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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Mar 31. 2020

가스실 들어가는 마음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1400조 추경예산은 방역 최선 전에 갈 수 있을까? 

"응급실에 오지 마세요. 일반 환자와 코로나 환자가 뒤섞여 아수라장 그 자체입니다."


"마스크를 쓰면 눈치를 줘요. 환자들이 불안해한다며 벗으라고 해요." 


"오늘 집 지하실을 정리했어요. 이젠 퇴근하면 가족들과 따로 지내야 할 것 같아요." 


처음, 뉴욕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건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였다. 나라 전체가 마비됐던 중국이나 한국과는 달리 뉴욕의 일상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던 시기였다. 여행도, 행사도, 학사도 차근차근 일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병원에서 들려오는 하소연들은 달랐다. 절규에 가까운 그들의 목소리들은 믿기 힘든 얘기들이었다. '설마.... 미국인데... 과장이 심하네...'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의 얘기는 사실이었다. 방역 최일선에선, 이미 두 달 여전부터, 지금의 사태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병원에서 처음 들려온 이상 신호


3월 23일, 시카고 대학 병원 간호사들이 데모를 했다. PPE를 지급해 달라는 시위였다. Personal Protective Equipment 개인보호장비를 구비해 달라고 했다. 일주일 후 뉴욕의 간호사들도 자신이 일하는 병원 앞에서 피켓을 들었다. "N95 마스크를 공급하라" "스테프들을 보호하라" "이익보다 환자" 같은 구호였다. 뉴욕 의료진들의 불안에 불을 지핀 건 키오스라는 간호사의 죽음이었다. 


"나는 괜찮아. 엄마 아빠한텐 얘기하지 마. 걱정하실 테니."


그가 누나에게 보낸 문자는 마지막 유언이 됐다. 맨해튼에 있는 유명 사립병원 마운트 시나이 웨스트 병원의 간호사였다. 기저질환 없는 건강한 40대였다. 일주일 전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을 알았을 뿐이다. 


병원서 근무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남자 간호사의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다. 매일 환자와 접촉하는 사선에 선 이들에게 내려오는 병원 쪽 지침은 안이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가장 분노한 건 기본 보호 장비의 미지급이다. 보통 병원에서 사용하는 마스크는 N95와 1회용 Surginal Mask, 그런데 수시로 환자를 접촉하는 이들에게 큰 차이가 없다며 1회용 마스크를 나눠주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렵게 받은 N95 마스크의 경우, 하나로 하루를 버티는 거나 심한 곳은 일주일에 하나를 주는 곳도 있다 한다.  동료와 나눠 쓰라고 했다는 얘기는 믿고 싶지 않다. 여기에 감염 의심자가 격리되기는커녕, 확진 환자를 치료한 이들에게 정상 출근을 요구하는 일도 다반사라는 고발을 듣다 보면 지금 뉴욕의 병원들이 밀려드는 환자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간호사들이 개인적으로 구입한 N95 마스크 착용이 목격되면 바로 해고될 수 있다는 경고문에 병원 노조가 공식 항의하는 사건도 있었다. 점심 샌드위치를 싸던 브라운백에 마스크를 보관했다 다음 환자를 볼 때 다시 꺼내 쓰는 일이나 가운 주머니에 구겨 넣으며 하루 종일 같은 마스크를 쓴다는 의사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부족한 방호복에 검은 쓰레기봉투가 사용되기도 하고 우비를 입고 환자를 맞는 사진이 메인 뉴스 화면을 장식한다. 


이런 상황 속에 병원에선 지역 사회에 도네이션을 부탁하기도 한다. 여유 분의 마스크를 비롯해 병원에서 사용하는 물품들을 기부해달라는 것이다. 그 안엔 병원 스텝용 '음식 기부'도 들어있다. 웬만해선 이런 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던 지역 주민들도 분통을 터트린다. 면봉 하나, 반창고 하나에도 $2-300 비용을 청구하던 병원이 왜 기본 장비조차 구비 못하고 주민들에게 손을 벌리냐는 것이다. 간단한 치료 하나에도 우리 돈 몇 백, 몇 천만 원을 부과하던 그 돈은 다 어디로 갔냐는 것이다. 아기 낳은 산모에게 몇 만불이 청구되던 그 병원 맞냐는 분노다. 


사령탑들의 우왕좌왕


병원에 대한 불만은 CDC(미 질병관리센터)에게로 옮아갔다. 전 세계 최고의 공중 보건 조직이라는 명성만큼 이 비상시국에 CDC의 방침은 금과옥조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지금까지 CDC의 지침은 전염병을 먼저 겪은 나라의 사람이 보기에 매우 위험하고 실망스럽다. 코로나는 airborne(공기 중 전파)가 되지 않고 dropletd(비말감염)이나 contacts(접촉)으로 감염되는 전염병이라며 N95가 아닌 1회용 surgical mask로도 예방할 수 있다는 지침은 병원 관리자의 좋은 핑계가 됐다. 더불어 CDC는 일반인들이 마스크도 장하지 않아 오히려 그들에 대한 혐오감만 높였다는 평가다. CDC는 초기 불량 진단 키트 배포 및 수거 과정을 거치며 그 명성에 흠이 가기 시작했고 중국 입국 금지에 조처에 관망만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여기에 부통령 산하의 재난기구 FEMA의 대표는 부족한 산소호흡기의 숫자도 파악하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는 등 리더십에 의문을 줬다. 특히 부족한 산소호흡기를 대신해 CPAP라는 코골이용 유사기구 사용도 가능하다는 등의 대안을 내놓기도 했는데, 국가적 재난을 책임지는 기구의 비 전문적인 대책은 일선 의료진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뉴스프로가 번역한 영국 가디언 기사에 따르면 지난 6주간 FEMA는 대통령 사위와 함께 비밀스럽게 운영되었다 한다. 


이런 상황 속에 매일 브리핑을 하고 있는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지난 24일 다시 한번 트럼프 정부를 비난했다. "뉴욕주엔 지금 3만 개의 인공호흡기가 필요한데 정부는 4000개만 보낸다 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직접 26,000명의 죽을 사람을 정해라." 브리핑을 본 많은 이들이 통쾌하다며 좋아했지만 실상은 그도 20여 일 전까진 트럼프와 똑같은 말을 했던 사람이다. "코로나는 감기와 비슷하다. 감기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 물론 이 병으로 죽는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감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쿠오모 주지사의 말이다.  더불어 현재 뉴욕주의 현저히 부족한 병상은 연방 정부가 아닌 관할 책임자인 쿠오모 주지사 탓이라는 비난도 크다. 뉴욕 병원의 통폐합 과정에서 기존 병상을 축소했고 예산도 줄여 마스크조차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현재의 수준을 만든 당사자라는 것이다. 재정 건전화란 명목으로 2.5 밀리언에 달하는 메이케이드를 줄이고 대신 건설사업을 필수 사업으로 바꾼 당사자가 트럼프 정부에 책임을 미루는 듯한 지금의 모습은 목불인견이란 의견이다. 


물론 지금의 이 사태를 만든 가장 큰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사태 초반엔 중국을, 전염이 심각해지자 유럽발 입국 금지를 해결책으로 내놓았다. 덕분에 고공행진을 하던 주식 시장을 얼어붙게 한 당사자가 됐다. 한 달 전만 해도 3% 이하라는 역사상 최저 실업률의 호황장에서 순식간에 실업자 3.2 밀리언 시대를 만들어냈다. 이 와중에 미국인들 모두에게 $1000씩 준다는 법안이 상원 1차 투표에 상정되지 못했던 이유가 천문학적인 눈먼 돈이 대통령을 포함한 호텔, 항공, 크루즈 사업자 등 억만장자들에게 돌아가게 한 내용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상원의 강력한 항의로 가까스로 수정된 1400조짜리 사상 최대의 경기 부양책이 혼수상태에 빠져버린 미국 경제에 얼마나 강력한 산소호흡기가 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스크의 부족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트럼프가 한 말은 많은 의료진들의 자존심을 상처 냈다. 


"마스크가 어디로 가나? (병원)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게 아닌가?"


민주주의와 전염병의 상관관계 


버니 샌더스를 비롯한 의회에 그룹들은 경기 부양책이 워킹 패밀리와 저소득층에 먼저 돌아가야 한다 주장한다. 병원 최일선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조치들을 해줘야 한다고 한다. 헬스케어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목소리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아 회의적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비축된 군수용 의료품을 민간에 푸는 일이라 한다. 생화학전을 대비한 마스크나 위생복을 비롯해 산소호흡기 등 현재 병원에서 모자란 소모품을 수급하기에 충분한 수요를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간사업자들의 공장을 생필품을 만드는 공장으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고 한다. 생산 설비를 바꾸고 직원을 교육시키는데 걸리는 한 달여의 안타깝지만 이제라도 그 수순을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1월 20일은, 미국과 한국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날이다. 3월 30일 흘러간 6주의 시간의 갭은 미국과 한국의 리더의 역량에 대한 갭일 것이다. 


하루 종일 최전방에서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이들이 안심하고 집에 가 아이들을 안아줄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 3월 30일 오후 9시 미국의 확진자는 163,429명. 전 세계 확진자의 1/7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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