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6 속초 8일째
속초에서의 두번째 책을 읽었다. 김금희의 <복자에게>에 이어 뇌과학자 게랄트 휘터의 <존엄하게 산다는 것>을 읽었다.
한 달 쉰다고 했을 때 한 선배님이 추천해줬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다고. 그 분이 추천해주는 책은 무조건 읽어보는 편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람과 운동에 대한 생각이 많았을 때 만난 분인데 만난 기간에 비해 대화가 꽤 깊었다. 나보다 스무살 많은 선배의 이야기는 앞으로의 20년을 생각해보게 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어떤 생각을 하고, 말하고, 행동할 것인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살 것인가. 아니면 우리를 인간답게 해줄, 우리를 성장하게 해줄 다른 삶의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
"외부에서 주어지는 각종 유혹과 약속, 인생을 살면서 꼭 있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에 용기를 내어 저항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위해 가용할 만한 힘이 있어야 한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깨어 있게 하며, 세상이 말하는 그 모든 유혹과 약속, 상품들보다 더 강인하고 확고하게 뿌리를 내릴 내면의 힘. 바로 이것이 내가 당신과 함께 찾으려 하는 내면의 나침반이다."
"우리는 인간 두뇌의 처리 능력을 넘어선 정보를 폭식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로 지나치게 분주하며, 쓸데없는 일에 간섭을 하느라 정작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다. 온갖 추측과 편견, 평가와 의도의 포로가 된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사실 감흥이 별로 없었다. '맞는 말씀 하시네' 정도랄까? 작가 역시 책 말미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한 확인이 될 수도, 현대사회에 대한 이해가 되었을 수도 있다.'고 썼다. 학생운동으로 시작해 직업으로서의 활동가로 살아온 지 어느 덧 20년이다. 다시 말해 나는 (만) 마흔이 되었다는 것이고, 여전히 잘 믿기지 않는다. 생각보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그 당시 선배들이 말하던 '벼랑 끝에 있다는 조국의 운명'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
저녁을 먹으면서 본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2050년에는 해수면 상승으로 몰디브가 사라질 것이라며, 기후 난민에 대해 말했다. 페이스북에서는 우리 동네 안산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인 20대 외제차 차주가 강력스티커를 차에 붙였다는 사실에 주차장 입구를 막고 비슷한 또래의 경비원에게 폭언을 했다는 기사를 봤다. 뉴스를 틀면 코로나 외에는 윤석렬, 추미애로 가득차 있다. 매일 일터에서 일하다 돌아가신 분들의 부고를 듣는다.
활동가로 살면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무력감'이다. 나와 동료들이 함께 하는 가치 있는 활동들에 큰 보람을 갖고 살지만 가끔씩 '과연 세상이 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자신 없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역사책을 읽어야 한다. 노예였던 민중들이 투쟁을 하고, 부르주아들이 공고한 권력을 깨뜨리고, 식민지 민중들이 제국주의를 향해 총을 들었던 역사,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선배들의 삶,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최근의 촛불까지. 거대한 역사 속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조급함이 좀 사라지고 뭔가 다 내 몫인 것만 같았던 부담감도 내려놓을 수가 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천천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자신의 존엄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타인의 존엄하지 않은 행동에도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한 인간의 존엄성에 해를 가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이다."
"존엄한 사람의 기본적인 특징 중 하나는 섣불리 나서지 않고, 주의 깊고 신중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언가가 자신의 존엄함을 해치려고 위협하는 상황에서만 모습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높인다.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존엄함에 상처를 입지 않는 한 평온함을 유지하기 때문에, 그저 자신의 관심사에만 정신이 팔려 큰 소리로 선동하는 이들이 대신 기준을 세우고 이익을 실현하도록 내버려두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어야 한다.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일어나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토록 존엄하지 않은 인류의 발전을 그들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멈출 수 있단 말인가. 오해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말로, 존엄한 행동으로 스스로의 존엄을 지킬 뿐 아니라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책임지고 보여주어야 한다. 가만히 앉아 존엄하지 않은 타인의 행동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격분해봐야 소용도 없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고,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자신이 가진 가능성 안에서 인간의 존엄함이 더 이상 짓밟히지도, 다치지도, 억눌리지도 않게 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 작가가 책을 쓴 분명한 의도가 나온다. 이 시대를 더 이상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한 선동이다. 끊임없이 탐욕을 권하며 폭주하는 세상에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고.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노 선배들의 위기의식은 성찰에서 비롯된다. 그 세대가 만든 이 사회를 향한 자기 반성이다. 태어나보니 이미 망해버린 것 같은 세상을 20년 넘게 살아낸 청년들은 그것만으로 장한데 세상은 그들에게 뻔뻔하게 스팩이니 자기계발이니 강요한다. 그 사이에 끼어 중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나의 역할은 분명하다.
'사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존엄함 속에 살아가는 사람. 방향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
'개인의 신념이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번째 방법은 바로 '실패'다. 지금까지의 인생관과 그에 따른 자아상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깊은 고통을 겪고 나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기 때문이다. (중략) 실패보다 더 효과적이고, 한 개인이 형성한 이상과 세계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두번째 방법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다. 그 만남을 통해 자신의 신념과는 다른 낯선 신념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전한 타인을 만나면서 자아상과 세계관을 확장하고, 비로소 자신의 신념을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생가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
존엄한 인간으로 살 것. 실패를 받아들이며 살 것. 완전한 타인들을 선입견 없이 만날 것. 내 스스로 완전한 타인이 되려고 노력할 것.
책을 덮고 나서 한 일은 '아이폰12 사전예약'을 취소하는 거였다. 책 초반에 '기업들은 목적이 분명한 광고로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이는 마치 폭풍처럼 우리의 뇌를 삼켜 계속해서 물건을 사고 버리게 만든다. 채워 넣고, 또 빼내기의 반복이다.'라는 부분을 읽는데 뜨끔했다. 자본주의의 탐욕에 대해 말하면서 나는 곧잘 현혹되곤 했다. '아이폰이 나에겐 유일한 사치라며, 과거에 비하면 핸드폰을 자주 바꾸지는 않는다며' 아이폰 사전예약을 합리화 했지만 찜찜함이 한켠에 있었다. 취소 전화를 하고 나니 맘이 편해졌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이진우 교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권하는 책이라고 했다. 모두가 이 책을 읽고 존엄한 삶을 선택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그게 쉽진 않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몫을 해나가면 세상은 변화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나는 나의 몫을 살자. 내일은 떠오르는 몇명에게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