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춫추 Sep 29. 2024

신(新)노인

노인의 손은 마르고 핏줄이 불거져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랑에 목말라하는 어린애였다. 


얼마나 철이 없었냐면 유치원생 때 아래를 벗어서 보여주면 맛있는 것을 주겠다는 오빠들의 말에 바지를 내렸던 어린애였고, 갓난애인 동생이 부러워 기저귀를 다 뗀 나이에도 바닥에 오줌을 지리면서 분유를 타 달라고 했던 아이였다.


그런 내게도 사랑은 있었다. 처음은 아빠였다. 아빠는 참 다정하신 분이었지만 잘 참으시는 분이었다. 그러니까 그 맥시멈이 꽉 채워지면 예고 없이 화를 내시거나 관둬버리시는 분이었다. 어린 나는 그런 아버지가 무서웠다. 다정했지만 갑자기 화를 내면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두 번째 사랑이 찾아왔는데 그게 바로 친할아버지인 신노인이었다. 항상 새로운 폰을 뽑던 이상한 할아버지. 하지만 다정했던 노인. 거실에서 모여 같이 잠을 자던 좁은 집보다 넓어 마당같이 느껴지던 부천 집에서 뛰어다니던 나를 예뻐해 주고 맛있는 것도 챙겨주던 할아버지를 나는 참 좋아했다. 아픈 동생으로 몰린 부모의 시선을 벗어나 오롯이 사랑을 받는 그 순간들이 행복했다. 갈 때마다 매번 퉁퉁 불은 라면을 대접에 먹어도 말이다. 명절에 놀러 다가 집에 가기가 아쉬워 아빠에게 떼를 쓰기도 했다.


그런 내가 5, 6학년 때쯤이었다. 생리가 터지기 전, 나는 짧은 반바지도 아닌 평범하게 편한 차림의 옷으로 신노인 무릎에 앉으라는 말에 웃으며 그 위에 앉았다. 신노인은 자연스럽게 내 바지 아래 팬티 속으로 손을 쑥 놓고는 그대로 성기를 꽉 잡았다. 손가락을 넣었는지 아닌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았지만 아팠던 그 감각만은 생경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말이다.


그때의 풍경과 순간들이 사진처럼 기억난다. 티비에서 시끄럽게 나오는 소리들, 바로 옆에서 뒤돌아 설거지하고 계시는 친할머니. 노란 장판 위로 밝게 빛이 쏟아지던 평범한 낮의 풍경이었다. 나는 몸이 굳은 채로 가만히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끝이다. 그 이후는 필름처럼 끊겨있다.





'엄마. 사실은...'


이 일을 나는 부모에게 말을 했다. 그것도 꽤 오래 지나서 말이다. 그날도 명절이었고 작은방에서 가족끼리 모여서 할아버지 댁에서 잘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 조용히 엄마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 엄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물어보면 그때 엄마는 할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아마도 할아버지와 이제 접붙여지는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 않을까 헤아려본다.


나는 그렇게 신노인이 죽을 때까지 그를 명절에 마주 봐야 했다. 살던 집보다 더 큰 집으로 이사 가고 나서 명절마다 올라가던 것을 멈추고 신노인과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기 시작했다. 그런 신노인이 반갑다고 등허리를 쓰다듬으면 브라의 끈이 신경 쓰이고 손길이 기분 나빠도 도망갈 곳이 없었다.


신노인은 그가 나이 들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에 내 손을 붙잡고 하던 말 하나가 있었다. "예수님 잘 믿어라..." 나는 그 말에 어이없어 눈물이 났다. 그를 만나러 병원에 가는 동안 분노가 치밀었지만 그 꾀죄죄하고 말라비틀어진 노인의 모습이 인간적으로 불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가슴 응어리가 져있다.


눈물을 닦아내고 분노가 어린 상태로 차를 타고 집에 가는 동안의 풍경이 기억난다. 긴 도로 노을이 쏟아지고 있었고 유리창에 그 빛이 반사되어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그때 머리를 둔탁하게 때리듯이 생각이 들어온 게 하나 있었다. 할아버지의 사과를 바라는 나의 행동, 그 행동의 이유. 내가 진짜 바라는 게 무엇인가였다. 결과는 하나였다.



'나 할아버지랑 잘 지내고 싶었구나. 그냥 남들처럼 평범한 할아버지와 사이좋은 손녀로 지내고 싶었구나...'



그날 차 안에서 들키지 않으려 무음으로 눈물을 쏟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신노인의 손길은 내 안에 남아있었지만 마음에 응어리가 조금은 풀어진 느낌이었다.







To. 신노인께.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저 큰손녀예요. 하늘에서는 잘 지내고 계시나요? 제 인생을 망치는데 일조한 여러 사람들 중에 할아버지를 제일 미워했어요. 우리 집 대대로 여자들은 상처받아서 결혼을 안 했을 거라 생각했고, 고모도 여전히 그대로시니 저 또한 이대로 늙어서 죽어버리겠구나 그런 생각도 하면서 살았어요. 들은 섹시하다고 얘기하는 핏줄 선 손을 여전히 싫어하고요.


하지만 할아버지, 당신과 관련된 사람이 한 명 외에 찾아오지 않던 쓸쓸한 장례식장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노래를 부르던 아버지와 동생을 봤어요. 그날 우리들은 무척 자유로워 보였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가 아니라 우리가 개인 시간 없이 종일 붙어있었던 적이 없었거든요. 서로에게 집중하고 위로하던 시간이요.


이런 우리도 다 할아버지의 흔적들이겠죠.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그날은 할아버지에게 조금 고마웠어요. 고모와 아빠, 아빠와 막냇동생의 가까워 보이는 풍경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거든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 또한 저는 참 미워했는데 그래도 할아버지를 용서할게요. 이젠 저 또한 하나님을 사랑해요. 그러니까 내 안에서 용서는 전혀 없어도 하나님 안에서 할아버지를 사랑해요.


한동안 그곳이 지옥이길 바랐지만 이제는 천국이길 바라요. 제 끝이 어떻게 끝나는지 잘 지켜봐 주시고 살면서 저를 포함한 가족들에게 실수 많이 하셨으니까 이젠 복을 바라주세요.

일요일 연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