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iss that summer.

by HTG

뉴욕에서의 노래방 생활을 정리하고
미시건으로 돌아온 그해 여름,
나는 처음으로 혼자 살 집을 구했다.

캠퍼스타운 외곽에 있는 낡은 2층 집이었다.
원래는 주택이었지만, 안을 쪼개 학생들에게 방을 세놓는 구조였다.

나는 그 집의 1층을 렌트했는데,
낡은 현관문을 열면 왼쪽으로 내 방이 있었고
정면에는 가파른 나선형 목재 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 끝을 올라가면 2층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왔다.

최소한 100년은 됐을 법한 그 집은
문짝과 창틀은 모두 낡았고,
마루는 살짝 기울어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걱거렸다.

그렇지만 천장이 높아 집이 넓어 보였고,
커튼을 걷으면 한여름 미시건 햇살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게다가, 지붕 밑 어딘가에는
박쥐가 살았다.

윗층에서 가끔 들리는 인기척으로,
누군가가 그 집에 살고 있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수업 시간표가 달라서였을까.
이사 온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나는 윗층 이웃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가끔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로,
누군가가 개와 함께 살고 있다는 정도만 추측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수업이 취소된 나는 집에 있었고,
녹차를 마시려고 거실 소파에 앉아
주전자의 물이 끓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 밖에서 갑자기 들려온 소리.

박박박.
헐떡, 헐떡.

뭔가가 내 방문을 거칠게 긁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옅은 갈색 털의 코커 스패니얼 한 마리가
쑥, 밀고 들어왔다.

당황한 기색도 없이 녀석은
마치 오래된 집의 주인인 듯
집안을 종횡무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책상 밑, 침대 옆,
바닥에 코를 박으며 킁킁대고,
새로운 세계에 떨어진 아이처럼
작은 발로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곧 계단 위에서 헐레벌떡 뛰어내려오는 발소리.

“오마이갓! 챈스! 챈스! 거기 들어가면 안 돼!”

계단을 한달음에 뛰어내려온 여학생은
문 앞에 서서 쩔쩔매며 소리쳤다.

(아! 2층에 여자가 살고 있었구나!)

하지만 챈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침실로 돌진하더니
베개 하나를 물고 나와
온몸으로 흔들어젖혔다.
털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안 되겠네.)

“들어와서 데려가셔도 괜찮아요.”

나는 문을 더 활짝 열며 말했다.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오자
챈스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휙 돌아 그녀 쪽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목줄을 채우며 숨을 골랐다.

“진짜 미안해요.
아직 한 살도 안 된 아이라서…
가끔 제 말을 안 들어요.”

얼굴엔 당황과 민망함이 겹쳐 있었다.

나는 마침내 만난 이층 이웃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이. 내 이름은 H예요.”

“샤일로. 저는 샤일로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어디 출신이세요?”

“저는 디트로이트 근교요.
그쪽은요?”

“저는 서울, 코리아.
…혹시 한국인들에 대한 끔찍한 소문을 들어본 적 있나요?”

“전혀요.
사실…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잘 몰라요.”

당시는 아직 2001년.
K드라마도, K팝도,
월드컵 4강도 오기 전이었다.

그 시절 한국은
그녀뿐 아니라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그냥 여전히 ‘멀고 낯선 나라’였다.

“괜찮으시면 앉으세요.
챈스는 목줄 풀어도 돼요.”

나는 낡은 녹색 소파를 가리켰다.

그녀가 앉아 강아지 목줄을 풀고 있는 사이,
나는 부엌 구석에 있던 이삿짐 박스를 뒤졌다.

뉴욕에서 가져온 작은 지구본 하나를 꺼내
그녀 옆에 조심스레 앉았다.

“여기.
여기가 한국이에요.”

그녀는 내 손끝을 따라가며
그 작은 점을 한참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살짝 들어 물었다.

“근데…
한국인들에 관한 끔찍한 소문이라는 게, 뭔데요?”

나는 잠깐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한국인들이…
예전부터 개를 먹는다는 예기가 있어요.”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Seriously? Are you kidding me?”

난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말아요. 당신의 개는 절대 먹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건 진심이었다.)

우리가 가까워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사실상,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었으니까.

검안학을 전공하던 그녀는
나보다 훨씬 더 바쁜 일상을 살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챈스를 산책시키고, 수업에 나갔다.
강의가 끝나면 또 산책.

밤에는 월마트에서 알바를 하고,
돌아와선 다음 날 퀴즈나 수업 예습을 준비했다.

그 무심한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그녀의 루틴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녀와 챈스의 산책에 따라나섰고,

그녀도 시간이 날 때면
내게로 내려왔다.

내가 녹차를 끓이면,
그녀는 익숙한 자세로
머그컵을 두 손에 감싸 안고 말했다.

“너 덕분에 녹차를 알게 됐어.”

헤어지기 아쉬운 밤이면
나선형 계단을 함께 올라가
그녀의 현관 앞까지 바래다주기도 했다.

그리고
혼자 그 계단을 내려올 땐
늘 같은 생각이 들었다.

(…키스할 수 있었을까.)

한 번은,
그녀와 챈스를 산책하고 난 뒤
그녀의 집에 함께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녀의 집은 문을 열면 정면에 작은 키친이 있었고,
왼편으로는 길고 좁은 거실이 이어졌다.

거실 한쪽 벽엔
넓은 창문이 있었고,
그 앞엔
낡은 소파와 커피 테이블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챈스가 물을 마시는 동안,
우리는 조용히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테이블 아래를 뒤져
오래된 사진첩을 꺼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사진 한 장씩을 내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건,
그녀의 어린 시절이 담긴 앨범이었다.

“이 사람은 바바 삼촌.
아빠 형제들 중 맏이야.
덩치는 컸지만, 조용하고 다정했어.

아빠랑 같은 공장에서 일했는데,
아침마다 집에 들러
나랑 동생을 꼭 안아주곤 했지.

근데 제일 먼저 세상을 떠났어.
고등학생 때부터 마약을 했대.”

“이건 쉴라 고모.
어릴 때 돌아가셨지만,
그 사람이 예뻤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해.

그녀도, 헤로인 중독으로 죽었어.”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이건 내가 다섯 살 때.

어때, 나랑 좀 닮았지?

어릴 땐 머리색이 거의 금발이었어.
날 안고 있는 사람이 우리 아빠야.

날 ‘공주님’이라고 불렀거든.”

한 장의 사진,
하나의 기억.

“아빠도 결국엔 약과 술에 무너졌어.

엄마를 위협하던 그 사람은,
엄마가 집을 떠난 다음 해에
지하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어.

내가 여덟 살 때였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곁눈질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여전히 사진을 넘기고 있었다.

창가 쪽에서 쏟아지는 햇빛.

그 사이로,
먼지들이
그녀의 머리카락과 귓가를
천천히 떠다녔다.

나는 그 순간,
그녀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우리가 함께 보내는 시간도 더 많아졌다.

그녀는 원래 조용한 사람이었다.
책을 좋아했고,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다운타운의 오래된 바에 데려가거나,
캠퍼스 파티에 같이 가는 걸 즐겼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눈을 크게 뜨고 즐거워하던 그녀를
바라보는 게 좋았다.

우리가 함께했던 파티 중,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건
해리의 파티였다.

해리는 로트와일러 세마리를 낡은 트럭에 태우고,
마을을 돌며 일하던 잡부였다.

해리는 마을에서 20마일쯤 떨어진 숲속 들판에
버려진 버스안에서 혼자 사는 독특한 남자였다.

그리고 여름의 끝자락,
그는 단 한 번
파티를 열었다.

그건 마을의 최고의 파티였다.

해리의 들판 한쪽엔
간이 무대가 세워졌고,
그 위에선 로컬 밴드가 밤새 연주를 했다.

드럼통을 개조한 그릴 위엔
돼지 한 마리가 통째로 매달려
온종일 천천히 익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웃고, 마시고, 마리화나를 피워댔다.

우리는 손을 잡고 언덕에 앉아
로컬 밴드들이 연주하는 정체불명의 음악을 들었다.

내 옆에 비스듬히 기대어
맥주를 마시던 그녀가
갑자기 생각난듯 말했다.

“저기… 저 돼지,
저렇게 매달려서
인간들한테 파먹히는 거,
너무 불쌍해.”

취해서 였을까?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눈물을 손등으로 닦고,

아주 짧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 순간,

음악도,
웃음소리도,

멎은 듯했다.

“돌아갈까?”

그녀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들판을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밤공기 속에서
내 손엔
여전히 그녀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녀가 보여준 앨범 속 얼굴들을
하나씩 천천히 떠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진심에, 아주 오래된 슬픔에
조금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 여름,
지구 반대편에서 자란 우리는
미시간 들판에서
똑같이 웃고, 똑같이 울고,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 여름의 마지막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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