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기들을 피해서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를 보러!
[화장실 사기 수법]
아테네에서 28일 23:55분까지 있다가 비행기를 타고서 카이로 상공에 도착하였다. 카이로에 도착하니 새벽 1시 40분이었고, 비행기에서 내리게 되었다. 이집트 여행을 오기 전 다른 블로그에서 들은 정보로는 , 이곳은 굉장히 낙후했다고 들었는데 막상 와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산토리니 공항 터미널은 정말 버스정류장 같았는데 카이로 공항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카이로 공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도착비자를 사야 하는 일이다. 도착비자는 이집트에 도착 시 비자를 은행에서 돈을 주고 사는 것을 뜻한다. 몇몇 아프리카 국가들이 무비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비자 관련 사항을 반드시 확인해 보아야 한다. 이집트 도착비자는 25 usd 였다. 그렇게 비자를 사고서 내려와서 짐을 찾았다. 내가 먼저 캐리어를 찾고서 잠시 대기하고 있었고, 언니 역시 짐을 찾아서 같이 만났다. 후에 언니가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언니가 말하길 ‘이곳은 눈뜨기도 전에 코 베어 간다’라는 말을 했다.
왜 그런가 들어봤더니 , 화장실 안에서 어떤 여자가 굿모닝 인사를 하였다고 한다. 볼 일을 본 후에 손을 씻고 나왔는데, 그 이집트 여인이 휴지를 쥐어주었다. 언니는 휴지가 개인적으로 있어서 받지 않았었는데, 이것은 일종의 ‘화장실 사기수법’이었다. 휴지를 받게 되면 휴지 값에 해당하는 돈을 요구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 휴지가 질이 좋거나 엄청 깨끗한 휴지가 아니라 그냥 화장실에 있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공용 휴지였던 것이다. 외국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이 정말 여러 종류의 사기와 다양한 방법을 가지고서 달려드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피라미드의 환상을 품고서 도착한 첫날 헬집트를 경험하게 된 사건이었다.
카이로에서 2번째 날이다. 오늘은 특별히 어디를 다니지 않고서, 숙소에 있다가 이집트와 관련된 영상을 보고서 내일 피라미드로 가기로 하였다. 우선 이집트에 100개의 피라미드가 있으며 지금까지 80여 개의 피라미드만 존재한다고 한다. 가장 큰 기자 피라미드부터 그곳에는 작은 피라미드 6개에 큰 것들 3개가 합쳐져서 총 9개의 피라미드가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피라미드를 지키는 스핑크스가 있다. 룩소스, 아스완, 아부심벨 지역에서도 이집트 파라오들이 자기 재위 시절 자신들의 영토와 권력들을 더 표현하기 위해서, 지었던 피라미드 석조 건축물들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회반죽을 다 모으면, LA에서 뉴욕까지 3m로 기둥을 지을 수 있다고 하니 실로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또한 알게 된 수메르 인들의 속담이 있는데, 듣고 있자면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인생의 기쁨을 주는 것 그 이름 맥주 ( 가장 먼저 맥주를 만든 이들이 수메르인이라고 한다. )
결혼은 기쁜 것, 그러나 이혼은 더 기쁜 것
칠칠치 못한 마누라가 악마보다 더 무섭다
인생은 유한하다. 그러니 써라, 하지만 그 인생이 그렇게 빨리 끝나지도 않는다. 그러니 저축하라
이집트에 도착해서 피라미드 관련 다큐영상들을 보았다. 그러다가 수메르인들을 알게 되었는데, 3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들이 전하는 말이 현재와 관통하고 있는 점이 많다는 것에서 놀랍기만 했다. 특히 마지막 속담은 정말 와 닿았는데, 그 이유는 나의 여행 용기를 더불어 심어주는 것도 역시 저축이었기 때문이다. 여행이라는 것이 용기만을 가지고는 완성할 수 없다는 점을 배웠기 때문이다. 여행 중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벌어서 저축한 일정 이상의 돈이 있어야 경제적으로 여행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 돌아보면 삶이라는 게 꽤나 팍팍하지 않나? 그렇기에 우리는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낭만을 꿈꾸지만, 사실 이와 더불어 낭만의 순간을 즐기기 위해서는 그의 밑바탕인 저축이 항상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을 돌아보면 평화롭지는 않았지만, 그와 반대로 평화로워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18년 7월 31일
[어린아이들을 이용한 피라미드 소풍 사기수법]
오늘은 7월의 마지막 달이다. 3월부터 시작해서 7월이 끝나가는 시점이라니 시간 정말 빠르다. 오늘 아침에는 6시쯤 기상하고서 쭉 씻고, 8시쯤 아침을 먹었다. 아침에는 번 4개, 이집트 콩 잼, 크림치즈, 딸기잼, 토마토&오이, 계란, 커피 튀긴 밀가루 음식 이렇게 나왔다. 아침을 다 먹고 씻은 후 9시 20분쯤 길로 나섰다.
숙소에서 10분 정도 걸린다는 nageeb 역으로 가서 giza 역으로 가기로 했다. 이집트 metro는 테러 때문인지, 지하철을 탈 때 짐 검사를 한다. 지하철 요금은 3파운드, 인터넷에서는 잔돈을 거슬러 주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10파운드를 주고서 2명 값으로 6파운드를 내고 나니, 4파운드를 거슬러 받았다. 그리고서 giza 역으로 향했다. 메트로 노선을 보니 el giza와 giza suburun 이렇게 두 가지의 역이 있었다.giza라는 이름이 두 군데 모두 들어가서 잠시 망설였다가 한 곳을 정해서 내렸다. el giza에서 내렸어야 했는데 giza suburun에서 내려서 다시 전역으로 되돌아 가야만 했다.
피라미드까지 가는 길은 역시 험난하다. 무사히 giza 역에 내려서 피라미드를 가려고 하니 역시나 사기꾼이 많았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방문하기 전 블로그나 인터넷을 통해서 사기꾼들의 다양한 cases들을 정말 많이 접했기에 이동 방법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결국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원래 택시를 부르려고 했는데, 내릴 때마다 해야 하는 흥정에 지칠 것 같아서 택시는 제외했다. 또, 우버나 미니버스 벤을 타고 가려고 했는데, 내가 휴대폰을 잃어버려 우버 정보가 날아가게 된 것이다. 결국 버스를 타기로 결정하고서 el giza역으로 간 것이다. 보통 이집트 시내버스의 경우 버스는 번호가 없고 버스기사에게 도착지 (피라미드)까지 가는 지를 물어봐야 했다. 언니와 나는 우왕좌 앙하며 이곳저곳을 살피며 벤이 돌아다니는지, 버스는 어디에서 타야 하는지 보아야만 했다. 그렇게 걱정하고 있을 때 우리 앞에 있던 성인 남자와 여자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겉으로 보니 ‘아빠와 딸’ 같았다.
그 이집션이 말하길 ‘나도 딸아이와 피라미드를 보러 소풍 가는 길이다. 저쪽으로 가면 버스를 탈 수 있다. 우리를 따라와라 ’ 이러면서 길을 알려주었다. 처음엔 경계를 하다가 사실 더 이상의 길을 알지도 못하기에 우선 거리를 두면서 따라갔다. 우리가 경계하는 것을 느꼈는지, 그 부녀 역시 먼저 앞장서며 걸었다. ‘저 사람도 사기꾼일 수 있겠다’라고 우리는 생각을 하면서도 당장 길을 몰라서 따라가게 되었다. 도로 한복판, 8차선 도로를 건넜다. 분명한 건 그 이집션이 아니었다면 절대 건너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면서 한 편드는 생각이 ‘왜 이렇게 친절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부녀를 따라서, 피라미드를 가는 버스를 타게 되었다. 남자는 버스에 앉자마자 가장 맨 끝에 있는 4자리 좌석에 앉았고 우리 보고 옆으로 오라고 했다. 우리가 앉은 쪽이 햇빛이 있으니 자신의 옆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사실 갈까 말까 고민했는데 언니는 경계해야 할 것 같다며, 햇빛은 괜찮다며 앞쪽에 앉았다. 조금 뒤 그 남자는 내 옆 쪽으로 오더니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해주겠다면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말인즉슨, 이렇다. ‘기자 피라미드에 입구가 두 개가 있다. 한 개는 student, 또 하나는 현지인용 출입구’. 피라미드 입구까지 걸어갈 수도 없고 너무 힘든 여정이어서 낙타, 말, 마차를 타고 가는 것을 추천해주었고, 자신이 아는 사람이 그곳에서 마부 겸 가이드 역할을 하기에 소개해 주겠다고 하였다. 이야기를 듣고서 우리는 알았다고 우리는 걸어갈 거다 라고 하였다. 우리가 워낙 단호하게 말해서 그런지 그 이집션은 갑자기 자신의 딸을 뒷좌석에서 데려오더니 버스를 세워 버스에서 내렸다.
갑자기 내린 이집션의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아뿔싸, 사기꾼이었다’
나는 그때 좀 충격을 받았던 게, 길 위에서 나와 언니에게는 ‘딸과 피라미드를 보러 간다’식의 이야기를 해놓고서 막상 내가 피라미드까지 걸어간다고 하니, 그제야 버스에서 내렸다. 사태가 파악된 후에 그 버스에 앉아 있는 이집션들에게 이 버스가 기자 피라미드를 가는지 물어보았고, 다행히 옆에 히잡을 쓴 여성과 버스 운전사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피라미드까지 간다고 하여서 안심했다. 그리고 언니는 mapsme로 피라미드까지 버스가 가는 현 위치를 파악했다. 결국 우리는 지하철 6파운드, 버스비 10파운드로 무사히 피라미드에 도착하였다. 버스기사는 동양인인 우리가 신기했는지, 내리기 전에 운전을 하면서 사진을 찍자고 하였다. 운전 중에 사진을 찍자고 하였다. 참 재미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피라미드. 한 걸음 한걸음 순간마다 역시나 사기꾼이 많았다. 가장 먼저 위에 티켓 부스 쪽을 향해 올라갔다. 오르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사기수법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사기꾼들을 피해서 겨우 도착한 티켓 부스, 이번에 티켓을 샀더니 티켓부스를 지나서 첫 번째 문을 통과하는 시점에서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삐끼들이 있었다. 그 사기꾼들의 말은 ‘티켓을 보여 달라! 티켓 안에 가이드비가 포함되어 있다!’ 사실 그런 말들을 이제는 믿지는 않기에 그냥 지나쳤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free라고 돈을 안 받는다고 하였지만 가이드가 끝난 후에 tip을 요구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 사람들도 무시하고서 그냥 피라미드로 갔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서 드디어 기자 피라미드에 도착하게 되었다. giza pyramid 에는 3개가 놓여 있었고, 그 앞에 스핑크스가 있었다. 정말 거대하였고,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본 풍경 중에 또 하나의 불가사의였다. 이런 것들이 만들어지다니, 이것이 인간에 의해서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점이 믿기지 않았다. 돌덩어리는 정말 컸고, 너무 거대했으며 산처럼 높았다. 총 3개가 있던 그곳의 피라미드를 30’c가 넘는 날씨에서 둘러보았다. 그렇게 피라미드 사이사이를 걷다가 문득 ‘숙소에서부터 버스로 피라미를 오기까지의 그 순간들’이 떠올랐다.
여기까지 오는 데 참 많은 시간들이 흘렀다. ‘버스 번호도 없는 버스를 타는 일도, 다음 정류장이 어디인지 안내도 , 에어컨도 없는 버스를 타는 일도 이제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가 글자이고 어디까지가 숫자인지 구분이 안 되는 아라빅 숫자와 씨름하는 일도, 횡단보도 없이 매번 8차선 도로를 손을 들고서 건너는 그런 상황도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국이 돌아가고 싶었으면서도 이 도시 카이로를 꽤나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기사들은 운전 중에 서슴없이 담배를 폈고, 더우면 차문을 열고 달리기도 했으며, 운전 중 만난 자신의 친구에게 말을 걸면서 차를 멈추고 개인 차량처럼 움직이기도 했다.
피라미드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우리 보고 사진 찍자고 했던 그 버스기사가 생각이 난다. 처음엔 경계를 했지만 그 사람은 그래도 좋은 이집션이었다. 피라미드를 어떻게 들어가는지, 나중에 다시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도 친절하게 상세하게 알려주었었다. 피라미드에서 구경을 마치고서 피라미드 뷰가 가장 잘 보인다는 근처 KFC로 향했다. 우리는 dinner box를 시켰는데, 세금은 20%가 넘게 붙었다. kfc에서 스핑크스를 바라보니, 이곳이 이집트라는 것을 실감 나게 해 주었다.
‘그토록 꿈꿨던 피라미드 곁으로 결국은 왔다... 직접 보러 말이다.’
2018년 8월 1일
드디어 8월의 첫날이 왔다. 이제 내일이면 비행기를 타고서 아랍에미리트를 갔다가 다시 인천으로 넘어간다. 그동안 여행했던 모든 순간, 장소들이 떠오른다. 한도시, 한도시 추억이 되었고,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많았다. 정말 무서웠던 곳들도, 눈물 나게 감동적인 순간들도 참 많았다. 도착한 곳을 떠나기 싫어서 배에 오르기 전, 버스에 타기 전, 기차에 몸을 실기 전 몇 번이고 뒤돌아서서 그 길들을 확인하고, 눈에 새겼던 도시들이 있었다.
50여 개가 넘는 도시를 여행하다 보니 여행하기에 편리하고 안전한 도시들만 생각이 날 줄 알았는데, 막상 끝나는 시점에서는 카이로와 같은 도시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교통체증인 데다가 버스번호도 없고, 정류장 표시도 아예 없어서 이곳이 사람 사는 곳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도시들이 이상하리만치 기억에서 떨쳐지지가 않았다. 사막에서 길을 몰라 원주민 뒤만 따라갔던 순간들도, 횡단보도가 없어서 고속도로를 그냥 건너야 하는 그런 길들이 즐비했던 여행 다니기 참 힘들었던 아프리카, 중동 남미와 같은 곳들 말이다. 참 웃기다.
지긋지긋해져서 떠나고 싶었는데, 막상 가는 날에 보니 그립기만 하다. 그리고 막상 한국으로 돌아가고, 귀국을 한다고 하니 남미에서 그렇게 노래를 불렀던 ‘짜파게티’도 그렇고, ‘김치볶음밥’도 별로 생각이 안 난다. 그냥 가족들만 보고 싶다. 여행이 주는 미묘한 느낌이 있다. 온전히 길 위에 서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느낌 말이다. 이방인이 되어서 한도시의 관찰자로 그곳을 구경만 해보는, 신경 쓸 것 없이 걸어볼 수 있는 여정이 있다. 나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행길을 오르고, 세계여행을 하는지 궁금했었다.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직접 발로 걷고 몸으로 겪고 두 눈으로 확인해 보았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의 일상을 겪고 현실을 본다고 믿었지만, 사실 그 안에서 내가 진정으로 본 것은 나 자신의 생활방식, 나 스스로의 사고였다.
그들을 통해서 반추된 나를 보았고, 다른 생활방식들을 내 안으로 스며들게 넣어두었다. 이로써 각각의 문화들이 전부 융화되어서 좀 더 단단해진 내가 되었고, 3월의 나보다는 좀 더 새로운 면을 갖게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