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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구일 Apr 20. 2021

영수증 - 12화

향, 향수


미래가 정해져 있는지 제발 좀 알려줘



우리는 선택의 연속 속에 살아간다. 그 선택은 정해져 있는 것일까? 오늘 내가 알코올의 유혹이나, 단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타자건반을 두드려 생각을 완성해 나가는 행위는, 몇 시, 몇 분, 몇 초 단위의 그분의 거룩한 계획이 발현하는 것일까?

인류의 뇌로는 아직 인지하지 못할 세상의 모든 사건들을 연산해 낸다면 우리는 답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역으로, 현재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긍정을, 행복을, 이 키보드를 좀 더 두들기는 것을 선택했다. 시옷 건반을 누르고, 다음은 'ㅏ'건반을, 다음은 리을 건반을, 다음은 'ㅏ', 그리고 이응 건반을.

현재와 나, 앞으로 펼쳐질 나의 인생을 사랑할 것이다.

또한 내일의 나에게 사랑받기 위해 사랑스러운 오늘을 보내리라.



Rose Magnum - White Rose/Tea Rose/Cedar wood/Bergamot/Spear 

Eros' Bullet - 달지만 무겁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면서도 망글망글해야한다. 메론, 미르, 푸르티

살라카둘라/메치카불라 레이어드 향수 - 신데렐라의 화려한 드레스(Lily), 크리스탈 구두(Muget, Clove, Marin)/백마탄 왕자(Musk, Bergamot, Ambergris, Rose)

Bitcoin Rug - Jasmin/Chocolate/Musk/Jasmin Royal/Herb/Pine/Grape Fruit

Mint/Rosemary/Clove/Ginger

Nose Blood - Lily of the valley/Meron/Frankincense/Mirrh/Vanilla

White Harpy plumage - Lilac/Lemon/Orange/Marine/Sea scent/Rose Wood/Moss/Coconut/White Musk

Pause - 미르/메론/백단향



향수.. 좋아하세요? 듣기만 해도 설레는 문장이다. 나한테서 좋은 향이 나나? 갑자기 왜 묻지? 한번 쯤은 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게 해주기도, 자신에 대한 관심을 유추할 수 있기도 하는 질문이다. 기출 변형으로, '향수 어떤거 쓰세요?'라는 돌직구성 멘트와 '플로럴 향 좋아하시나 봐요, 이게 무슨 향이더라..' 고득점 멘트 등이 있겠다.


나는 향수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냄새가 갖는 오묘함이나 무형의 아름다움이 좋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향들이 좋다. 내가 키웠던 개들이 하루종일 킁킁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떠오르는데, 아. 이젠 내가 세상을 향해 킁킁거리며 좀 더 새롭고 멋진 향을 찾고 있다. 향이란 내게 또다른 표현의 수단이 되었고 나는 요즘 조향공부를 하고 있다.


냄새란 무엇인가? 상식선에서 대답하자면 위험을 감지하기 위한 도구이다. 아니그런 오감 어디있겠냐만, 인간이 유독 인분냄새와 흙냄새, 부패 변질된 악취에 민감하고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는건 위생적으로, 전염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며 이성의 살냄새, 체취나 땀과 같이 성기나 땀샘 등 기타 분비선에서 새어나오는 향에 매료되는 이유는 번식이라 불리우는 인간 종의 주요한 목표 과제를 달성하기 위함일 것이다. 애초에 내가 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 시발점 또한 이성에 대한 관심이었다. 솔직하게.


다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추구하는 가치나 생각들을 향이라는 매개체로 표현하기로 했다. 기본적으로 내게 향수는 매너이자, 매력이다. 그리고 가장 좋은 향수는, 새로운 좋은 냄새이다.


Rose Magnum - White Rose/Tea Rose/Cedar wood/Bergamot/Spear

우리 누나의 영향으로 인해 나는 몇몇 니치 향수 - 독특하고 마이너한 분야를 뜻하였으나 요즘은 고가의 향수를 뜻하기도한다. - 를 즐길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사랑했던 향수는 딥디크사의 '오 로즈'이다. 너무 좋아해서 샤워를 마치고, 자기 전에 뿌려보기도 했다. 그 사치스러운 경험은 내 감정을 빛나게 해주기도 했다! 더 기분 좋은 사실은, 이 향수를 소개하는 글을 SNS에 올린적이 있는데 담당 조향사가 댓글을 남겨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팬심일까, 마니악한 사랑일까.

이 '오 로즈'의 향은 고운 생장미가 흩뿌려지고 마치 얇은 실크의 형태로 은은하게 지속된다는 점이다. 풍부한 즙과 수분을 머금은 연분홍 장미빛과 연하디 연한 초록의 줄기가 내 곁을 가벼이 멤도는 듯하다. 역시 장미는 향장의 여왕이라 불리울만하구나, 이때부터 장미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향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장미향이 가슴팍과 뇌리에 꽂히는, 마치 권총의 작은 총구로부터 날카롭지만 매혹적인 장미 꽃잎들이 터져나오는 그런 향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이것은 그 향을 위한 메모다.


Eros' Bullet - 달지만 무겁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면서도 망글망글해야한다. 메론, 미르, 푸르티

사랑의 화살을 쏘아대는 큐피트라는 남신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마초 성향이 짙으며 테스토스테론이 적절히 다량 분비된 사춘기를 겪어온 난 큐피트가 가진 어리고, 중성적인 이미지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랑의 발현이라는 그 몽롱하고 망글망글한 - 부드럽고 말랑하면서 어딘가 올록볼록하게 솟아오른 - 설렘의 느낌이 마음에 들어 생각해 본 향이다. 그리하야 이름도 에로스의 총알.

메론으로 파스텔톤의 달달함을, 미르의 약간은 들뜨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시더우드 아틀라스의 묵직하면서도 몽환적인, 건강한 기운을, 베티버의 시원하고 상큼하지만 차분한 나뭇결향을 빌려와 만들어 보고 싶다.

건장한, 어느새 어른의 분위기를 풍기는 청년 에로스가 강렬한 사랑의 아드레날린을 담아 쏘아대는 마법의 총알을.


살라카둘라/메치카불라 레이어드 향수 - 신데렐라의 화려한 드레스(Lily), 크리스탈 구두(Muget, Clove, Marin)/백마탄 왕자(Musk, Bergamot, Ambergris, Rose)

귀여운 발상이다. 레이어드 향수에 대해 생각해보니 문득 떠오른 것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 여성향수와 남성향수의 뚜렷한 구분은 없다 하지만 확실히 여성의 이미지를 품거나 여성이 선호하는 향기, 남성미를 떠올리게 하거나 남성에게서 풍겨졌을 때 시너지가 나는 향기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에 떠올린 향으로 신데렐라의 곱고 새하얀, 그러면서도 열 두시의 마법을 흠뻑 뒤집어 써 쨍하고 화려한 이미지를. - Cinder, 시더 우드 향을 끼얹지 못하는 것에 약간의 아쉬움을 가지면서 - 백마탄 왕자의 당차고 고귀한 느낌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향의 조화 레이어드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한 없이 불확실하다. 실험해보고 싶다.


이하 3가지 향은 4대 플로럴 향을 좀 더 독특하게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하여 떠올린 생각들이다. 부끄럽지만 조향 수업의 과제들이다. 그나마 성실하고 알차게 과제하려 했다는 점은 스스로 칭찬할만 하다.


Pause - 미르/메론/백단향

누군가 스쳐지나갈때, 밀폐된 공간에서 확- 하고 끌리는 향을 맡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는 이게 무슨 냄새지? 싶은 때가 있었을 것이다.

동양인은 체취가 적으면서도 후각이 민감한 인종에 속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향에 대한 연구나 역사가 여타 국가들에 비해 짧은 편이고, 향수를 좋아하고 자주 뿌리는 사람들은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직장이나 어른들을 마주한 자리에서 '너 향수 뿌렸니?', '오늘 어디 좋은데 가나봐?'라는 식의 거칠은, 까칠한 질문을 받아봤을 것이다. 향에 대한 경력을 떠나 난 우리나라가 아직 향에 대한 인식이 옅은 부정을 띄고 있으며, 조향 기술 또한 높은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여긴다. 향수 후진국이다.

그럼에도 유독 밥을 좋아하고 대표적인 인삿말이 밥은 먹고 다니냐, 언제 밥 한 번 먹자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Fruity, Citrus 계열의 달달한 향이나 Woody향처럼 발향이 적은 향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낮은 편이다. 즉 먹을 수 있는 것, 차분하고 나대지 않는 것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이랄까. 그래서 떠올린 향,


머릿 속에 있는 상상, 글로 적어, 직접 섞어보고 만들어내지 않는 이상


상상하기도 힘든 향의 영역, 오히려 오감 중 나머지 영역의 도움을 받아야지만 비로소 표현될 수 있는 향이란 존재가 요즘따라 더 재미있다. 인간보다 후각이 몇배는 뛰어난 개, 돼지, 코끼리와 같은 동물들이나 바닷속에서도 후각으로 먹잇감을 찾는 상어들은 도대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걸까? 다른 차원의 영역을 감지하거나 인지할 수 있는 세상의 형태나 틀이 우리와는 상당히 다르진 않을까? 이런 순수한 호기심을 포함하여 맛난 향, 독특한 향을 만들어 오히려 여타 감각들을 보조하고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그런 향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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