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시보 효과

by 하늘위로

효과 없는 약을 복용해도, 의사를 신뢰하거나 약이 뛰어나다는 거짓 정보를 믿게 되면 실제로 그 효과를 보게 된다는 '플라시보 효과(플라세보. Placebo effect)'가 있다.


플라시보 효과가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낸다면,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는 이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대표적으로 예로, 1950년대 벌어진 포르투갈 냉동창고 사건이 있다. 동료 선원의 실수로 냉동창고에 갇힌 직원이 극심한 추위를 느끼며, 몸이 얼어가는 고통 속에서 사망한 일이다. 문제는 그 냉동창고의 온도는 영상 19도였으며, 냉동창고의 전원은 꺼져있었다는 것. 결국, 그를 죽음으로 이끈 건 그곳이 '영하의 차가운 냉동창고'라는 잘못된 믿음이었다. 그가 죽어가며 남긴 메시지가 없었다면 사건은 미궁에 빠졌을 것이다.


꿈 치유 연구소에서 황지선, 황은혜, 김이분 세 사람은 노시보 효과에 대해 오래도록 대화를 나눴다. 셋은 현재 함께 살고 있다.


재판 이후에도 차마, 김이분 할머니를 홀로 방치할 수 없었던 탓에 황지선 변호사는 그녀를 연구소로 모셔오게 되었다. 셋의 생활은 둘이었을 때보다 안정감이 있었다. 김이분 씨가 연구소에 머물게 된 이후, 집은 더없이 말끔해졌고 식탁은 풍성해졌으며 정원은 그야말로 화려해졌다. 그리고 이들이 가족인 양 친밀해졌을 소식이 들려왔다.


그놈이 재판을 받았다.


김이분 할머니의 즉흥적이고 어설픈 칼 공격은 화려하게 뿜어낸 피와는 달리 빠른 응급처리로 완벽히 지혈 처리되었고, 상처의 깊이도 얕았다. 오히려 할머니의 손목 쪽이 회복되기 힘든 큰 부상을 입었다.


어쨌든 그는 빠른 회복 후 재판 일정에 참석했고, 피해자와 피의자를 오가는 최악의 사건을 배당받은 판사는 1심에서 그에게 15년 형을 안겨주었다.


범행이 계획적인 것이 아니었으니, 다른 판례와 비교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김이분 할머니는 그 정도로 납득할 수 없었다. 맑고 맑은 은아의 목숨을 가져간 죄로 그놈 목숨 열개를 받아도 모자란데, 겨우 15년 형이라니... 할머니는 분개했다.


살해를 저지른 그 자 역시, 결과를 수용하지 않았다. 재판받으러 가던 살인자는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아 피해자 신분이 되면서 당황한 나머지 논리적이고 차분하게 당시 상황에 대해 피해 진술을 하게 됐다. 결국 피해진술이 근거가 되어, 살인자의 정신질환 혹은 심신미약이 받아들여지지 않게 됐다. 그는 그 점을 억울해했다. 재판은 2심으로 갈 예정이다.


또다시 밤이면 식칼을 정성스레 갈고 있는 할머니를 보며, 지선은 고모 은혜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 더 큰일이 나기 전에 이야기하자! 꿈속 복수를.


그날 지선과 은혜는 김이분 할머니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천재 박사였던 지선 아빠의 연구로 상대의 꿈속에 들어가는 일이 가능하다며, 할머니에게 현실이 아닌 꿈속 복수를 권했다. 그리고 부디 그 식칼은 용도대로만 사용하자고 간곡히 청했다. 또다시 법정에 서는 것은 은아도 원치 않을 것이라고, 누구보다 할머니의 치유를 바랐던 사람이 은아였다고 다시금 되새겨주었다.


할머니는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어했지만, 그날 밤 꿈속에서 지선과 은혜를 만나게 됐다. 아, 예전에 꿈속에서 만난 것도 우연히 아니었구나, 놀라는 할머니에게 그녀들은 낮의 이야기를 이어서 설명해주었다. 꿈에서 깬 직후 할머니는 곧장 그녀들의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녀들은 모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할머니는 또 다시 이 말을 하게 됐다. 정말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네.


곧이어 지선은 꿈속 복수를 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고, 중간중간 은혜가 부연 설명했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따금 지선의 손을 잡거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할머니는 지선과 은혜에게 단호히 말했다. 꿈속 복수로 인해 교통 살인자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에 죄책감 가지지 말라고. 긴 세월 그 사람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가지고 고통스럽게 산 건 지선이었다고, 할머니는 힘주어 말했다.


"

저울이 있다면 달아봐.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젊은 엄마. 엄마를 잃은 어린이, 아내를 잃고 어린 딸과 남겨진 남편, 남겨진 가족의 20년 트라우마 그에 비해, 상대는 음주에 졸음운전을 한 살인자의 20년 후 발생한 트라우마.

이건 달아볼 필요도 없는 일이야.

"


그렇게 이들은 마음을 모았고, 교도소에 있을 그를 향해 꿈속 복수를 준비했다. 그리고 현실의 칼만큼 강한 효과를 보여줄 노시보 효과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