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화양연화

서울여행

Before the trip

by Minhyo


서울여행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결정은 나의 첫 성취 때문이다. 세계여행과 같은 거창한 계획은 준비도 많이 필요하고, 자금, 용기도 필요했다. 대학생 때 아시아 일주를 다녀오려 다가가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보니 이번부터는 변화가 있으려면 작은 성공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가벼운 지하철 여행, 그렇게 내가 살고 있는 곳과 1시간도 떨어져 있지 않은 종묘로 첫 여행지를 정하게 된 이유이다. 마음을 먹으면 갈 수 있는 거리였고, 입장료도 크게 비싸지 않아서 실패할 확률이 떨어지는 여행지였다. 그렇게 종묘와 사직단을 시작으로 나의 국내 여행이 시작되었다.



2017년 8월부터 2018년 1월까지 한 달에 1개~2개 사이로 탐방장소를 정하고서, 일정을 계획하여 다녀왔다. 그때 인생을 열심히 산다 거나, 최선을 다한다 거나 그런 것은 모르겠지만 당장의 주어진 일을 하자고 했고, 남은 시간에 내가 계획했던 일정을 이루어서 성취감을 보자고 하였다.



도심 한 곳 대로를 따라서 지나는 자동차들과, 매연 사이로 궁궐들이 보였다. 하나의 건축을 이루는 기와가 빛을 통해서 땅에 그려 놓은 그림자를 따라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다 보면 눈과 마음에 마주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단단한 돌들 사이로 걸음을 내리니, 기둥과 처마 전통문양을 덮은 벽이 눈앞에 보였다. 그리고 그곳을 나는 세상의 풍파를 겪어낸 것처럼 가볍지만, 책임감 있는 발걸음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서울이라는 이름은 일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해방 1년째 되는 날인 1946년부터 서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 이전 이름을 살펴보자면, 일제강점기 때는 경성이라 불렀고, 그 이전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시대 때는 한양 또는 한성이라고 불렸다. 조선 이전 태조 왕건이 세운 고려 때는 서울을 양주라고 불리었고, 백제는 위례성, 고구려 때는 고구려의 도읍지인 평양의 남쪽에 있는 중요한 곳이라는 뜻으로 남평 양 이런 식으로 불렸다. 그리고 1946년 8월 15일부터 현재까지 서울이라 불린다. 내 개인적 생각으로 서울이라는 이름은 꽤나 따스하고 아름다운 것 같다.



나의 서울여행은 서울 이전의 나라인 대한제국 그리고 경성, 조선이 주제가 되어서 그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탐방을 직접 체험해본 것이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도심 중앙에 5대의 궁궐이 있을 만큼 궁궐 도시라고 불리었다. 직접 돌아다녀보니 궁궐 이외에 여러 가지 것들도 있는데, 아래의 소개와 같이 그곳들에 대한 것들을 나열해 보려 한다.




➀ 한강, 인사동 ⇒ 위치: 한강-서울 전 지역 /인사동- 3호선 안국 역 관람료: 무료
➁ 종묘 ⇒ 위치: 3,5호선 종로3가역 관람료: 1000원 (만 24세 이하 청소년 무료)
➂ 사직단 ⇒ 위치: 3호선 경복궁역 관람료: 무료
➃ 경복궁 ⇒ 위치: 3호선 경복궁역 관람료: 3000원 (만 24세 이하 청소년 무료)
➄ 창덕궁 ⇒ 위치: 3호선 안국 역 관람료: 3000원 (만 24세 이하 청소년 무료)
⑥ 창경궁 ⇒ 위치: 4호선 혜화 역 관람료: 1000원 (만 24세 이하 청소년 무료)
➆ 경희궁/서울역사박물관 ⇒ 위치: 3호선 경복궁역 관람료: 무료
➇ 덕수궁(경운궁)⇒ 위치: 1호선 시청역 관람료: 1000원 (만 24세 이하 청소년 무료)
⑨ 운현궁 ⇒ 위치: 3호선 경복궁역 관람료: 무료
⑩ 낙산 성곽길 ⇒ 위치: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관람료: 무료
⑪ 조선왕릉(강릉과 태릉) ⇒ 위치: 7호선 태릉입구역 관람료: 1000원 (만 24세 이하 청소년 무료)
⑫ 남산(남산타워) ⇒ 위치: 4호선 명동 역 관람료: 무료/ 전망대 대인:10.000원




처음으로 방문했던 장소는 종묘이지만, 종묘와 사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서울역사박물관]에 있는 주례를 언급해야 한다. 조선은 나라 전체가 유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했으며, 유학은 발전을 거듭하여 유교가 된다. 유교 책 중에 주례(: 고대 중국 주나라의 제도를 기록한 문서)라는 책이 있으며, 주례에는 도성을 지을 때 기본이 되는 원리가 들어가 있다.


내용은 이러하다: 중심에 궁성을 두고 ‘좌묘우사’라고 하여 궁성 왼쪽에는 종묘를 오른쪽에 사직단을 세우라고 하였다. 현재 경복궁을 중심으로 그렇게 종묘와 사직단의 위치가 정해지게 된 것이다.



그다음으로 살펴볼 부분이 도읍의 기본 조건인데, 옛 도읍지를 정할 때에는 산으로 둘러싸이고, 큰 강이 흐르고 넓은 평야가 있어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이 있었다.



조선의 이성계는 위의 세 가지 도읍지 조건에 맞는 곳을 찾아보게 되었고, 여러 선택지 중 지금의 서울을 도읍지로 정하였다. 조선은 유교를 숭상했기에, 이에 따라 토지신과 곡식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을 서쪽에 만들고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셔 놓고 제사를 지내는 종묘를 동쪽에 만들었다. 고려말 장군 출신이었던 이성계는 내사산만으로 적을 막기가 힘들어 산의 능선을 연결하여 성벽을 쌓았고 성벽을 드나들기 위해 4대 문과 4 소문을 만들었다. 4대 문의 이름은 유교의 이념인 인의예지신에 따라 동쪽에 흥인지문, 서쪽에 돈의문, 남쪽에 숭례문, 북쪽에 숙정문이라 이름을 정하였다. 흥인지문의 경우 원래 흥인문이라 불렸으나, 지세를 보완하기 위해서 이름 가운데’지’를 넣게 되었다.



당시의 한양에는 바깥으로 흐르는 강인 한강이 있었고, 안쪽으로 흐르는 강인 청계천이 있었기에 서울이, 그 당시의 도읍이 될 수가 있었다.



나는 작년부터 종묘를 6번 정도 다녀왔었다. 종묘를 알기 시작한 이후로, 도심에서 느낄 수 있는 한적함 때문인지, 사람이 없는 평일 오전에 슬쩍슬쩍 다녀왔던 적이 있다. 종묘의 외대문을 지나서 중지당 연못까지 걸어가다 보면 마주하는 건축물 들에서 남에게 방해받지 않고 나의 지친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나게 된다. 알게 모르게 받는 편안 함부터, 퇴근길 버스의 맨 뒷자리와 같은 휴식처처럼 지친 영혼이 쉼을 청하는 장소이기에 충분하다.


서울여행은 관광지가 건네주는 안내도를 보면서 관람코스를 정하기도 하였고, 궁궐 안내자분들의 해설에 따라서 코스를 정해 본 적도 있었다.



총 12곳의 서울문화유적장소들을 다녀왔는데, 거의 궁궐 위주의 관람이었다. 2월에는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던 장소들을 방문하였고, 실제로 개인적인 탐방은 1월에 마치게 되었다.



그때 서울여행 계획을 다 마치고서, 읽었던 책이 호밀 밭의 파수꾼이었는데, 마침 와 닿게 되는 문구가 있어서 아래에 적어 놓았다.



“무엇보다도 네가 인간 행위에 대해 당황하고 놀라고 염증을 느낀 최초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야. 그런 점에서 너는 혼자가 아니야. 그것을 깨달으면 너는 흥분할 것이고 자극을 받을 거야.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네가 현재 겪는 것과 똑같은 고민을 한 사람은 수없이 많아. 다행히 그중 몇몇 사람들은 자기 고민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지. 너도 바라기만 하면 거기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어. 그리고 장차 네가 남에게 줄 수 있으면 네가 그들에게서 배운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네게서 배울 수 있다는 거야. 이것이 아름다운 상부상조가 아니겠니?




그런데 이건 교육이 아냐, 역사야 시야.”




-호밀 밭의 파수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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