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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군 Sep 07. 2021

나도 모르게 만들어지는 어른과 아이의 불평등한 상황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캠핑장 한쪽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분위기 있는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다 같이 저녁식사를 먹는다. 그리고 밤이 어두워지면 팝송을 들으며 불멍을 한다. 나와 와이프는 그 순간이 너무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스피커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눈앞에는 화로대에서 장작이 타닥타닥 타고 있다. 

 그런데 홍시는 불멍이 재미없나 보다. 같이 불멍을 하자고 하니까 흥미가 없는 듯 야전침대에 누워서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같이 불멍을 하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이런 상황이 어른들 입장에서는 그저 아이가 함께 불멍을 즐기지 못하는 상황이 아쉬울 뿐이다. 그런데 반대로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지금 이 상황은 너무나도 불평등(?)한 상황이다. 엄마, 아빠는 자기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맛있는 술과 음식을 먹으며 화로대 앞에 앉아있다. 그런데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도 없으며, 새로운 간식도 없다. 아이 입장에서는 나무가 그저 타는 걸 보면서 앉아있는 게 재미있을 리가 없다.

 아차 싶어서 재빨리 아이에게 블루투스 스피커를 손에 쥐어주고, 평소에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노래를 틀어줬다. 그리고 아직 먹어본 적 없는 맛있는 과자도 화로대 옆 테이블에 올려줬다. 그러니 아이는 자연스럽게 나와 와이프 사이의 의자에 앉아서 만화 노래를 들으며 간식을 손에 들고 같이 불멍을 즐기기 시작했다. 

 왜 이 생각을 진작에 못했을까. 나도 모르게 어른과 아이 사이에 불평등한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에 또 미안함이 들었다. 항상 이런 부분을 놓치지 말아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나랑 와이프는 차로 어딘가를 이동할 때에 절대 티브이나 유튜브를 보여주지 않기에, 두 시간 이상되는 장거리를 이동할 때에는 낮잠시간에 맞춰서 이동을 한다. 하지만 가끔은 낮잠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그러면 위의 캠핑장과 비슷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보통 어른들은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되면 라디오나 팟캐스트 등 라디오를 들으며 간다. 졸음도 방지해 주지만 이동하는 내내 지루함을 해소해 주기 때문이다. 작년쯤인가 우리는 주말에 처가댁을 가는 중이었고, 나는 역시나 라디오를 틀어 놓고 운전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낮잠시간을 못 맞춘 탓에 뒤에서는 아이가 지루하다며 내리고 싶다고 난리가 났다. 휴게소도 아직 멀었는데 참 난감했다. 아이들은 왜 이렇게 차에 앉아서 가는 걸 싫어하는 걸까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그 순간 또 아차 싶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나랑 와이프는 재미있는 라디오 사연을 들으며, 사연자의 상황에 몰입하기도 하고 다양한 상상을 하기도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만화 스토리도 아니고 재미있을 리가 없다. 당연히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두 시간씩 앉아만 있으려니 좀이 쑤시는 거다.

 아이 입장에서는 이동하는 시간이 심심할 것 같다는 생각에 블루투스를 연결해서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를 라디오처럼 소리만 틀어줘 봤다. 역시나 예상은 적중했다. 아이는 가만히 앉아서 만화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우리가 라디오를 들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이, 아이는 만화 캐릭터가 빠진 상황을 소리로 들으며 상상하고 있었고 캐릭터들과 같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목적지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갈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몇 번 겪어 보니 아이들이 불만을 표출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항상 아이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고 다짐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은 것 같다. 항상 우리 기준에서 당연한 것들이 아이한테는 불평등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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