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금 더 넓은 '우리'를 바라며

by 기린
10911326_10203534879512716_6844531957003197730_o.jpg


1. 나이로비에 도착하고 처음 3일간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고 어제부터 한국에서부터 친분이 있던 한 케냐 분의 집으로 이동하여 홈스테이를 하고 있습니다.


2. 현지를 방문할 때마다 늘 발견하는 것은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얼마의 기간을 있더라도 정말 현지를 이해하고 느끼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3. 외국인의 신분으로 현지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가보았던 아프리카 각 국가 수도에는 항상 이 곳이 정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프리카인가 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좋은 장소들이 많습니다.

4. 그리고 우리는 얼마든지 그런 시설 (복합 쇼핑몰, 카페, 호텔, 레스토랑, 수영장 등)에서 소비하고 누릴 수 있는 정보와 접근성, 경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5. 한국의 기준으로 볼 때는 이런 시설들이 흔하고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곳이지만 현지에서는 이런 시설들은 외국인 또는 돈 많은 현지인들을 위한 장소가 됩니다.

6. 여기서 딜레마가 생기게 됩니다. 물론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같은 물건이나 음식도 가격이 천지차이이며 숙박 시설도 여러 등급이 있지요. 우리는 항상 이런 부분을 고민합니다.

7. 그런데 이 곳 아프리카는 너무나 극명하게 그 차이가 들어나는 곳으로 그 딜레마도 더욱 깊어집니다.

8. 위 사진은 세계 3대 슬럼 중의 하나이며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 위치하고 있는 키베라 입니다. 그런데 담벼락 하나를 두고 바로 앞에는 현지의 중산층 이상이 살 수 있는 아파트가 그리고 뒤 쪽에는 슬럼을 볼 수 있습니다.

9. 발전하고 있는 현재와 아직도 어려운 삶의 굴레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입니다.

10. 그렇기 때문에 이 곳에서는 상황에 따라 원래 외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함께 현지를 닮아가고 필요에 따라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을 포기할 수 있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11. 그런데 실제로 현지에서 잘 균형을 잡고 선택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편하고 좋은 것을 찾게 되니까요.

12. 이것은 좋은 것을 누리는 외국인과 한국 사람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현지에서 늘 이런 편하고 좋은 것을 자연스럽게 찾고 그 곳에서 편리함을 느끼기 떄문입니다.

13. 다만 오늘 나누고 싶은 것은 지난 몇 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뜨거운 햇살 속에 먼지와 매연이 가득한 길을 걸어 갈 때나, 현지식을 먹고, 현지 버스를 타면서 또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 케냐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장이나 거리 등 삶의 현장을 체험하며 느끼는 점입니다.

14. 마음 속에 탄자니아, 세네갈에서의 삶의 장면이 겹치며 ' 그래 나는 이런 생활을 하고 이런 것에 감사했었지' 라는 사소한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지난 한국에 있는 시간동안 제가 얼마나 편하게 지내고 있는지 또 그것을 얼마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15. 제 안에 '이 땅이 가르쳐줬던 참 감사'가 사라졌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16. 이 땅을 밟을 때 마다 저는 부끄러운 제 자신을 발견하고 삶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사람이 얼마나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편한 상황에 적응하여 살아가는지 말입니다.

17. 지금 케냐에 와서 소소한 장면과 대화 속에서 깨닫고 배우는 내용과 고민들을 적어두는 것은 지나고 나서 잊어버리지 않기 위함이지만 한국에 돌아가서 생활을 하면 또 금방 잊어버리겠지요?

18. 그래서 그 잊어버림과 다시 깨닫기의 간격을 좁히고 시간을 줄이는 것이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9. 단지 물리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조금 더 크게 총체적인 차원에서 나의 삶의 태도와 방향이 어느 쪽을 지향 할 것인가 라는 실존적인 문제는 인생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도전이 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20. 소망하는 것은 제 삶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더 낫기는 힘들겠지만,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자발적인 불편함을 선택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21. 그렇게 하고자 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저는 이 땅에 올 때마다 몸은 조금 불편해지지만 마음은 더 자유하고, 참 행복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22. 이것은 상대적으로 불편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여겨서 그런 가난을 보면서 나의 부함에 대한 상대적인 만족을 얻는 차원에서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23. 오랜 시간을 지나며 느낀 것이기에 단편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내가 편리하다고 생각하며 살아 왔던 삶 속에 항상 있어왔던 부족함, 반대로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느꼈던 풍요함과 감사 사이에서 오래 고민했던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24. 사람마다 과연 어떤 삶이 더 행복하고 온전한 삶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에 한 가지로 답을 내리기 참 어려운 질문이겠지만, 저는 부족하지만 제가 구체적으로 경험하며 느끼며 나름대로 고민한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 그 답을 찾아가보려고 합니다.

25. 그런데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혼자서는 부족한 의지와 능력으로 세상과 제 안에 있는 딜레마의 간격을 좁히며 올바른 답을 찾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26.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지는 것은 참 신기하게도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어려움이 많았지만 현지와 한국에서 저보다 더 깊은 고민으로 삶을 살아가는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에 힘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27. 그래서 감사와 기쁨이 더 많았고, 그 마음의 힘을 바탕 삼아 앞으로도 계속 한 걸음 한 걸음씩 인생의 길을 걸어갈 때 이런 고민과 답을 같이 찾아 나가실 분들을 더 많아졌으면, 그리고 그 여정에서 서로 만나 격려하고 협력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8. 결론적으로 조금 더 넓은 '우리'가 되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각자 조금씩 다르지만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그 행복한 여정에 초대드립니다.

29. Karibu sana (스와힐리어로 무척 환영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세계 아동노동 반대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