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에게 ‘참을성이 많다’거나 ‘성격이 좋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보편타당한 수준으로 화를 내야 마땅한 경우가 발생했다고 치자. 똑같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 나는 화가 나는데 옆의 사람은 전혀 화를 내지 않을 때가 간혹 있다. 이럴 때 아마도 ‘나도 참아야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답답하고 짜증이 났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 옆 인물의 상태는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A) 어떤 행위나 현상에 대해 불쾌감을 느꼈으나 겉으로 감정을 표출하지 않음.
B) 어떤 행위나 현상에 대해 불쾌감 자체를 인지하지 못함.
A의 경우는 말 그대로 인내심이 많은 편이라고 칭할 수 있다. 하지만 B는 다르다. B의 경우는 감각이 죽어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보편적으로 응당 불쾌해야 할 상황에 불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결여’다. 이 감각의 결여가 극단적이면, 죽음에 이를 정도의 고통을 당하는데도 그 사람은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을 것이다. 고통을 인지하는 감각이 죽어 있기 때문이다.
분노하는 부정적 감정은 곧 ‘생존’과 연결되어 있다. 본능적인 감정이다. 까칠하거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성적 판단으로 불필요한 불쾌감은 훈련을 통해 상쇄시키는 것이 분명히 효율적이다. 하지만 보편적인 불쾌감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그에 해당하는 감각이 무뎌져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이는 타인과의 공감 능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영역이다.
‘멘탈이 강하다, 약하다’는 표현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언뜻 정신적으로 단단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냥 둔감할 것일 수도 있다. 예민한 감각이 없으니 당연히 충격도 덜 받는 것이다. 또한, 사람마다 예민한 부분이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상황에 따라 강해 보일 때와 약해 보이는 순간이 교차하기도 한다.
우린 곧잘 ‘성격 참 좋다’거나 ‘멘탈이 강하다’는 말을 칭찬처럼 사용한다. 어쩌면 그 칭찬에도 함정은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