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산맥을 따라, 스위스
행복이란 것 자체가 크게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찾는 일이 진부하지도 않은 것 같다.
다음 여행지를 위해서 독일 calw에서 쉐프하우엔으로 이동하였다. 쉐프하우엔은 독일과 스위스의 국경지대였고, 그곳에 서부터는 스위스에 해당되었다. 기차를 타고서 지나오는 길들을 창문 너머 볼 때면, 독일 국기가 있기도 하고, 스위스 국기가 있기도 하다. 오히려 국경쯤 다다르게 되면 경계라는 것이 중요했나 싶을 정도로, 양 쪽 국기가 동시에 세워지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기차가 달렸던 걸까?
스위스 루체른에 드디어 도착하게 되었다. 스위스에서는 스위스 패스라는 교통권을 미리 한국에서 예매해 갔었는데, 4일권이 30만 원이다. 빅맥지수가 정말 높은 만큼 값비싼 물가를 자랑하는데, 마 테 호른에서 먹은 신라면이 9600원이었고, 콜라 한 개가 6600원인걸 보니 마음먹고 와야 하는 여 행지이긴 하다. 그렇게 루체른에서 1박을 보낸 뒤, 인터라켄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스위스의 풍경이 좋을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보이는 곳곳, 호수마다, 산맥마다, 마을마다 세상의 평화를 보여주듯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비현실적인 그림들이 눈앞에 보였다. 너무 놀라서 사진을 찍고 나면, 더 아름다운 풍경이 나오고 이번 에는 감동하여 동영상을 찍으니, 스위스의 풍경이 웃는 듯 파노라마 같은 장관을 연출해 주었다. 자연과 둘러 쌓인 도시에서 하나의 그림을 보았다. 내가 머물던 숙소에서도 집 밖을 나오기만 하 면, 믿기지 않는 장면들을 자주 접하곤 했다. 현실이 아닌 것 같은데, 현실이어서 이 꿈이 깨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스위스에서 이렇게 즐겁기만 했을까?
나의 여행은 혼자서 의 여행이 아닌 자매 여행이었다. 계획부터, 일정 까지를 모두 함께 하다 보니, 사실 여행경비를 아끼거나, 힘든 일들을 나눠서 하는 도움이 되는 측면도 많았지만, 단점은 정말 많이 싸웠던 기억이 난다. 처음부터 싸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중남미부터는 정말 한 도시 걸러서 한 번씩 부딪힘이 있었다. 사진을 찍는 장소에서 원하는 구도가 안 나왔다고 싸우기도 하였고, 자유 일정들을 변경하려고 할 때 서로가 이기적이다 라는 이유로도 싸웠다. 음식 메뉴를 고르는 것부 터, 구글로 지도를 찾는 법, 각자가 배려를 한다고 하여도 사람 마음이 뜻한 대로 되지 않아, 자 신과 어긋난 의견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다 보니 싸움이 많았었다. 서로가 다른 시간 개념부터, 서로 다른 성격, 머물고 싶은 시간 등 “왜 나에 대한 배려가 없이 상대가 이기적인가를 향한 질문으 로 끝도 없이 다퉜던 것 같다.
그렇게 싸움이 너무 지쳐 어느 순간은 여행을 하러 온 건지, 싸우 러 온 건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각자가 서로 떨어져서 여행을 하자고 심각하게 나왔던 장소가 바로 스위스였다.
예전에 언니와 홍콩 자유여행을 할 때는 3박 4일의 일정이어서, 문제가 있어도 짧은 일정 덕에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는데, 이번 여행은 5~6개월을 함께 하다 보니, 어떤 문제가 생기면 다음번에까지 연결되고 지속이 되다 보니 서로에게 상처를 준 점들이 많았다. 그렇게 기차 안에서 서로가 잠시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여행을 온 이유가 적어도 싸우러 온 것은 아닌 것 같다고, 그래서 서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각자 여행을 떠나자’라는 생각이 서로의 머릿속에서 더 크게 지배하고 있었다.
“각자 여행을 떠나자”, “경비도 나누고, 이제까지 함께해왔던 모든 것들을 다 나누자.”
“그리고 혼자만의 여행을 갖자, 어때?” 서로가 동의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니, 더 이상 싸울 이유가 사라졌다. 모든 것이 정리되는 듯했다.
그런 게 알게 모르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 것 같았다.
‘뭐지?’ 이 말로 설명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은??
‘기차 안에서 1시간 뒤면, 우리는 이제 각자의 여행을 떠난다.’ 분명히 원하던 결론에 이르렀다.
혼자 여행을 간다고 생각해보니 앞으로는 먹고 싶은 음식도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었다. 가고 싶은 여행지도 제한이 없었다. 머물고 싶은 시간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더 이상 누군가와 공금으로 싸우는 일도 없고, 상대방의 시간 개념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좋은 일만 있는 것을, 왜 진작하지 않았을까? 의문을 가졌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데, 나 왜 주저하고 있지? “속으로 되뇌었다. 마음이 심술궂을 정도로 불편했다. 갑자기 언니와 함께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점점 커져왔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시 선택들을 돌리고 싶을 만큼 후회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함께 여서 둘이 여서 할 수 있던 것들이 참 많았다.
새벽에 일출 보러 산행을 올라가는 것도, 둘이 여서 가능했고, 40분 정도 고속도로를 걸어가서 별 보는 십자가 언덕에 올라가는 것도 함께 여서 가능했다. 항상 고급 레스토랑을 가지는 않았지만, 음 식을 나눠 먹어서, 같이 먹어서 더 맛있었고 즐거웠다. 내가 떠들 때면, 한국말로 반응해주는 상 대가 있어서 신이 났고, 20시간이 넘는 버스를 타면서도 심심하고 외롭지 않았던 것은 어찌 보면 동행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미에 서든, 유럽에 서든, 미국에 서든, 아프리카에 서든 언니가 있어서 교대로 번갈아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었고, 짐을 지킬 수가 있었다. 혼자만 여행 계획을 세웠 다면 너무 힘들었겠지만, 함께 이뤄간다는 목적 때문에 책임감 있게 마무리할 수가 있었다.
“둘이어서 참 좋은 일들이 많았다” 서로가 각자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좋았던 순간들만 떠올랐다.
나쁜기억이 사라지다니, 참 바보 같았다. 사람 참, 이중적이었고, 참 간사했다.
그렇게 1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서로가 비슷한 생각을 마치게 된 건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안 고서 서로를 보면서 웃게 되었다.
나는 ‘내 감정’ 이 힘들다는 이유로, 여행에 대한 불평을 꽤나 크게 가지고 있었다. 여행지로서 이 상적이고, 완벽하게 멋진 풍경 앞에서도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기분 좋은 반응들을 찾는 행위를 완전히 잊어버렸었다. 나에게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자연들이 눈앞에 있었는데도, 전혀 보지 못하였다.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다른 쪽에서 힘을 빼고 있었다.
행복이란 것이 거대하거나,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그것을 찾는 연습이 진부하지 않다 라는 것을 배웠다.
고개를 돌려서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하면, 좋은 점도 많은데 시선 한번 바꾸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던 걸까?
과거의 나도 그러지 않았을까?
한 치 앞도 모르는 길에서 정작 중요한 것들을 잃은 채, 다른 방향 만을 바라보다가 소중했던 것들을 잃었던 것 같다.
잃지 말자. 지금 나에게 있는 것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