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통해서 ‘현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뿐 아니라 ‘과거에 지금 시대가 구축되도록 도움을 준 사람들과의 대화’ 또한 중요하다고 여겼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미 여행에서는 현시대의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스텔이나 투어 길거리 등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반면 유럽에서는 호스텔 등 많은 장소에서 backpackers 등을 만나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하고 기억에 남았던 시간들은 ‘미술관을 통한 과거 작가와의 대화’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박물관을 돌아다니고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작업이 중요했다. 그것이 과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과의 중요한 소통 창구였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의 경우 대화를 하여도 ‘자신의 속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 혹은 ‘자신이 갖고 있는 진짜 모습은 드러내지 않는다’라는 생각과 편견을 갖게 만드는 일들이 많다. 사실 진짜 사람 속 하나 안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대화로 모든 것을 아는 것도 어렵다. 대부분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 좋은 모습, 멋진 부분을 보여주려고 하기에 자신이 갖고 있는 정말 어두운 모습은 꺼내지 않는다. 아마 나도 그럴 것이다. 글을 쓰는 브런치 플랫폼에서 만큼은 좀 더 솔직해지려고 노력하지만, 맘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화가는 그러한 면에서 달랐던 것 같다. 적어도 그림을 그리는 화실 안에서는 솔직했던 것 같다. 내가 방문한 내셔널 갤러리에서 나는 다양한 화가들을 마주하였다. 역시, 각각의 나라별로 인상 깊은 화가들이 있었고, 그 화가들 중 일부는 그 시대에서 자신이 겪은 역사적 사건과 풍경 등의 그림들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술학도가 아닌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후세의 사람들의 의견을 통해 대부분의 화가를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작가의 의도를 100% 알기는 어렵지만 화실에서만큼은 투명하고자 노력한 화가의 의중을 짐작해볼 수는 있었다.
그런 생각들이 모이게 되면서 작가들의 작품을 보는 관점이 조금씩 변하였다. 작가들이 작품을 그릴 때 선정되는 주제부터, 등장인물, 소품, 의미, 숨겨진 의도까지 생각하여 그것들을 그림에 녹여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단순하게 생각했던 컵 잔 속에 그려진 명화들이 이전까지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러한 명화들을 실제로 마주하니, 질감부터 붓 터치 등 그 시대의 그림을 그렸던 그 작가의 모습들이 눈에 떠오르기 시 작했다.
‘검정 화실을 썼을까?’ ‘화실 안에 배치는 어땠을까?’ ‘혼자 지낸 화실이었을까?’
여행 전 세계의 유명한 박물관 미술관을 관람하게 되면, 명화를 실제로 봤다는 뿌듯함만 가슴속에 새기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그림에 대한 이해만 있고, 도장 깨듯 방문한 목적지들이 나의 귀국 후 자랑거리일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자랑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분명한 건 오르세, 루브르, 오랑주리, 프라도, 쁘티 팔레, moma, 퐁피두센터, 내셔널 갤러리 등을 다 니면서 나는 하나의 작품을 통한 세계의 역사들을 관람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현재를 살 아가는 나에게 과거를 이해하는 아주 소중한 자료가 되었던 것 같다. 미술사를 정리하다 보면 변 화가 있던 시점들이 곳곳에 있다. 예술은 세상의 변화를 통해서 스스로를 재탄생시킨다. 예술 또한 스스로의 역할에 충실하며, 시대에 맞게 발맞추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아주 미묘하지만,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내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들이 좀 더 넓어지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