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y in the Life
쟈니 사장님을 위하여. 건배.
1. 노래방 기계가 드디어 도착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주문부터 배송까지 거의 한 달이 걸렸다. 지긋지긋한 역병 때문에 어디 갈 수도 없고. 올겨울은 그냥 가족들과 집에서 노래나 부를 생각이다. 이번에 노래방 기계뿐만 아니라 새 앰프와 플로어 스피커까지 풀로 질렀다. 기왕 하는 거, 진짜 노래방처럼 꾸미고 싶었다. 베이스먼트에 노래방 세팅을 끝내고 조명을 켜니 헐…. 제법 그럴듯하다. 이제 주문한 탬버린 한 쌍만 오면 노래방 완성.
2. 예전에 노래방에서 숙식하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벌써 19년 전 일이다. 친구 차를 얻어타고 미시간을 떠나 무작정 뉴욕에 갔었다. 할렘, 센트럴파크,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 미드타운, 노호, 소호, 구겐하임, 스텀프, 록키호러픽쳐쇼, 섹스, 드럭, 락켄롤.
19년 전 뉴욕은 가슴을 뛰게 하는 도시였다.
‘이 위대한 도시에 뼈를 묻으리라!’
하지만 뼈를 묻으려면 먼저 일을 찾아야 했다. 나는 맨해튼의 한인 거리를 며칠간 배회하다, 간신히 노래방의 숙식 알바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처음 며칠간 테이블보를 덥고 노래방의 가장 끝방 - 12번 방에서 쪽잠을 잘 때만 해도 금방 방을 구해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에서 노래방 알바의 급여로 방을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해 여름이 끝날 때까지 난 12번 방을 탈출할 수 없었다.
3. 알바들은 아무리 바쁜 날에도 1번 방에는 손님을 넣지 않았다. 1번 방은 노래방에서 숙식하던 또 다른 사람 - 쟈니 사장의 방이었다. 노래방의 실제 사장은 따로 있었지만, 알바들은 50대 후반의 지배인을 그렇게 불렀다. 양복 재킷을 항상 말쑥하게 차려입고 줄담배를 피우던 사람. 그가 지내던 1번 방은,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쪽창이 늘 양복 재킷으로 가려져 있었다. 쟈니 사장은 노래방 영업이 없는 오전에는 1번 방에서 나오는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 노래방 간판에 불이 들어오면, 그는 문 뒤에 걸어 놓은 양복 재킷을 꺼내 입고, 터벅터벅 1번 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출근을 하려 현관문을 나서는 회사원 같았다.
4. 노래방의 실제 사장은 한국에서 어쩌다가 큰돈을 손에 쥐고 미국에 넘어온 40대의 전직 조폭이었다. 건달 사장은 노래방 관리는 쟈니 사장에게 맡겨두고 평소에는 골프를 치거나 카지노를 들락거렸다. 건달 사장이 카지노에 가기 전에 현금을 픽업하러 노래방에 들리는 날은, 노래방에 비상이 걸리는 날이었다. 폭언과 위협을 거침없이 해대던 건달 사장에게 꼬투리 잡힐라. ”쟈니 사장과 알바들”은 평소보다 더 노래방 청소와 정리에 신경 써야 했다. 가장 위급한 상황은 예고 없이 건달 사장이 가게에 들르는 경우. 건물 출입문 시시티브이에 건달 사장의 모습이 비치면 알바들은 재빨리 1번 방이 있는 복도쪽으로 외쳐야 했다.
“사장님 들어오십니다!!!!”
그러면 양복 재킷을 반쯤 걸친 쟈니 사장이 정말 용수철처럼 1번 방에서 튀어나왔다.
5. 맨해튼 노래방의 한국 손님들은 주로 네 종류다. 교포, 유학생, 뉴욕 주재원. 그리고 간혹 보이는 뉴욕으로 출장 온 출장맨들. 그중 매너가 가장 좋았던 건 교포들. 제일 깨끗하게 놀고 뒷정리도 제일 잘하는 편. 팁도 제일 잘 주는 그룹. 그다음은 주재원들. 뻔한 동네에 소문이라도 날까, 조심조심 깔끔하게 놀고 가는 편. 뉴요커 흉내를 내던, 겉멋 잔뜩 든 애송이들은 대부분 유학생. 제일 진상들은 어디서 술 한잔 걸치고 후끈 달아올라 들이닥친 출장맨들. 이들의 한결같은 요구.
“어이, 어이. 여기 아가씨 좀 불러줘”
“손님~ 맨해튼에 여자 나오는 노래방 없는데요~”
“뭔 소리야? 내가 다 알고 왔는데.”
“손님~ 아가씨 나오는 노래방 가려면 지금 뉴저지 가셔야 하는데요~”
“에이 씨. 지금 뉴저지를 어떻게 가. 아는 언니들이라도 좀 불러봐!”
“손님~ 정 그러시면 저희집에서 노래 부르고 노시다가 건너편 건물 5층에 룸살롱 있으니까 그리로 가시죠~”
6. 손님이 뜸한 평일 새벽, 쟈니 사장과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예기하는 쪽은 쟈니 사장. 그는 이미 나에게 몇 번이나 예기한 적이 있던, 자신의 과거의 영광과 무용담을 밤새 떠들어 댔다. 옛날에 럭키금성과 시티뱅크를 연결해준 사람이 자기라는 둥, 사실 브루클린에 콘도가 있는데 건달 사장 망할까 봐 불쌍해서 노래방에서 사는 거라는 둥, 자기한테 잘 보이면 뉴저지에 아가씨 나오는 노래방에 취직시켜준다는 둥, 거기서 한 달만 일하면 팁으로만 1년 학비를 번다는 둥…. 그는 특히 아들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아이비리그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월가의 에이스가 된 엄친아 중의 엄친아. 성격도 짱에 효심도 지극했던 완벽한 아들. 쟈니 사장의 이야기들은 매번 디테일이 조금씩 어긋났지만, 그건 그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그렇게 한바탕 자신의 판타지를 내게 퍼붓고 나면, 그는 가게 뒷정리를 맡기고는 1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양복 재킷을 벗어서 쪽창을 가렸다. 그러면 나는 간판에 불을 끄고, 대충 뒷 정리를 끝낸 뒤, 12번 방으로 들어가 마지막 손님들이 바닥에 뱉어 놓은 침을 닦은 후, 테이블보를 덮고 깊은 잠을 청했다.
7. 맨해튼의 32번가는 한인들이 운영하는 술집, 식당, 유흥업소 등이 밀집해있다. 그곳 업소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대게 한국인들이다. 뉴욕은 거대한 도시이지만, 32번가 사람들에게는 32번가가 뉴욕이다. 그들은 어지간해서는 그 구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노래방에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과 안면을 트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주 보는 가게들끼리 서로서로 사정을 봐주는 경우가 생기는데, 예컨대 노래방 근처의 한식 뷔페 알바들은 노래방 알바들에게 몰래 공짜 밥을 줬었다. 쟁반에 가득 음식을 담고 계산대 뒤 뷔페 알바와 눈짓만 주고받으면 무사통과. 대신에 뷔페 알바들은 식당 일이 끝나면 노래방에 와서 공짜로 놀았다. 엄격히 말하면 다 도둑질이지만, 19년 전 32번가에서는 다들 그러고 살았다.
8. 하루는 노래방 위층에 있는 PC방 알바가 내려와서 말한다. 형. 쟈니 사장 아들 봤어요? 어? 아들이 왔어? 네. 지금 둘이 PC방에 있어요. 근데 존나 골까. ㅋ
아니 그렇게 자랑하던 아들이 왔단 말이야? 근데 왜 아무 예기도 안 했지? 나는 궁금증이 생겨 피시방으로 올라가 봤다. 문밖에서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저만치 쟈니 사장이 보인다. 그는 PC 게임에 한창 열중 중인 아들 옆에 서 있었다. 노랑머리에 귀고리, 힙합바지와 문신. 월스트리트는 개뿔. 엉거주춤 서 있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언가를 띄엄띄엄 묻고 있다. 모니터에서 시선을 때지 않는 아들은 그런 아버지에게 데면데면 대답한다. 나는 못 볼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얼른 돌아 나왔다.
9. 어느 날 32번가의 한인업소 사장들이 근처에서 단합대회를 하고 2차로 노래방에 몰려왔다. 32번가에서 힘 좀 쓰는 사람들 - 설렁탕집, 갈빗집, 뷔페 집, 카페, 룸살롱, 액세서리 가게, 여행사, 치과, 복덕방 집 사장들이 전부 다 온 거다. 쟈니 사장은 그날만큼은 손수 맥주를 나르고 담배 심부름을 했다. 32번가의 사장들…. 그들은 언제 어디서 쟈니 사장의 생명줄을 연장해 줄지 모르는 이 거리의 주인들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쟈니 사장은 아예 그들 방에 들어가 얼큰하게 취한 사장들의 선곡을 돕고, 탬버린을 치며 분위기 메이커를 자청했다. 양복 재킷마저 벗어 던지고 온몸을 흔들어 대던 쟈니 사장. 난 그 절박한 몸짓을 지금도 기억한다.
10. 아이들과 와이프가 노래를 부르다 지쳐 올라간 뒤에도 혼자 남아 노래를 하고 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 나의 18번들은 여전히 그 시절 12번 방에서 부르던 노래 들이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흘러가는 것과 머무르는 것. 위스키를 잔에 따랐다. 돌이켜 보면, 맨해튼의 노래방은 그의 무덤이었고, 1번 방은 그의 관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는 살아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난 뉴욕을 떠난 후 그의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가 살아남았다면, 난 진심으로 그가 1번 방에서 탈출했기를 빈다. 비극의 예감이 짙던 그의 아메리칸 드림에, 놀랍고도 행복한 반전이 숨어 있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그가 이미 죽었다면, 지금 마시는 술은 그에게 바친다. 쟈니 사장님을 위하여.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