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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hyo Sep 23. 2020

이탈리아 나폴리에서의 오후 두시, 닭다리 뼈

엄마 아빠 이제는 내가 기억할게!


[KB금융그룹_기업 PR] “하늘 같은 든든함, 아버지(몰래카메라) 편”에서 40개월 미만 자녀를 둔 젊은 아버지들에게 아동 학습 발달에 미치는 아빠의 역할이라는 명목으로 몰래카메라를 실시했습니다.






영유아기 아동 학습 발달 영향 분석 조사실에 참가자들이 들어오게 되고, 한 사람씩 그 공간에서 설문지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설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아이의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으신 가요?
당신 차에, 핸드폰에, 책상 위에, 지갑 속에, 아이의 사진이 몇 장이나 있나요?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건 언제 인가요?









같은 질문에 대상만 바꿔서 다시 설문지를 드렸습니다.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건 언제 인가요?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아버지를 안아본 적이 있나요?


아버지의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으신 가요?


당신 차에, 핸드폰에, 책상 위에, 지갑 속에, 아버지의 사진이 몇 장이나 있나요?





위의 질문들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 멍했다. 나를 굳게 만들었고, 잠시 한동안 먼 곳만을 응시했다. 어떠한 질문도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하 신지, 자는 모습을 본적과, 지갑 속에 사진이 있던 적이 있을까? 몰래카메라 설문 후에는 참가자들에게 제공되는 부모님들의 영 상 편지가 있었다. 내용은 대게 아래와 같다.




“미안하다, 내가 참,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부모로서 무언가를 충분하게 해 줘야 하 는데 그렇게 해주지 못하여서 미안하다”



“스스로가 잘 커서 너무 고맙다”





여행을 떠나 와보니, 부모님과 같이 내게 헌신적인 사랑을 주시는, 전적으로 믿음을 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18년 7월 15일에 나폴리에서 엄마와 통화를 하였다. 그리고서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린다. 나와 통화 중이던 엄마가 그냥 아빠에게 휴대폰을 쥐어 준 것이다. 그렇게 무뚝뚝하던 아빠가 여행이 재미있는지, 물어보셨다.



아빠: “그래, 여행 재미있어? 힘들지는 않고?”

나: “여행 재미있고 안 힘들어, 그리고 잘 지내고 있어”

아빠 : “밥은?”

나: “밥 먹었지. 그리고 밥도 잘 맞아!

아빠: “돈은? 돈은 아직 괜찮고?”

나: “그럼 그럼, 아직 많이 남았어”

아빠: “그래,,, 알았다. 밥 잘 챙겨 먹어라. “




그렇게 아빠와의 통화를 마쳤다. 나는 이렇게 여행을 떠나와서야 엄마, 아빠와 통화하는 시간들을 갖게 되었다. 이런 간단한 안부인사의 전화를 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평소에 전화를 하면, 서로 ‘왜 무슨 일 있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전화가 사실 무슨 일이 없어도 서로 목소리 듣고 할 수 있는 것이지 않은가? 이렇게까지 집을 떠나고 나오니, 가족들에게 연락하고 지낸다는 게 참으로 못날 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화기 버튼을 누르는 것이 뭐 그리 어렵다고 숫자 앞에서 그런 고민들을 했을까? 나는 그때 내가 어디를 떠나던, 어느 곳에 살고 있든 부모님 손바닥 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아도 어느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계셨다. 내가 간 여행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를 중요시 여기고 궁금해하셨다. 본인들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희생하시더라도 내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셨다. 그런 부모님의 딸이어서 다행이었고, 서른이 되기 전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나폴리 항



티라미수 닭구이





나폴리항은 세계 대 3 대 미항 중 한 곳이었다. 숙소 근처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항구가 바로 보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바람도 쐴 겸, 언니와 함께 나폴리항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나폴리 항을 가는 시간이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언니와 나는 마트에서 조리식품을 산 후 항구에서 먹기로 하였다. 마트에서 닭구이와, 티라미슈, 맥주, 탄산수, 우유를 샀다.  나폴리 물가는 그 이전에 방문했던 피렌체나, 로마보다 더 저렴했다. 6 유로에 장을 보고서 항구까지 20 분을 걸었다. 길을 헤매느라 실제로는 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드디어 바다가 보였고, 마트에서 장본 음식들을 항구 바다 앞에 펼쳐 놓았다. 우선 티라미스와 우유부터 먼저 먹고 이제 닭구이를 맥주와 먹을 계획이었다. 닭다리 허벅지까지 살이 올라간 한쪽과 포테이토 구성인데 꽤 큰 양에 언니와 나는 둘이서 다 먹지도 못하였다. 닭다리에 있는 살을 포크로 찍어 먹으면서 미항을 바라보았다. 그 때 내 손에 뼈가 들려 있었는데, 다리 살들이 뼈로부터 잘 발라질 때마다 괜스레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엄마였다.’





엄마는 이랬다. 변변치 않은 살림이었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반찬을 해 주셨다. 수능을 망하고 집에 와서 운 날에도, 학교를 자퇴하고 돌아온 날에도, 취준생으로 면접에 떨어졌을 때도, 백수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오늘 하루, 괜찮았다고” 집밥을 해주셨다.. “다음엔 더 괜찮을 거라고” 말이다.





엄마는 그랬다. 닭고기나  생선과 같은 음식들을 먹을 때마다 모든 가시들과 뼈를 발라주셨다.  김치전을 부쳐먹을 때도, 전을 다 부치고서야 맛을 보셨고 중간 시식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었다. 명절 때면 차례대로 오는 가족들을 위해  항상 부엌에 계셨고, 생일과 같은 특별한 날에도 엄마의 공간은 여전히 부엌이었다.






내가 집에서 이러한 음식들을 먹을 때마다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시던 엄마의 손길이 떠올랐다. 목에 걸리지 않게, 고기를 얼른 먹을 수 있게 항상 옆에서 도와주신 엄마 모습이 아른거렸다. 돌이켜보니 엄마는 우리가 밥을 다 먹고 나서 그제야 식사를 하셨다. 항상 그랬다.





“엄마, 왜 밥 안 먹어?” 나는 매번 물어보았다.



“좀,, 이따”




“음 ,,, 자리가 없어서”




“알았어, 금방 갈게”




그 시간들을 알아차리기까지 나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닭구이를 포장한 박스에 담긴 닭 뼈 들 사이로 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그리고 그 물들 과 지난 시간  함께한 부모님의 고단함 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지중해 한가운데로 그 생각을 보내었다. 다 알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헤아릴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는 생각과 함께 나의 나폴리 첫날을 그렇게 보냈다.




<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굼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중 <스며드는 것>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엄마가 나에게 전해주는 말이었다. 더 이상의 아픔이 없도록, 힘든 일이나 슬픈 것들은 자기 세대에서 끝날 수 있도록 엄마가 지난 시간 동안 내게 해주었던 말인 것 같았다. 마치 살아있는 꽃게가 죽기 직전 뱃속의 자신의 알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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