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와 CCTV
우리는 사랑받고 있을 때 안전하다고 느낀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내내 부엌 창으로 눈길이 갔다. 고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 정원은 노을 진 하늘을 배경으로 붉고 노랗고 아스라이 가을의 절정을 그려내고 있었다. 붉게 물든 단풍을 보니 문득 어머님 과수원 사과가 궁금해졌다. 많이 익었을 텐데 왜 따러 오라는 말씀이 없으실까? 궁금해하던 차에 남편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머님 전화일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설거지를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엄마, 거기 CCTV를 달 만한 기둥이 없어. 아니, 12시까지 밭에서 지키고 있었다고?"
소파에 누워 전화를 받던 남편을 일으켜 앉히는 다급하고 성난 목소리가 수화기를 뚫고 들려왔다.
어릴 때 다친 다리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절뚝거리며 걸으시는 어머님께선 몇 번의 고관절 수술에도 회복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장애를 안게 되셨다. 두 다리의 길이가 맞지 않아 삐딱한 걸음걸이로 쌀농사, 고추 농사, 사과 농사를 지으시니 자식으로선 항상 걱정이다.
"일단, 알았어 엄마! CCTV는 생각해 볼게. 오늘 밤은 사과밭에 가지 말고 편히 주무셔요!"
전화를 끊은 남편은 어머님께서 밤이 되면 사과를 따가는 좀도둑을 잡겠다고, 12시까지 밭에서 망을 보길 삼일째라고, 우리 엄마의 억척스러움은 못 말린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리곤 사과밭에 CCTV를 달았으면 좋겠다는데, 기둥이 없는데 어찌 다냐며 막무가내식 통보에 한숨을 쉬었다. 아버님께선 아무 일도 아니라는데 어머님 혼자 화에 못 이겨 야밤에 밭에 나가시고 CCTV를 달아야 한다고 닦달이신 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라고도 했다.
함께 사는 가족이 공감하지 못하는 행동은 사실 이성적이고 보편적이기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과 감정이 뒤엉킨 상태일 때가 많다. 똑같은 상황도 다르게 해석하게 되는 개인적 경험이 만들어 내는 부정확한 예측은 공감받지 못할수록 분노와 억지를 부리며 과잉행동을 이끌어낸다.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과잉된 감정의 상태는 부리는 주체도 그 상대편도 불편하긴 마찬가지고, 한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다름에 외롭고 섭섭하다. 지금 어머님과 아버님께서 그러한 상태가 아닐까 생각되니 어머님의 전화가 SOS처럼 느껴졌다.
"사과 딸 때도 된듯한데, 우리 이번 주말 시골집에 내려갈까?"
"사과 딸 땐 좀 지났지!"
"그래! 근데 왜 도와달라고 안 부르셨지?"
"엄마 사정을 내가 알아? 일단, CCTV를 달아 달라는데 그 밭에 CCTV 달 기둥이 없어."
"나는 왜 CCTV보다 얼른 내려오라는 말씀으로 들리지. 암튼 어머님께서 힘드신 거잖아. 그럼 내려가 봐야지." 나의 말에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시댁에 가는 일은 쉽지 않다. 운전 거리도 멀고, 끝이 없는 농사일에 두 분이서 힘든 걸 보면 마음이 쓰여 무리하게 일을 하게 되고, 며칠을 앓는 후유증을 달고 온다. 거기에 기름값, 식사비, 부모님 용돈 등 한 달 지출의 삼분의 일이 훅 나가기도 하기에 거리만큼 마음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다. 이런 우리 사정을 헤아리기에 부모님께서도 자주 부르시지 않고, 그 마음을 헤아린다면 자주 찾아봬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이번엔 빨리 내려가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토요일 아침 일찍, 아이들까지 데리고 시골집을 향해 출발했다.
상주 고속도로를 타고 영양으로 가는 길. 눈앞에 다가서는 산들은 어느새 고운 단풍빛을 흩어버리고 그저 채도가 다른 갈색 한 빛으로 바래져 있었다. 우리 동네보다 한 시절 앞서 가는 계절감에 놀라며, 세시간여를 달려 과수원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차창을 내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목청껏 불러대고 손주들을 발견한 부모님들은 손을 흔드셨다.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답하며 자연스레 도둑 이야기를 기다렸는데 어머님께선 아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슬쩍 넘기시고 사과 농사가 얼마나 잘되었는지, 상품 사과가 많이 달려 공판장에서 인기가 대단했다는 등 우리 걱정과는 다른 이야기들을 이어가셨다. 그리곤 며칠 전 일손을 사서 사과를 땄고 좋은 값에 파셨다는 소식에 뒤늦게 도와드리겠다고 온 우리는 머쓱해졌다. 그럼 CCTV는 어떡하냐는 남편에게 그건 내년에 생각해 보자며, 이왕 왔으니 남은 사과 다 따고 내년 농사를 위한 뒷 작업을 도와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남편은 나를 쳐다보고, 나는 어머님 몰래 어깨를 으쓱했다.
어머님의 연락을 받고 울산 아주버님과 구미 막내 고모도 오셨다. 아주버님과 남편은 사다리를 부지런히 옮기며 꼭대기에 달린 사과를 따고, 고모와 아이들, 나는 손이 닿는 사과를 쉼 없이 따고 날랐다. 늦가을 해가 짧다는 걸 알기에 또 오늘 하루 도와드리지 못하면 나머지 일들이 부모님들 몫임을 알기에 최선을 다했다.
어느덧 해는 기울고 아주버님과 남편이 사과 상자를 트럭에 싣고 시골집 마당으로 나르는 동안 고모와 나는 저녁을 준비했다. 농번기에 시골에 들어오면 매번 우린 어머님 노예라며 농담 반, 진담 반 말했는데 이번도 역시 만만치 않았다.
늦가을 해는 한숨에 지고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은 시골집. 남은 설거지를 끝내고 스트레칭을 하러 마당에 나서니, 문풍지가 들썩대도록 요란한 식구들 웃음소리가 마당까지 흘러넘쳐 오랜만에 시골집이 훈훈한 온기로 숨을 쉬는 듯했다.
"여기는 해지면 춥다. 감기 걸릴라. 어여 들어온나."
방문을 열고 어머님께서 나를 부르신다. 추억을 공유한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이방인 일 수밖에 없는 나는 어색함을 지우려, 여긴 겨울 같아요! 벌써 춥네요! 라며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따뜻한 방, 그 품으로 들어가 앉았다. 좀도둑과 CCTV가 발단이 되어 모였지만 다행히 별 피해가 없었고, 다 같이 도와 부모님 한 해 농사를 마무리했다는 안도감과 여유, 맛있는 음식, 추억을 간직한 작은 방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그들 마음에 불을 켠 듯 어린 시절 이야기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다들 천둥벌거숭이 시절 모험담에 배꼽을 잡고 웃는데, 가만히 듣고 계시는 어머님의 눈은 촉촉이 젖어있었다.
시골의 시간은 도시의 시간보다 빨리 흐르고, 어른의 시간은 아이들의 시간보다 빨리 흐른다. 앞으로 쌓아 갈 추억보다 뒤돌아 볼 기억이 더 많은 부모님들의 마음은 현재나 미래보다 과거에 더 오래 머물며 자식들과 부대끼던 그 시절을 자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자식들이 보고 싶어져 전화기를 들었다가도 마땅한 용건이 없어서, 먼 길 달려 집에 오라 할 명목이 없어서 그냥 내려놓는 일이 허다할지도 모른다. 그저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도, 바리바리 싸 줄 무언가가 없어도 보고 싶다는 그 마음이 큰 이유가 됨을 알아차려야겠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 다시 시작할 기운을 얻는 존재가 우리들 아닐까! 성큼 변하는 계절 앞에 무정히 흘러가는 시간 앞에 덜컹 두려워지는 마음을 붙들어 주는 건 사랑하는 이의 다정함이다. 시골집 작은 방,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이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내 마음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