이해하고자하는 생각일까.

 나 또한 그 뻘을 먼 발치에서만 보았으므로, 그 콩게들과 갈메기와 해초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진 모르므로, 양파의 심지에 도달하기엔 멀었다 여기었다. 그리고 라면을 끓여먹었다.




같잖게 아는 것, 그 같잖음이라.


저 머른 산을 바라보면,

끝없는 정적이지만

다시금 들여다 보자니

수 없이 많은 잎새 손을 흔든다.

다가가야, 비로소

인사를 건네고 있음을 알게 된다.



 철원에서 생활하며 초목을 질리도록 보았다. 그들은 내게 한그루 쉼터가 되어주기도, 선선한 바람과 함께 초록 시원함를 선사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적이 되어 삭아 바스라지는 낙엽으로 나의 일터를 어지럽히기도, 물귀신의 손아귀 같은 덩굴로 울타리를 잡아당기기도 했다.

 산은 산이오, 물은 물이로다. 이따금씩 지척의 산이나 머나먼 곳의 산을 하염없이 바라볼 때 있었다. 그래 멍때렸다. 특히 여름의 산은 빽빽한 초록빛으로 가만히 바라볼 적엔 묘하게 들뜬 기분을 선사하여 신이 나게 했는데 대개의 경우 그저 산을 하나의 배경으로 초점을 뭉개 바라보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시원한 바람과 함께 지척의 언덕들과, 산이 소리했다. 치르르- 하고.

 그렇게 초목들이 나를 불렀을 때 비소로, 나는, 내가 바라보던 빼곡한 그들이 내게도 손을 흔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의 집합을 그저 멍-하니, 같잖게 보고 있었나보다.

 하나하나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수년을 자라왔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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