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담채라이프#20. 우리 집에는 붙박이장이 없다.

넉넉한 수납보다 여백을 택했다.

by 채영신

우리 집에는 붙박이장이 없다.

처음에는 불안했다.


독특하게 처음부터 붙박이장이 최소화된 집이었다.

요즘 신축 아파트라면

작은방 하나쯤은 붙박이 장이 들어가 있고, 안방에도 드레스룸이 있기 마련이었다.

수납이 넉넉하면 삶도 정돈될 것 같은 기분 때문인지

이런 방식은 묘한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집은 달랐다.

주상복합의 특성상 생기는 자투리 공간에 작은 드레스룸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파트 커뮤니티에서는 ‘건축비를 아끼기 위한 선택’이라는 말이 돌았다.

괜스레 손해 보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사를 앞두고 고민이 컸다.

수납을 어떻게 보관할 것인지 며칠을 고민했다.

아이들이 커가며 옷이며 짐들이 늘 텐데 지금 미리 해두는 게 낫지 않을까.

한 번 설치하면 오래 사용할 수 있을 텐데.

그런 계산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루 빈 집을 방문해

오랜시간 집에 앉아 둘러보며 생각했다.

수납공간을 줄인 만큼 탁 트인 우리 집이 보였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은 넉넉한 수납이 아니라 ‘여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를 몇 번 다니면서 내가 정리한 나만의 기준이 있다.

고정수납을 최소화할 것, ‘이동하기 수월한 작은 가구를 배치할 것,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물건의 가격보다 공간의 가치를 먼저 생각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수납공간이 늘면 물건도 함께는 다는 것이었다.


붙박이장이 많아질수록 마음은 편해질지 모른다.

대신 물건을 덜어내는 일은 후순위로 밀린다.

잘 정돈된 공간을 원하지만 어느새 가득 차 버리는 공간이 되기 쉽다.

나는 적당히 물건을 담아둘 수 있는 공간보다 자주 꺼내보고 줄이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번거로움으로 늘 깨어있는 내가 더 원하는 방향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고정된 붙박이장 대신 이동 가능한

모듈형 옷장을 두기로 했다.

다른 집보다 많이 작은 크기이지만

지금은

아이가 쓰기에 충분한 크기다.

필요하다면 확장할 수 있고,

이사를 하게 되더라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

벽과 함께 굳어버리는 구조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함께 이동하는 도구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자가소유의 집에 살고 있지만,

생활방식만큼은 유목민에 가깝다.

직장고 학교, 아이의 성장에 따라 환경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늘 현대인은 유목민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영원히 이 집에 남을 것처럼’

완벽하게 세팅하는 것은 과하게 느껴졌다.


물론 이 방식이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느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넉넉한 수납이 주는 안정감을

더 좋아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가끔은, 붙박이장 있었으면 할 때가 있다.

문을 열면 한 번에 정리된 풍경이 보이는 그 안정감이 부럽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넓은 수납보다 비어있는 벽이, 구석까지 청소할 수 있는 바닥이 좋다.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붙박이 장이 없기에 우리는 물건을 더 자주 돌아본다.

그 반복이 결국 집을 가볍게 만든다.


어쩌면 집은 수납의 크기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자 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감각일지 모른다.

넉넉한 붙박이장 대신 여백을 선택한

우리 집 같은 선택도 있다.


나는 돌봐야 할 물건의 절대양을 줄이고

가벼워진 집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