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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Jan 06. 2022

행복한 독서가

책 읽기의 즐거움을 가르칠 수 있는가?


광범위하고 게걸스럽고 무차별한 독서야말로 결국 분별력 있고 고상한 독서가 자라나게 만드는 기본 토양이다.
<어린이 문학의 즐거움> 중


독서 모임에서 읽고 나눔을 한 <어린이 문학의 즐거움>이라는 책에는 독서가 주는 즐거움을 열거하고 아직 스키마가 풍성하지 않은 아이들을 독서의 즐거움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이 적혀있다. 이 책의 작가는 어린이에게 양서라고 분류된 작품 외에도 여러 장르의 작품을 학년에 구애받지 말고 풍성하게 접하게 하여 독서의 진정한 재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독서의 즐거움을 전수하는 방법 중 작가가 강조하는 포인트는 강제적 주입, 학습적 접근으로 읽는 재미를 잃게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었다. 이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엄마들은 현 입시 제도에서 논술을 익히는 것을 배제하고 순수한 즐거움의 영역으로 책을 볼 수만은 없지 않냐는 현실적인 고민도 하고, 이러다 정말 아이들이 책을 학습의 도구로만 여기고 학년기가 끝나면 다시는 보지 않는 부류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에게 책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다 문득 초등 시절 틈만 나면 찾아들던 좁고 어두운 만화방을 떠올리게 되었다.




"한 시간 뒤에 만나!"

80년대 초반 초등 저학년이던 나는 오빠와 시내에 있는 오락실과 만화방을 함께 다녔다. 우린 서로 한 시간 뒤에 만날 약속을 하고 각자의 즐거움을 찾아 오락실과 만화방을 찾아들었는데 지난번에 읽다만 만화책의 다음 권이 너무 궁금한 나는 오빠가 자전거를 세울 틈도 없이 뒷좌석에서 폴짝

뛰어내려 가게로 직진했다. 오래된 책들이 내는 퀴퀴한 냄새, 여기저기 읽다만 책들이 흩어져 있는 어수선한 만화방 한구석, 앉으면 푹 꺼지는 소파에  자리를 잡고 골라온 만화책을 읽어 내려가던 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시절 나는 김혜린, 김진, 황미나, 신일숙 작가님들의 만화에 푹 빠져있었다.


초등 시절의 나는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재미에 빠져 딴 세계에 가 있는 듯 집중했다. 그다지 종류도 가리지 않았고 책이라는 대상에 대한 호감은 겁 없이 여러 장르를 기웃거리게 했다. 그중 초등 3학년쯤에 만화를 접했다. 무슨 계기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순정만화의 세계를 접하고 흥분하고 설렜던 마음은 오늘 것인 듯 생생하다. 그러나 그 당시 만화에 대한 인식은 오락용 읽을거리로 치부되어 어른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본 작품들은 결코 그저 그런 오락거리가 아니었다.

편견을 깰 만큼 수준 있는 작품들을 만나며 어린 마음에도 저평가당하는 순정만화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만화 보면서 독서한다고 할 수 있나?라는 비아냥을 들을 때면 입에 거품을 물고 만화가 펼쳐내는 심오한 세계를 강변하곤 했다. 사실 나는 황미나 작가의 <불새의 늪>을 읽으며 세계사에 관심이 생겼고 김혜린 작가의 <불의 검>을 보며 한국사에 흥미를 들였다. 즐거운 독서가 불러오는 지식 체계의 확장이었고, 무엇보다 사회 문화적 관념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자신감과 자기 유능감을 다양한 독서를 통해 키울 수 있었다. 책이 나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을 알기에 아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심어주는 것은  나에겐 중요한 과제였다.


첫아이가 태어나고 꾸준히 책을 집에 들이며 읽어주기에 부지런을 떨었다. 아이의 눈 닿는 곳에 책을 두었고 어질러도 혼내지 않았다. 책 읽는 엄마의 모습이 일상의 그림이 되도록 보여주었지만 자라면서 아이는 심심하면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나가 있을지언정 스스로 책을 보진 않았다. 둘째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안타까운 마음에 책 읽기를 미션으로 내주기도 하고 매달 서점에 데려가 아이들이 고른 책들을 사주기도 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제법 두꺼워진 동화를 목이 쉬도록 읽어주었지만 그때뿐이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나가 노는 게 좋고, 유튜브와 게임이 좋았다. 나만 학년이 올라가는 아이들을 보며 언제까지 책을 읽어줄 수 있을지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이쯤 되니 독서가도 타고나는 성향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우리 집 두 아이는 아무도 독서가 자질을 타고나지 않은 것인가? 아님 흥밋거리가 즐비한  환경이 탓인가? 독서에 관한 집착도 내려놓아야 하는 나의 또 다른 숙제인가? 고민에 빠진 나날이 많았다.




큰아이가 고3이 되고 둘째가 초등 6학년이 되었다. 큰아이는 진로를 결정했고 둘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나다움의 행복을 찾아가는 방식은 제각각 다르며 각자가 찾아내야 하는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독서가 즐거운 것은 나이니 나는 책 읽기의 즐거움을 누리고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보며 책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만을 가져도 괜찮다고 여긴다. 아이들을 키우며 그림책을 만나고 동화를 다시 읽고 청소년 문학의 즐거움에 빠져 나의 독서 레퍼토리가 더 풍성해졌다. 우리 집 서가엔 내가 읽고 싶어 사는 그림책과 동화, 청소년 문학이 자리를 잡아간다. 그 책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회상하고 우리 아이들을 이해한다. 좋은 독서가 그러하듯 이야깃거리가 내 속에 차고 넘치게 담겨 쏟아낼 상대가 필요할 때면 옆에 있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건넨다. 즐거움이 담긴 긍정적인 기운이 전달되어 아이들은 엄마가 하는 책 소개에 귀를 기울이고 엄마가 책을 읽다 품은 의문에 함께 답을 찾기 위해 질문하며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보면 또 내 마음속에 우리 아이들이 즐거운 문학의 세계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품게 되기도 한다. 엄마맘은 좋은 것을 골라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 그러나 강요가 되어서는 안 되기에 그저 자연스럽게 엄마의 진심이 아이들에게 흘러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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