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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구일 Mar 31. 2021

영수증 - 8화

자기합리화의 덫


잭이 마을에 당도한지도 한 주가 지나가는데 악마라는 것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마을 외곽이나 인근 폐허, 하수구 등 흔히 악마가 즐겨 찾는다는 장소들을 뒤져 보았지만.


어느 날 약방에서 마주한 신비한 노인, 자칭 악마를 물리쳐 본 적이 있다 주장하는 이 노인에게 자신이 악마 사냥을 하고 있다며 조언을 구하는 잭.


노인은, 악마는 바로 우리 뇌 안에 있다고 말한다.




 내 머릿속에는 꼭 써 내려가고 싶던 소설로, '뇌 안의 악마'라는 제목의 글 뭉치가 있다. 물론 그에 대한 메모도 있으니 영수증을 통해 밝힐 날이 올 거라 예상하기도 한다.


뇌 안에는 다섯 마리의 악마가 살고 있는데 각각 무지, 왜곡, 효율, 충동, 한계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들 악마는 말 그대로 뇌 안에 있기에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내진 않은 채 우리 삶에 녹아들어 나의 행동을 조종하고 그 대가로 인격과 시간을 갉아먹는다. 흔히 영혼을 갉아 먹힌다고 하지.


왜곡이라는 악마는 꼽추에 온 몸에 돌기가 돋아 있으며 손발가락은 역방향으로 굽어 기이한 형상을, 효율이라는 악마는 전신이 매끄러운 여성의 모습으로 찰랑이는 흑빛 긴 머리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코가 없어 밋밋하게 보인다. 그녀의 새파랗게 오므린 입술 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마치 상어의 이빨처럼 빼곡하다.


이 왜곡과 효율이라는 악마는 서로 사랑하여 합리화를 낳는다.


이 합리화라는 녀석이 두려운 이유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생각의 근원을 깊이 추적 해나가지 않는 이상 내가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인지,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꽤나 친근한 인상의 합리화는 척 보기엔 그것이 악인지 선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다.


우리는 사소한 일부터 중대한 일까지 합리화의 늪에 버무려서 살아간다.

나는 과거 꽤나 애연가였으며 '헤비 스모커'라는 단어 자체를 좋아했었다. 금연을 시도해보았던 이들이라면 내가 말하는 것에 '아 맞아'라며 크게 공감할 것이다.


'시나브로'라는 유명한 담배가 있었듯 담배는 정-말 천천히 중독된다. 심지어 중독되고 나서도, 내가 담배가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습관에 의해 불을 당기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은근하게 우리의 중추신경계를 자극한다.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 이때 우리는 자기합리화를 시작한다.


담배를 시작하며 "하루에 한 대 정도는 괜찮아"

담배를 연달아 피우며 "나 아직 중독까진 아니야"

담배를 안 끊냐는 질문에 "내가 마음만 먹으면 끊을 수 있어."

술자리에서 "술 마실 때만 가끔 펴."

일터에서 "집에서는 안 펴."

고된 하루를 보내고 "오늘은 한 대 피고 자야겠다."

담배를 끊으며 "이것만 딱 피고 끊는다."


당신은 담배를 원하고, 피우고 싶고 중독된 것뿐이다.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무의식과 의식의 영역을 넘나들며 니코틴과 타르를 혈관 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담배를 끊고자 하는 이들은 저 합리화들에 앞서 본인이 담배의 중독성에 대해 인내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조금 독특하게도 "나는 담배 원래 안 피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담배와 멀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사람이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시시때때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 하니까, 그리고 담배의 고약한 냄새가 주는 피해가 내가 담배를 피워 얻는 미미한 쾌락을 상회하므로.


이 외에도 자기합리화에 대해 크게 배웠던 일화가 있다.

내가 회사에서 - 정확히는 군에서 - 큰 잘못을 했을 때가 있었다. 아마 내 인생의 가장 큰 잘못 중 하나였을 것이다. 포 차 떼고 결과적으론 나도 잘못한 것이 맞다. 하지만 법적으로 위반한 사항 없었으며 사건의 시발점 또한 타인으로부터 기인했으며, 내가 저지른 잘못 보다 내 주위에서 일으킨 문제, 죄가 더 컸다. 사건의 원인과 결과들을 요목조목 떠올려가며, 그렇다고

믿고 있었다! 내 주변의 모든 인관은 나로부터 기인한다는 사실을 간과했으며- 남 핑계 대면서 허우적 대고 있던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부끄럼을 감당할 수 없어서인 듯, 스스로를 숨기고 숨겼던 것이다.


잘못은 잘못, 당시 나는 하소연하며 내 잘못을 가리려 했다. 처벌이 두려웠고 타인의 잘못으로 시작된 문제인데 책임을 떠밀고 나를 죄인으로 몰아가는 상황이 너무도 수치스러웠다. 평소 정의를 외치며 공명정대함으로 비추어지던 내 인격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도 싫었다. 회상으로 마주할 뿐인데도 징그럽고 역겨운 나의 흑역사. 그것은 폭언욕설에 대한 기억이다.


이때 내 상관이 나에게 알려준 가르침, 이게 정말 컸다.

"자기합리화하지 마 이 자식아!"

조직에서의 내 공로, 나의 업무능력, 평소 나의 행실을 모두 알고 있는 그분마저 내게 이런 소리를 했다는 것에 당시 크게 분노하였고 나는 망했구나-라는 어린 마음이 들었다. 정말 분하고 수치스러웠다.

 '자기합리화'라는 말을 들은 내 뇌 안의 악마들은 보이지 않던 자신의 모습을 들키자 크게 공분하며 '아니야! 저자는 틀렸어! 누구도 내 상황을 정확하게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해!'라고 고래고래 외쳐댔다. 

 거진 한 달, 두 달. 나는 '자기합리화하지 마'라는 말을 인정하지 못했으며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편협한 결말이 적인 종이 쪼가리를 꼭 쥔 채, 나만의 논리에서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내가 놓친 게 무엇인지 골똘히 그리고 쓰리게 생각했다.


어느새 많은 세월이 지났다. 그때의 그 가르침은 나를 한층 더 성장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아직도 그분께 크게 감사한다.

잘못을 두고도, 스스로 정의롭고자 공명정대하고자 목표한 나도 부족한 인성으로 인해 스스로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걸, 돌아보건데 그러한 잘못들에 대해 합리화하며 유야무야 넘어간 적이 많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지금도, 아직도 그리고 계속 합리화하려 한다는 걸.

 난 내 안의 악마들을 발견한 것이다. 


 내 의지가 약한 것인지, 이들을 무찌를만한 무기가 완성되지 않은 탓인지 아직 합리화의 시험에 들거나 때로는 패배의 깃발을 들기도 한다.

이른 시각 잠에서 깨 놓고 '아직 너무 일러, 한 시간만 더 자자'

알람을 연장하며 '어제 피곤했잖아 10분만 더...'

운동을 하루 거르고는 '오늘 일이 힘들었으니 괜찮아'

글을 쓰기로 해놓고는 '창작의 고통, 오늘은 시상이 떠오르질 않네'

저명한 책을 깨작이며 읽다가 '내 취향이 아니야, 이거 또 케바케(Case by case)잖아?'


 이래저래 글을 남기지만, 나도 아직 인생이란 길을 보다 똑바로 걷고 발걸음에 힘을 주기 위해 나 자신을 다듬어나가고 있다.

 

우리는 왜 합리화하려들까? 우리에게 비추는 세상에 대해 보다 간결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편집해 내기 위해서? 유전적으로 각인된 보호와 안정의 대상을 항상 나 자신에 두기 때문에? 갈등에 있어 나에게 불리한 변수를 사전에 차단하여 사고하매 뇌에서 소비하는 열량을 보존하는데 보탬이 되려고?


 합리화, 당신을 진정으로 돌아보지 않는 이상, 자신은 물론 상대의 진심 어린 충고와 사랑으로부터 조차 자신을 닫아버릴 수도 있는 무서운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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