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우리나라 대표 신도시다. 도시의 구석구석이 계획에 의해 지어지고 세워진다. 그 흔한 구멍가게 하나 없고, 세월의 맛을 간직한 오랜 건물은 찾아볼 수 없는 모든 것이 새로 태어난 도시다. 오늘 지금 이 시간에도 건물들은 계속 올라가고 어떤 건물은 완공을 하고 입주를 한다. 며칠 지나 보면 도시의 모습이 달라져 있는 곳. 그중에서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이름은 첫마을이다. 이 도시는 아파트 단지를 순우리말 이름으로 짓는데 우리 마을은 가장 먼저 지어져 이 도시의 시작을 알린 터줏대감이다. 이곳으로 몇 해 전 이사 오면서 첫마을이니 정착한 지 오래된 사람들이 살 거라고, 그나마 이 신도시에서 정을 쌓고 살아가는 이웃들을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살아 보니 여긴 나루터 같은 곳이었다. 친해질 만하면 분양받은 아파트가 완공되어 이사가기를 반복하는 곳. 즉 분양받은 아파트가 완공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머무르는 그런 마을이었다.
친한 사람들이 쏙쏙 빠져나가면 여기 머물러 있다는 것이 쓸쓸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금강이 바라보이고 대전을 잇는 첫 관문 학나래교의 야경이 멋진 이 아파트가 좋았다.
아침이면 창으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옅은 구름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곳. 숲 산책길이 있고, 물길을 따라 고즈넉한 오솔길이 있는 아파트 정원이 좋아 이곳에 집을 사고 이사를 준비 중이다. 내년이면 십 년 차가 되는 아파트다 보니 이사 전 손 볼 곳이 많아 반셀프 인테리어에 돌입했다. 사실 믿을만한 토털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고 싶지만 남편은 우리가 필요한 것들만 선택해서 업체를 선정하면 불필요한 지출을 막고 재미도 있을 거라고 자신 있어했다. 나는 망설였지만 이미 마음을 정하고 신나 하는 남편을 보니 그냥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각방의 도배지 선택부터 부엌 싱크의 색상, 상판, 싱크볼, 수전 하나까지 다 골라야 하고, 문 손잡이 하나, 화장실 줄눈 색도 다 맞춰야 했다. 게다가 가전도 다양한 색상의 믹스매치를 요구하니, 뚜렷한 취향이 없던 나는 열린 선택지 앞에서 눈알이 뱅글뱅글 돌았다. 그리고 각 매장의 직원들은 무언의 압박으로 빠른 선택을 요구했다. 고르고 고르고 고르고......
부엌 싱크와 도배가 마무리되고, 가전이 들어오고 보니, 맘에 드는 것도 있지만, 내가 이걸 골랐다고! 싶은 품목도 있었다. 집이 갖추어져 가는 과정은 마치 삐삐의 뒤죽박죽 하우스 같아 나를 당황하게도 하고 또 다르게 생각하니 이런 언밸런스가 재밌기도 했다.
주말, 남편과 호수공원 산책을 갔다 돌아오는 길, 최근 입주를 시작한 나릿재마을은 해질녘이 되니 가가호호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달리는 차창으로 새로워진 도시 풍경을 보고 있는데 전면 창을 통해 조명이 뿜어져 나오는 복층 집이 눈길을 끌었다. 도로 위 스쳐 지나는 그 짧은 순간을 슬로모션으로 잡아끄는 그 집의 화려한 조명과 샹들리에는 압도적이었다. 샹들리에... 샹들리에... 나는 중얼거렸다. 우리 집 포인트 등으로 샹들리에는 아니지? 하고 남편에게 물으니, 아니지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곤 샹들리에를 달려면 집이 앤틱 해야지! 하는 필요 없는 조언도 들려온다. 앤틱한 집을 당신이 감당할 수 있겠어? 물으니, 대답은 또 흔쾌히 당신이 원하면 뭐 감당해야지! 한다. 그 말에 나는 풋 웃었다. 이미 우리 집은 뒤죽박죽 삐삐 하우슨데 부엌에 샹들리에 하나 달아도 좋지! 말하곤 나는 깔깔댔다.
슬로모션으로 눈길을 잡던 그 집을 지나가며 저 집은 정말 좋다! 남편이 말했다. 당신의 마음에도 샹들리에가 있는 거야? 고귀한 신분, 화려한 재력, 눈길을 사로잡는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 나도 조명등을 보면 항상 샹들리에가 먼저 눈에 들어오긴 해. 하지만 집이 화려한 조명으로 빛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집은 그 집에 사는 가족들의 따스함으로, 온정으로 빛나는 것이 최고지. 그런 면에서 우리 집은 이미 반짝반짝 하우스야! 하며 남편에게 엄지 척을 날려주었다. 남편은 너는 말로 다해먹지! 하면서도 웃었다.
인터넷으로 조명을 고르는 마음이 한결 가뿐했다. 너무 고가의 제품은 비추인 남편의 취향과 부엌 등의 위치, 아이들, 나의 취향을 고려하여 가지치기를 하니 한 제품이 눈에 들어왔다. 제법 마음에 들었다. 배송을 기다리는 지금, 막상 달아보면 어색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 가정에 들어오면 우리 식구다. 이미 환영할 마음으로 반기며 기다린다. 그나저나 남편 말처럼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고른 물건들이 하나하나 집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즐거운 우리 집의 한때. 유명한 밴드의 노래 가사처럼 추억할 마음에 갈피를 꽂고 가끔씩 펼쳐 볼 소중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