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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hyo Sep 19. 2020

파리의 미술관을 거닐며, 이전과 다르게 살아볼 용기란?

프랑스 파리여행, 오르세, 루브르, 퐁피두 센터를 다녀온 후

“예술은 습관에 반대하고, 우리가 경탄하거나 사랑하는 것에 갖다 대는 눈금을 재조정하도록 유도해 그 소중한 것을 더 정확히 평가할 수 있게 우리를 되돌려 놓는다.”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중에서





보통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이러한 시간들을 재조명하기란 쉽지 않다. 무관심했던 사물의 생김새를 유심히 관찰한다던지, 현실의 상황을 잊고서 유토피아에 대한 공상만을 늘어놓기란 자연스레 하기 어려운 일이다. 인위적인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다면, 혹은 어떠한 이끌림에 의해서 자신을 그런 상황에 데려다 놓지 않는다면 분명 귀찮은 일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파리의 미술관들은 나에게 ‘사유의 시간’들을 주었다. 내가 ‘마주치는 일상’과 ‘주변의 사물’이  얼마나 다른 관점으로 해석이 될 수 있는지  새로운 시선을 제공해 주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스스로가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것들, 혹은 의도 등을 작품 속에 넌지시 넣어둔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스스로가 옳다고 여기는 ‘세계관’ 혹은  ‘자아를 찾게 해 준 사고’를 작품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그 작가가 화가라면  그러한 의도들은 그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행 중 마주한 여러 작가들을 통해서 이전까지와는 다른 ‘스쳐 지나가지 않는 법’을 배웠다. 물론, 이 경험으로 매 순간의 모든 시간들을 예술적 상상에 기반하여 살아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전보다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서 작품들을 대한다는 말을 더 전하고 싶다.


방문한 미술관들


대표적으로 내가 방문한 파리의 미술관들은 오르세, 루브르, 오랑주리 정도였다. 유럽의 여름은 평소보다 일몰이 늦기 때문에, 그 당시 여행 일정이 여름과 마주했던 나에게는 자연스레 많은 것을 가져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미술관으로 채워진 파리에서의 시간들은 이 도시들이 나에게 전하고자 하는 감성적 소통을 채우는데 기여했다. 발길이 닿는 곳, 자연스레 도착한 미술관에서 나는 성장의 시작을 위한 ‘주변 사물의 재조명’ 시간들을 가졌다. 이 주변 사물은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이었다.


사실, 이 여행의 시작은 이미지에 대한 욕망으로 시작하였다. 본인 스스로 쌓아둔 이미지에 대한 욕망에서 탈피해보고자 결정한 세계여행이었다. 여행의 중반 정도를 지나면서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의 미술관들을 거닐면서, 매일매일 작품을 통한 감상에 젖게 되었다. 이러한 행동으로 행복, 슬픔, 절망, 환희, 무기력함, 익숙해짐, 경탄 등  내가 느끼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도 해보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왜 이렇게나 많은데 보지 못했는지’, ‘앞으로 또다시 욕망하는 것들은 무엇인지’와 같은 아주 사소하지만 귀중한 질문들 말이다.  



그런 질문들을 통해서  어렵지만 항상 인식하게 된 것이 있다면, 모든 사물의 가치는  필요에 의해 진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도 ‘당신’도 알려진, 혹은 알려지지 않은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든 사물이든 간에 재조명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고, 끝끝내 잘 알려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스스로의 꿈을 채워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앞으로의 남은 삶들을 어떻게 일상과 연결시킬 것인지, 시대와 역행하더라도 스스로가 자신을 찾는 충분한 탐색과정을 어떻게 이룰지 말이다.




내가 지낸 파리 에어비앤비에서 호스트는 할아버지였다. 그는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전 세계 여행자들과 많은 교감을 하려고 하였고,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항상 새로운 영감을 받고자 집에 방문한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할아버지는 손자 손녀들과 같이 살고 있었는데, 우리에게 영국으로 연수를 간 ‘손녀’의 방을 제공해 주었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에 내가 머물렀던 숙소는 파리의 3 지구 혹은 4 지구였던 것 같다.  파리에 도착한 첫날, 할아버지가 안내해준 손녀의 방에서 나는 침대 위로 둘러싸인 많은 책들을 보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문학작품들과, 예술 관련 서적 그리고 세계지도를 볼 수 있었다. 제 3자가 보기에 이 방에 있는 사물들은 대체로 미적인 것 혹은 인생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으로 채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잠시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이 떠올랐다. 그 많은 것들 중에서 내 옆에 있는 작은 보조 가방, 항상 가지고 다니는 수첩, 혹은 나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내가 끝끝내 보지 못했던 감정의 민낯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되었다. 나는 특별히 무언가를 이루거나 하지 않았지만, ‘멈춤’이라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내 가치가 사라진다고 하여도 ‘멈춤’이라는 선택지는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대안이었다. 그래서 방향을 몰라도 인생에서 제대로 된 방향을 찾을 때까지 , 속력을 내야만 한다고 여겨왔다. 무엇을 뜯어고쳐야 되는지, 어떻게 해야 스스로를 복구할 수 있는지 답은 모르지만 그래도 ‘멈춤’은 정답지가 아니라 믿었다.



그런 나에게 파리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주는 듯했다.


인생에서 ‘이전과 다르게 살아 볼 용기’를 갖으라고.


그것이 어떤 식이든 우리가 갈망하는 게 분명히 있다면, 정답이 거기에 놓여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주장에 대한 해답들은 예술이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컴퍼니




그 후 파리의 여행은 ‘책방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헤밍웨이처럼 책을 읽어 보는 시간, 샹젤리제 거리를 거닐면서 마카롱을 먹는 시간, 파리 시내가 가장 잘 보인다는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삶으로 채워보았다. 막상 해보니 파리에는 여전히 ‘낭만’이 가득했다. 길은 그대로인데 나는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일상에서 찾기 힘들었던 나의 새로운 시선을 파리에서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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