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화양연화

인생의 검정 필름 (보이스피싱)

Before the trip

by Minhyo


‘세상은 너를 돌봐 줄 의무가 없다. 그리고 너에겐 어떤 일이든 생길 수 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중




그렇다. 평온하고 안정적이던 나의 삶에 하나의 큰 사건이 생겨버린 것이다. 앞으로 계획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엄청난 행복 속에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불행을 경험한 것. 나는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의심했다.




부모님의 손을 빌리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게 노라 마음먹었다는 형진(가명)씨, 무작정 알바를 시작했지만, 생활비와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그에게 어느 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낮은 이율로 대출을 해주겠다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 여름을 적시는 단비처럼 마냥 반갑고 고마웠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도 떠오르고, 일하다 가도 떠오르고, 밥 먹다 가도 떠올라요. 다른 사람들은 돈을 잃었지만, 난 미래를 잃었어요” – 대포통장 피해자 형진씨 인터뷰 중 – [인사이트 코리아 -윤지훈 기자]


【 기자 】
젊은 여성이 길가에서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잠시 뒤 '검찰에서 나왔다'며 여성에게 다가온 보이스피싱 범은 위조된 서류를 보여준 뒤 천만 원을 챙겨 사라집니다.


▶ 인터뷰(☎): 보이스피싱 피해자


- "검사님 이랑 통화하면서 같이 움직였거든 요. 돈을 빼서 가지고 있다가 수사관이 오면 그분이 현찰을 확인을 하러 갈 거다…."


30대 이 모 씨 등 8명이 이런 수법으로 지난달 19일부터 피해자 10명에게서 뜯어낸 돈은 3억 5천만 원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2억 원은 '환치기'를 통해 중국에 있는 총책 김 모 씨에게 전달됐습니다.


"경찰은 이 씨 등 8명을 보이스피싱 등의 혐의로 검거하고 사건을 검찰로 넘겼습니다. MBN 뉴스서 동균입니다."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이.



2015년 뉴스를 통해서 유형을 접했을 당시에 너무 놀라고 충격적이었지만, 그 후에 ‘보이스피싱은 거의 사라졌겠지’ 안일했었다. 2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그러한 사기범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자각을 잊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전화 한 통으로 나는 820만 원을 날렸고, 내 통장 잔고에는 2만 3천 원 만이 남게 되었다.




잃은 것은 돈뿐만이 아니었다.




일상도, 그리고 여태껏 잡고 있었던 희망마저 잃어버렸다.


사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나는 그때의 기억들을 겨우겨우 진정시켜서, 삶의 균형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악몽 같았던 시간들을 지나서 다시는 들춰보고 싶지 않은 이야기 중 하나였고, 평범했던 일상이 아수라장으로 변해서 온갖 접시들이 다 깨져버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의 감정 하나 통제가 되지 못하였고, 통제할 수 없었다. 인생 앞에서 굴복뿐 아니라 사슬에 엉킨 코끼리처럼 하염없이 울고 만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드러내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 하나였다.



내가 사기를 당했을 때의 소원이 나와 비슷한 종류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싶었고, 그들의 극복 담을 통해서 다시 살아갈 수 있다 라는 희망을 얻고 싶었다.



사기를 당하면 나 자신이 가치 없거나 쓸모가 없거나, 무능력하다고 여겨진다. 거기서 끝나면 다행이지만, 다음날부터 상황을 인식하게 되면서 받는 충격과 존재의 무가치함이 더해져 결국 안 좋은 일로 연결이 된다. 그래서 심하면 자살 로까지 이어진다.




‘나에게는 벌어지지 않을 일있은 줄 알았다.’가 아니었다. 보이스피싱, 스미싱, 카톡 피싱, 파밍 등 치밀하게 계산된 심리를 통해서 그들은 협박과 압박, 전문적인 용어들로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은 날이 갈수록 진화를 한다.




그렇게 나도 당했다.




보이스피싱 조직단들은 기업처럼 움직이고 있었으며, 사람들의 전화가 끊어지는 부분, 문제시되는 부분들은 거듭의 거듭 수정을 더해서 교모하게 진화해오고 있었다.



운이 좋아서 빠져나오면 다행이지만, 애초에 조심하는 것, 모르는 번호와 의심되는 문자, 카톡 등을 외면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혹시 당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몰랐던 거 여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사람이라서 실수를 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것. 범인이 당신의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어 협박하고, 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혼란스럽게 만든 것, 그 시간 동안 누구보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 당신, 정말 고생했어요.



돈을 가져간 사기단의 잘못이고, 우리는 지키려 다가 잃어버렸어요.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자책하고 힘들어할 당신에게 오늘 이 말이 위로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트라우마를 겪은 분들이 소중한 인생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다음장에서 쓸 해결 방법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인생을, 삶을 놓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고 이 글이 예방주사가 되길 바랍니다.



인간은 창문에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와 같다고, 태양이 밖에 있을 때는 반짝이고 빛이 나지만, 어둠이 드리울 때 스테인드 글라스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안의 빛에서 나타난다.



폭풍우로부터 골짜기들을 보호해야만 할까?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 폭풍우로 인해 생겨난 그랜드 캐년 같은 장관을 구경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실패를 알고, 고통을 겪고, 상실을 경험하며, 깊은 구덩이에 빠져 길을 찾아 헤맨 이들이다. 그들은 동정심과 따뜻함, 사랑과 배려로 가득한, 곧 삶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 감사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니다.

ㅡ엘리자베스 퀴블로








그렇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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