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메뚜기

by HTG

전설의 메뚜기

미시간의 겨울은 춥고, 길다.
남부 디트로이트조차 시월이면 이미 눈이 내렸고,
매서운 추위는 4월을 넘겨서까지 이어졌다.
오대호에 둘러싸인 탓에,
한 번 눈이 내리면 도시 전체가 눈 아래 잠겼다.

겨울 아침이면
주차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사각, 사각, 빡빡—
1교시 수업에 나서려는 학생들이
얼어붙은 앞유리를 긁는 소리.
아파트 벽을 타고 오르던 그 소리는,
이 도시에 울리는 기상송 같았다.


그 겨울, 메뚜기가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연락이 끊겼다.
전화도 받지 않았고, 수업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땐 휴대폰도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연락이 안 되면 그냥 ‘잠수’였다.

‘메뚜기’는 그의 별명이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를 그렇게 부른 적이 없다.
마르고, 눈이 크고, 날렵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겠지만—
나는 언제나 그 별명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렇게 가볍게 불릴 수 있는 사내가 아니었다.


이문열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엔
남녀 주인공이 수십 년 만에
미국의 한 해변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대목을 읽으며 피식 웃었던 기억이 있다.
미국이 얼마나 큰데. 그런 우연이 말이 되냐.

그런데 내가 중학교 동창 메뚜기를—
한국 학생이 열 명 남짓한,
미시간 북부의 아무도 모를 작은 학교에서 마주친 거다.

말이 안 됐다.
그래서 더 각별했다.

우린 금세 친해졌고,
그 해, 거의 매일 붙어 다녔다.


그런데 겨울이 오자,
내 단짝 메뚜기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내 아파트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메뚜기였다.
벌겋게 충혈된 눈, 떨리는 손.

“…혹시, 라면 있어?”

나는 그를 안으로 들이고 라면을 끓였다.
그는 김을 후후 불며 먹으며 말했다.

“연락 없어서 미안하다. 요즘 게임에 너무 빠져서…”


그가 말한 건 일인칭 슈팅 게임이었다.
정글을 헤집고, 도시를 뚫고,
적들을 쓸어내며 전장을 누비는 게임.
2000년대 초반, 혜성처럼 등장해
전 세계를 강타했던 그 게임.

“야, 아무리 그래도—
그게 뭐 얼마나 재밌다고 잠수를 타냐?”


하지만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메뚜기의 플레이를 몇 번 보다 보니
나도 그만, 그 빌어먹을 게임에 빠져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메뚜기의 그 말도 안 되는 플레이에 매료된 거다.

정확한 판단력, 반사신경,
판세를 읽는 감각,
상황을 압도하는 배짱.

그가 나타나면 전장은 숨을 죽였고,
도전자들이 줄을 섰다.
너무 압도적이라 가짜 메뚜기들까지 생겼다.
그를 사칭한 유저들이 용병처럼 팔려 다녔고,
“메뚜기가 오토를 쓴다”는 시기 섞인 소문도 돌았다.

실력자들 사이에선
“그 방에 메뚜기 있다”는 말이
경고이자 축복이었다.


화면 속, 그 세계에서 메뚜기는 전설이었다.
그가 총을 들면, 전장은 곧 예술이 됐다.


그해 겨울,
우리는 메뚜기의 기숙사 방이나
내 좁은 아파트 거실에 나란히 앉아 게임을 했다.

그는 전장을 누비며 적을 쓸어냈고,
나는 라면을 끓이며
그 말도 안 되는 플레이를 넋 놓고 지켜봤다.

미시간의 겨울은 길었고,
우리는 젊고, 따분했다.

낯선 나라에서,
그건 우리가 겨울을 견디는 방식이었다.


“이제 그만 해야 될 것 같아.”

어느 날, 메뚜기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이제, 재미없어.”

그리고 그는, 게임을 접었다.


졸업 후, 메뚜기는
중장비 회사에 취직했다.
부품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앞에 일하던 사수가
나한테 일주일 가르쳐주고 은퇴했어.
그 사람이 25년 동안 해온 일을
내가 익숙해지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일주일이더라고.
마지막 날, 그가 사무실을 나가는 뒷모습이…
왠지, 내 미래 같았어.”


메뚜기는 취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 시절부터 사귄 조용하고 참한 교포 여성과 결혼했다.
지금은 아이도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잘 살고 있다.


몇 년이 지나고,
그 겨울의 이야기를 꺼내면
메뚜기는 늘 멋쩍게 웃는다.

“게임 좀 잘한 게 뭐 자랑이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지.”

그럴 때면, 나는 그가 조금 답답하다.


세상엔,
문서로 남지 않고
이력서에 적히지 않으며
본인조차 모른 채 스쳐가는 재능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출구를 아직 찾지 못한 것뿐이다.
그 재능은 그저 불리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순간이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안다.
불리지 못한 재능이란—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그저 시대가
아직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라는 걸.


메뚜기가 전 세계 유저들을 상대로 보여줬던 플레이는
단순한 실력을 넘어선,
창의적인 퍼포먼스였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메뚜기는, 천재였다.


그래서 그런 얘기가 나올 때면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지금처럼 e스포츠가 활성화되고
유튜브나 트위치로 게임 방송 보는 게
당연한 시대에 태어났다면,
내가 장담하는데—
넌 벌써 강남에
빌딩 몇 채는 올렸을 거야.”

그리고 그 말,
농담처럼 들릴지 몰라도
내겐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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