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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배변훈련의 끝이 보이는 것 같다

오늘은 팬티 입고 잘래요

by 허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여러 가지 행동발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우리 아이의 행동발달이 늦지는 않은지, 혹은 너무 빠르지는 않은지, 늦다면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빠르다면 문제 되는 건 없는지... 항상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발달사항 중에서 아이의 말하는 속도와 배변훈련 이 두 가지는 특히나 부모로서 신경이 더 많이 쓰이는 부분이다.


종종 글을 쓰면서 이야기했는데 정양과 나는 이런 행동발달의 속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을 안 하는 편이다. 우리가 느낀 홍시는 세상을 천천히 살아가는 아이이기에 행동발달, 언어발달 등에 대해서 최소한의 기준만을 세워놓고 홍시가 스스로 터득해 나갈 수 있도록 조심스레 도와주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우리는 홍시 인생의 숨은 조력자의 위치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최근 홍시의 입에서 감격스러운 말이 나왔다.


"아빠 오늘은 팬티 입고 잘래요"

"기저귀는 답답해요"

"밤에 쉬는 변기에서 해요"

"밤에 무서우니 아빠 깨워서 같이 변기로 가요"

"어린이집 갈 때 팬티 입고 갈래요"


​​

이틀 전 홍시를 씻기고 나와서 로션을 발라주며 잘 준비를 하는데 홍시가 이야기했다. 오늘은 기저귀가 답답하니 팬티를 입고 자겠다고 한다. 나는 홍시가 그 말을 하는데 괜히 울컥했다. 홍시가 진짜 많이 컸구나. 그리고 엄마, 아빠를 잘 믿고 따라와 주고 있다는 생각에 정말 기분이 좋았다.

우리의 배변훈련은 아주 조심스레 오래전부터 하긴 했었다. 처음에는 아이용 변기를 구입하면서 시작된 것 같다. 변기를 구입하고 나서 홍시에게 변기에 대해 설명해주고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그리고는 가끔 내가 화장실에서 성인용 변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보여주고는 했다. 홍시는 아이용 변기를 신기해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는 홍시가 변기라는 물체를 인지하기 시작했으니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 생각했다. 그냥 변기라는 물건이 어떤 것이고 언제 사용하는지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아이용 변기를 구입하고 나서 몇 개월 후에 정양이 배변 스티커를 인터넷으로 하나 구입했다. 변기에서 소변이나 대변을 보면 칭찬해주며 스티커를 붙일 수 있는 제품이었다. 우리는 홍시에게 스티커를 많이 모으면 홍시가 갖고 싶은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시큰둥해하는 것 같았지만 조금씩 홍시는 변기에 대, 소변을 시도하며 스티커를 모으는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스티커를 일정 수량 모으면 약속한 대로 장난감을 사러 마트로 갔다.


​배변 스티커를 다 사용하고 나서는 다른 보상체계(?)를 마련했다. 변기에 대변을 보면 홍시가 좋아하는 로보카폴리 DVD를 보여줬다. 지금 우리 집에서는 어느 누구도 TV를 안 보기 때문에, 홍시에게 DVD 플레이어는 폴리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렇게 홍시는 로보카 폴리를 만나기 위해서 변기에 대,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폴리를 보기 위해서 집에서만 대, 소변을 가렸는데, 이제는 밖에 외출했을 때도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이야기를 해줘서 화장실로 가서 볼일을 보고는 한다. 아마도 보상을 통해 자연스레 화장실과 변기에 거부감이 사라진 것 같았다.


​사실 이런 보상체계를 통해서 배변훈련을 하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우리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무언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과정을 알려줄 수도 있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강제로 변기에 앉히지 않다 보니 배변훈련에 대해 거부감이 안 생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의 소극적인 배변훈련은 인제 그 끝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홍시는 이제 변기에 앉는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트나 백화점, 공원의 화장실 역시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기저귀가 답답하니 팬티를 입고 싶어 한다. 실제로 최근 며칠은 잘 때 침대에 방수 패드를 깔고 팬티를 입고 잤는데 성공적이었다. 한 번은 밤에 소변을 보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갔다. 그리고 또 한 번은 밤에 깨서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말해줘서 같이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봤다.

​물론 지금 바로 기저귀를 완전히 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인제 집에서부터 기저귀가 아닌 팬티를 입고 생활할 예정이다. 그리고 집에서 팬티를 입고 생활하는데 익숙해지며, 조만간 어린이집에 갈 때도 더 이상 기저귀를 안 입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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