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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hyo Jan 01. 2022

통번역 대학원


왜 통번역 대학원을  검색했을까? 


어쩌다 알게 된 직업인지는 잘 모르지만, '통역사' 딱히 생소한 직업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한 프로그램의 소개팅녀로 나온 여성의 직업이 통역사였거나, 아니면 모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외국인이 나오면 그 옆에서 순차통역을 해주는 사람이 통역사였다. 통번역 대학원은 꽤나 많은 직업으로 연관 검색어에 오르게 되면서 자주 접했던 단어였다.  


‘멋있다.’ 그들을 보면서 느낀 감정은 그것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 길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스스로의 영어실력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통역사는 어렸을 때부터 언어에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잠재의식 속에서 여행 중 통역을 해주셨던 분들을 실제로 많이 만나게 되었다. 22개국 정도를 돌아다니게 되면, 해당 국가에서 영어로 쓰는 일 이외에 또 다른 언어를 정말 많이 접하게 된다. 당연히 제3국의 외국인들이 낯선 장소에서 만나 처음 사용하는 언어는 단연코 영어였다. 그렇게 영어를 기본 언어로 다양한 언어들이 상호 간에 통역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통역 일화는 멕시코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3월의 더운 여름날, 멕시코 공항에 도착했다. 기존 유심에서 남미 유심으로 갈아 끼워야 되기에, 짐을 찾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유심칩을 파는 상점이었다. 'ola' 인사를 하고서 들어가 보니, 여성 직원 한 명 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영어로 대화를 시작하였고, 그녀의 표정이 꽤 좋아 보이지 않았다. 계속된 영어 질문에도 주저하듯 계속 스페인어로 대답을 이어나갔다. '무슨 일일까?' 내심 불안했다. 멕시코에서 지내는 기간이 2주 정도였기에, 오늘 유심칩을 제대로 바꾸지 않으면 오늘 당장 들어갈 숙소에 체크인이 취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반드시 유심칩을 사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스페인어 이외에는 다른 어떤 언어도 하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이 여성 직원이 스페인어 이외에 다른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인터넷이 되지 않아서 구글이 안되니 번역도 안되었다. 종이에 적어도 알고 있는 스페인어가 없어서 해결이 되지 않았다. 상점 밖을 나가서 와이파이가 되는지를 왔다 갔다 확인해 보았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될까? 앞으로 갈 길들이 많은데, 멕시코에서 이 여행이 끝나는 것일까?  


 그때 갑자기 'hello'라고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토록 기다리던 반가운 영어 소리였다. 영어단어가 이처럼 반가웠던 적이 있었을까? 뒤를 돌아보니, 외국인 남성이었다. 잠시 여성 직원과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영어와 스페인어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이중언어 구사자였다. 이후에 이 남성이 나의 상황을 여성 직원에게 통역해주었다. 영어에서 스페인어로, 그리고 다시 스페인어에서 영어로 대답을 들었다. 처음 겪었다. 두 가지 언어가 동시에 변환되는 상황을 말이다. 남성분 덕에 무사히 유심 구매를 할 수 있었고, 덕분에 공항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때 당시의 상황이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가지 않는다.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로 변환되어 의미가 남는 것. 각자가 사용하는 모국어가 다르지만, 한 명의 동시통역사로 인해서 언어를 공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그 순간. 나는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단 한순간도 그 장면을 잊은 적이 없었다.  


 여행을 하는 내내,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평생 밖을 나가지 못했다면 전혀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경험했다. 80억 인구라면 서로 살아가는 삶의 모양이 80억 개의 그림일 테고, 이 다양성이 존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여행하는 동안만큼은 적어도 내가 다른 길을 걷는 것에 대해서 조급함과 불안이 밀려오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더 꿈을 꿨는지도 모른다. 유독 그 안에서 누군가와 닮아가고 싶은 '미래의 나'가 있었다.  


 '통역사' 인생에서 한 번쯤은 살아가면서 불려 보고 싶었다. 단 한번 정도 라도 말이다.  


 가 진경력도 없었고, 포기해도 크게 타격이 오지 않는 것들을 손에 쥐고 있었다. 안정된 직장도 없었고,  미래를 함께 그려나갈 애인도 없었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식으로 앞 길을 선택해도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아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첫 선택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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