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화양연화

이상에서 현실로

Before the trip

by Minhyo

2월 설날이 되었다. 계획한 여행을 떠나기 20일 전이다. 매년 명절에 큰 할아버지 댁인 의정부로 가족들끼리 제사를 지내러 다녀온다. 이번에도 역시 의정부를 가게 되었는데, 평소와 다르게 나는 조금 긴장하고, 조금 걱정했었다.



이유는 그동안 세계여행을 가는 것을 엄마와, 아빠에게 말은 하였지만, 할아버지나 할머니, 작은엄마, 아빠에게는 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언제 말씀을 드릴까 고민하고 있었다. 가족들끼리 거의 모이는 명절이 괜찮겠다 싶어서 제사를 지낸 후 집으로 가는 길에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나: “할아버지, 저 다음 달에 미국을 다녀올 것 같아요.”


(이미 두 번 정도 미국을 다녀오신 할아버지는 나에게 어디로 떠나는지를 물어보셨다.)


할아버지: “어느 쪽으로 가니?”


나: “미국 서부요”

(결혼 안 하고 어 딜 가냐 고 들을 것 같아서 내심 조마조마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 “그래, 결혼하면 가기 어려워, 그전에 다녀와야 지”


(할아버지의 덤덤한 반응에 오히려 놀란 것은 나였다.)


할아버지: “얼마나 있다 오냐?”

(나는 6개월이라고 말을 꺼내면 큰 일 날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는지, 기간을 바꿨다.)




나: “2달 정도 일 것 같아요”


할아버지: “뭐?”




할아버지는 나에게 일정이 너무 길다고 하셨지만, 나는 웃음을 지으며 은연중에 허락을 받았다는 표시를 내고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고 나니, 그다음 가족들에게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다음 달 3월에는 미국을 향해 떠나 있을 거라는 것을 모두에게 알렸다. 모두가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나는 나의 결정이 잘못되더라도 이제는 미룰 수 없었다.




2월이 되면서 자금도 계획했던 대로 모이게 되었고, 계획도 거의 80% 이상을 마무리 지었다.겉보기에 이제 안정을 취할 단계인데, 점점 출국날짜가 다가오면서 왠지 모르게 나는 불안했다.




‘항공이 갑자기 폐쇄되거나, 결항이 되면 어떡하나? 버스가 전복되거나, 자연재해를 만나면? 예약했던 투어가 전부 취소되어서 도시에서의 일정들이 전부 날아가게 되면 어떡하지?’ 등의 일어나지 않은 걱정들로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있었다.



어떤 날은 걱정이 너무 심해져서 모든 여행을 중단할까라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내가 언니에게 ‘이 여행이 너무 걱정이 된다’고 말하니, 언니는 “계획하고 준비한 것만큼 된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나는 그 이야기를 한동안 곱씹으면서 다시 마음을 정비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계획들을 다 준비했었고, 시간 또한 성실하게 썼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고민만 했던 지난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나는 반드시 떠나야 한다. 내가 이 여행을 왜 떠나고 싶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라고 스스로에게 자문하였다.



그리고 여행 중 마주하게 되는 문제들이 있어도 다른 식으로 극복 가능한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라 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상에서 현실로


꿈꿨던 일을 실현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또 그곳까지 가기 위한 여정은 왜 이렇게 먼지, 말로만 하는 것이 얼마나 쉽고 행동으로 한다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중간에 얼마나 맘 편히 쉬고 싶고, 중도포기하고 싶은 지 참 여러 감정들이 오고 갔다.



처음 겪어보는 감정들이 많았는데 살아 있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단순히 종이 위에 옮긴 단 한 글자, 한 문장의 꿈들이나 목표가 내 것이 되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들과 그 사이의 노력 그리고 끝까지 해내는 열정이 필요했다.



나는 종이 위에 적었던 나의 언어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기 위해 지난 시간 동안 했던 나의 노력들을 보게 되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는 시간은 따로 없었다. 그저 휴식을 취할 때 틈틈이 나에게 있는 시간마다 실천했을 뿐이다.




준비했던 서울여행을 가는 도중 버스 안에서, 친구들과 약속을 만나러 가는 지하철 이동 중에, 평일 일이 끝난 자정 너머에, 주말에 쉬는 날이 생길 때마다, 그렇게 여행 준비를 해 나가고 있었다. 꽤 성실하게 준비했었다. 한번 떠나고, 다시는 없을 기회처럼 이번에는 길게 떠나는 여행이었던 것만큼 잘 준비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람되게 채워 나가서 그랬던 걸까?



후회되지 않는 시간들로 보낸 지난 7개월 동안의 시간 덕분인지, 나는 이제 나의 세계여행이 불안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곧 떠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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