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화양연화

사람들은 왜 그녀에게 열광했을까?

프리다칼로

by Minhyo

멕시코 여행을 계획하면서 방문하고 싶었던 도시는 3곳, 과달라하라, 과나후아토 그리고 멕시코 시티였다. 프리다 칼로는 내가 멕시코시티를 방문하게 된 이유이자, 여행을 떠나기 전 공부했던 세명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전까지 그녀의 이름을 들어 보기만 하였고, 영화’ 코코’를 통해서 그녀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사람들은 왜 그녀에게 열광할까?


다른 예술인들과 어떤 점이 달랐던 걸까?



그녀는 1907년에 태어나서, 1958년에 사망했는데, 47년의 인생 동안 32번의 수술과 3번의 유산이 있었다. 1907년에 태어난 그녀는 1913년에 소아마비에 걸렸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아픔이기를 바랐지만, 더한 고통들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1925년 대학교에 들어간 지 3년 후에,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트램과 버스의 충돌로 인하여 프리다 칼로는 심각하게 부상당하였다. 이사고로 왼쪽 다리가 11곳이 골절되고 오른발이 탈골되었으며, 요추, 골반, 쇄골 등의 부위가 골절되고 갈비뼈가 부러지며, 자궁이 크게 다치게 되었다. 의사들은 아무도 그녀가 다시 걸을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하였고, 프리다 칼로는 거의 9개월 동안이나 전신에 깁스를 하고서 침대에 누워있었다. 한 달 동안 Red cross hospital에서 시간을 보내었고, 무기력함을 대신하여 시작한 것이 그림 그리기였다.



“My painting carries with it the message of pain”

1928년에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게 되었고, 1년 후에 디에고 리베라와 21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하게 된다.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생활 동안 내조를 하느라 자신의 그림을 그릴 여유가 없었는데, 결혼 후 프리다 칼로는 결혼생활에서 엄청난 외로움과 고독을 느꼈으며, 디에고 리베라의 여성편력(불륜)으로 인해 고통이 배가 되었다.

“There have been two great accidents in my life. One was the trolly, and the other was Diego. Diego was by far the worst.”



그녀가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생활을 통해서 언급한 것이다. 1934년에 교통사고로 인하여 자궁이 크게 손상되어 프리다 칼로는 2번째의 유산을 겪었고, 디에로 리베라는 프리다 칼로의 동생인 크리스티나와 관계를 맺었다. 이 사건으로 고통과 절망이 최정점에 달하게 되었다.


“Painting completed my life”




1935년 디에고 리베라와 떨어지게 되면서 San angle 집을 떠난다. 몇 달 동안 그녀 자신의 아파트에 살게 되며 여성인 친구들과 함께 뉴욕으로 여행을 간다.

1938년에는 첫 전시회를 하였고, 1년 후 파리로 여행을 가서 그녀의 작품을 전시를 한다. 그리고 그 해에 디에고 리베라와 이혼했지만, 프리다 칼로는 그를 잊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하여 이혼한 지 1년 후에 다시 재혼하게 된다. 결혼을 한 뒤 1941년부터 고요야 칸에 있는 Blue house라는 현재의 프리다 칼로 박물관에 살게 된다. 그녀의 작품들을 보게 되면 135점의 작품 중에서 55개가 자화상이다.

코요야칸 blue house

“I paint self-portraits because I am so often alone, because I am the person I know best”



그녀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주제가 바로 자신이기 때문에, 자화상을 그린다고 말하였다. 절망과 고통의 순간에도 그녀는 운명 앞에 절대 굴복하지 않았으며, 그런 고통을 예술로서 승화시켰다.

“I hope the exit is joyful and I hope never to return”



그녀가 말하였다. 자신의 마지막 일기에 “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생활과 자신의 교통사고로 생긴 정신적인 고통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여 그림을 통해서 비추었다. 그녀의 존재가 잊히다가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나게 되면서 다시금 부각되었고 현재 그녀의 작품들은 멕시코 국보로 분류가 되었다. 누구든 프리다 칼로와 같은 기구한 운명이라면 삶에 굴복되지 않을까? 그림을 제외하고서는 기댈 곳 하나 없던 그녀의 삶에서 어쩌면 그림은 남편 이상의, 가족 이상의, 친구 이상의 역할을 해준 외롭지 않게 동반자 역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Noguchi’s Butterflies


I can not walk

I can not see

Further than what Is in front of me

I lay on my back

Yet I do not cry

Transported in space

By the butterflies

Above my bed

Another sky

With the wings you sent

Within my sight

All pain dissolves

In another light

Transported thru time

By the butterfly

This little song came to me

Like a little gift as I stood

Beside the bed of Frida

I give it to you with much love

Patti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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