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 책육아
솔직히 말하면 나는 책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초, 중, 고 시절에는 공부의 개념으로 책을 읽기는 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책보다는 TV를 좋아하고 핸드폰 보는 걸 좋아했었다. 하지만 홍시가 태어나고 나니 스스로를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아이 앞에서 아빠가 매일 핸드폰만 보고 있고 TV만 보고 있으면 아이도 분명 똑같이 될 것만 같았다.
개인적으로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든 창의적인 활동에 기본이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이에게는 어릴 때부터 독서에 취미를 만들어 주면 고학년이 되어서 큰 빛을 볼 수 있다. 특히 요새는 국어 말고도 수학, 과학 등 다른 과목에서도 지문이 긴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책을 제대로 읽는 능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고학년이 될수록 공부가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어렸을 때 책을 제법 많이 읽었던 아이였다. 하지만 책을 읽는 과정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있었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재미있었지만, 책을 처음 펼치기까지는 솔직히 내 의도는 아니었다. 부모님께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해서 읽었고, 학교에서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한다고 해서 읽었다. 그렇게 어릴 적 나의 책 읽기는 상당히 수동적이었다. 그래서 지금 홍시를 키우면서 항상 생각하는 게 있었다.
첫 번째는 다른 공부는 몰라도 책과 친해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엄마, 아빠의 권유가 아닌 홍시가 스스로 책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홍시가 태어나고 나서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책육아에 대해서 공부했다. 책을 읽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혹은 전문가의 인터뷰도 열심히 찾아봤다. 그만큼 홍시에게 책이라는 건 언제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거실에는 TV대신 책꽂이가 놓여있고, 주말 아침엔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도서관에 놀러 갔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중요한 일이 없으면 핸드폰은 아예 외투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틈만 나면 홍시에게 책을 읽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홍시에게 책을 자연스럽게 노출시키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홍시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기보다는 직접 우리가 책을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전략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조금 더 좋은 꿀팁을 발견했다. 사실 뭐 대단한 건 아니긴 한데 생각보다 효과가 정말 좋았다. 바로 아이의 책을 내가 먼저 읽는 것이다. 그리고 그냥 읽지 말고 소리 내서 읽는 것이다.
처음 내가 홍시의 과학 전집을 소리 내어 읽고 있으니 홍시는 의아해했다. 자기 책을 아빠가 읽고 있으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아마도 아이들은 자기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 있어서, 어느새 자기의 책을 읽고 있는 내 옆에 오더니 "아빠 이거 내 책인데, 나도 지금 읽고 싶은데"라고 말했다. 그 순간 "아! 이거구나" 싶었다.
아이들끼리 놀다 보면 평소에 좋아하지도 않던 장난감이었는데, 다른 친구가 내 장난감을 건드리면 괜히 다시 갖고 싶어 한다. 아마 책도 같은 경우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최근에 몇 번을 홍시책을 책장에서 꺼내서 읽어봤는데 거의 백발백중으로 바로 옆에 와서 같이 책을 읽고 싶어 했다. 우연히 아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넛지'를 발견해 낸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발견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런 작은 발견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만약 아이가 책이랑 친해지기를 원한다면, 아이책을 소리 내서 읽어보기를 추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