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무명 시절을 견디고 스타가 된 연예인.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국가대표로 발돋움한 운동선수. 빚더미에 시달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수성가한 창업인.
미디어는 이런 사람들의 인생을 조명한다. 그리고 포커스는 늘 ‘고생한 경험담’을 비춘다.
그걸 접하는 사람들은 위안을 얻는다. 현재의 고생이 미래의 결실을 가져다 줄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며 현재의 고생을 멈추지 말자고 서로 격려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사실명제로 받아들인다. 성공한 자의 고생은 ‘훈장’이 되어 빛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현재의 시스템 안에서 '성공'이라는 의자는 한정 생산품이다. 수십만 명의 연예인 지망생들 중에서 고작 몇십 명, 많아봤자 몇백 명만이 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수십만 명의 학생 운동선수 중 상당수가 성인이 되면서 중도에 운동을 포기하기도 한다. 빚더미에 시달리는 창업인 대다수에게는 파산을 선고하고 재기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고생’이라는 것은 보편적 경험이다. 타고난 금수저가 아니라면 누구나 고생하는 시간을 거친다. 그 중 미디어의 조명을 받을 만큼 결실을 맺은 이들보다 빛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 성공한 소수의 고생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여전히 고생 속을 헤매는 다수의 아픔은 늘 무대 뒤편에 방치된다. 미디어가 조명하고 있는 누군가의 ‘훈장’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처절한 현재’이자 ‘잊고 싶은 상처’일 뿐이다.
고생을 전시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