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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군 Apr 22. 2020

아이의 행복한 발걸음이 환영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대

#층간소음 #배려 #관용

 생후 두 돌이 다 되어가니 홍시의 움직임은 딱 두 가지로 분류되는 것 같다. 첫 번째는 누워서 움직이지 않는 것 (잠자는 시간), 두 번째는 뛰어다니는 것 (잠자는 시간 빼고 전부). 요새 느끼는 건데 그 중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조금 과장하면 언제부터인가 홍시는 걸어 다니는 방법을 까먹은 건 아닌가도 싶었다. 집 안에서든 밖에서든 뛰는 게 기본 세팅이 되어버렸다.


사실 아이가 뛰어다닌다는 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건강한 신체와 맑은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 아닌가. 부모가 되어보니 자식이 건강하고 밝게 성장하는 것만큼 세상에 즐겁고 행복한 일은 없다는 것을 하루하루 느끼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축복받아 마땅한 아이의 즐거운 발걸음이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대한민국 주거문화가 공동주택(아파트, 빌라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아이의 발걸음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닌 부모의 근심 걱정이 된 건 아닌가 싶다.

 우리 역시 현재 아파트 22층에 살고 있다. 그렇다 보니 홍시가 집에서 뛰기 시작하면 와이프와 내 가슴도 같이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으로만 가득 찬다. '저렇게 뛰면 아래층에 사시는 분들이 층간소음으로 많이 힘드실 텐데...' 그리고는 결국 뛰어노는 홍시를 잠시 자리에 앉히고, 집에서 뛰면 안 되는 이유를 차분히 설명해준다.

 "홍시야 그렇게 집에서 뛰면 우리 아래층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좋아하실까?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홍시를 엄청나게 좋아하시는 아래층 할머니, 할아버지 기억하지? 홍시가 집에서 뛰어다니면 아래층에 소리가 크게 들려서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시끄러워서 잠도 못 주무실지 몰라. 그걸 원하는 건 아니지? 우리 이제 집에서는 조금만 살살 걸어 다니고, 이따 밖에 나가서 놀자!"

 아직 말도 못 하고,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두 돌도 되지 않은 아이지만 같이 거실에 앉아서 차분히 설명을 해주면, 신기하게도 마치 알아듣는 것 같이 잠시 생각을 한 다음 뛰지 않고 걸어 다닌다. 물론 오래가지는 못하고 잠시 후면 다시 뛰어다니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항상 이야기해주고 있다. 분명 이렇게 이야기해주는 게 하루 이틀 쌓이면 아이도 알아들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한창 뛰어놀고 싶은 아이한테 미안하지만 공동주택에 살기 위해서는 이웃과 트러블이 생기지 않도록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뛰는 아이를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잠시 아래층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해 말을 좀 해보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정말 축복받았음에 틀림이 없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할머니, 할아버지를 뵙고는 하는데 그때마다 할머니께서 이야기하신다. "우리 집 위에서 신나게 뛰는 애가 너였구나!" 그러면 내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씀드린다. "할머니 할아버지 너무 죄송해요. 집에서 주의를 주고 있는데 잘 안되네요. 많이 시끄러우셨죠. 앞으로는 아이가 집에서 뛰지 않도록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면 할머니께서 바로 말을 이어나가신다. "애들이 뛰어야 애들이지. 우린 괜찮으니 괜히 애한테 뛰지 말라고 혼내지 마, 애 기죽이지 말어!" 처음에 할머니께 저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가슴이 울컥할 정도로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가끔 만나면 항상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우리가 좋은 이웃분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정말 운이 좋게도 좋은 이웃분을 만났지만, 층간소음은 요새 사회적으로 많은 이슈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에서 뛰어놀고 싶어 하는 홍시를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때로는 조바심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미안하기도 하다. 마음 같아서는 단독 주택으로 이사 가서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고 싶지만, 회사를 다니는 맞벌이 부부로서 사실 그게 쉽지만은 않다. 회사를 다니려면 대중교통이 중요하고, 그런 곳을 찾다 보면 자연스레 공동주택에서 살게 되는 것 같다.

 아이들의 발걸음이 언제부터 이렇게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나 싶다. 그리고 왜 아이가 있는 집 사람들이 아파트의 1층을 선호하는지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우리도 아마 다음에 이사를 가게 된다면 꼭 1층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1층으로 이사를 간다고 해도, 결국 중요한 건 내 마음 가짐인 것 같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나 스스로에게는 아래층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은 "관용"을, 그리고 내 아이에게는 남을 생각할 줄 아는 "배려"라는 단어를 알려줄 수 있는 부모가 되도록 노력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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