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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영신 Apr 27. 2023

일상에세이#1. 잔돈 좀 받아주세요.

나는 10원이 너무 소중한데요.

일곱 살 첫 통장을 만들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유치원에 방문한 '새마을금고'직원들은 아이들 하나하나의 통장을 만들어 주셨다.

나의 첫 입금액은 100원이었다.


대여섯 살 즈음에는 은행이 뭐 하는 곳인지 정확히 알았을 리 없다. 그저 엄마가 "은행가자!"라고 하면 작은 접시에 돈과 함께 은행언니에게 무언가를 전달했다는 정도만 기억날 뿐이다.  나에게는 그저 아직도 텁텁함이 입에 남아있는 것 같은 200원짜리 율무차의 촉감이 내 감각 속에 진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내가 일곱 살 때 유치원에 새마을금고 직원들이 직접 방문해 아이들 하나하나의 통장을 개설했다. 아이들 손에는 모두 동전이 하나씩 들려있었다. 100원을 입금했고 100원에 세상에 본 적 없는 필체로 찍혀 나온 통장을 보며 너무나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나는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냥 내가 매일 지나가는 그곳에 내 돈이 100원 있어서 조금 더 친근함을 느꼈던 것 사실이지만 잊고 지냈다. 한 해가 지났고 새해가 되어 여덟 살 설날이 돌아왔다. 종갓집이었던 우리 집은 세뱃돈이 꽤 두둑하게 생기는 편이었다. 대략 이십만 원 왔다 갔다의 돈이 생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이 돈을 들고 새마을금고를 향했다. 통장을 건넸고 먼저 통장을 정리해 주시고 내 돈을 넣어주셨다. 정리된 통장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100원이 114원이 되어있었고 여기에 보태어 내가 입금 한 금액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호들갑을 떨며 직원언니에게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언니는 네가 100원을 맡겼고 우리가 그걸 잘 사용해서 이자로 14원을 준 것이라고 말했는데 세상에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14원이라니! 그때부터 나는 문턱이 닳도록 새마을금고를 들렀다. 초코파이를 사 먹으라고 200원을 주시면 50원짜리 빅파이를 먹고 저금을 했고 학교에서 집안일 돕기 숙제가 나오면 집안일을 돕고 100원을 받고 싶다고 요구하며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았다. 미미인형을 사는 것보다 돈이 모이는 재미가 너무 컸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면 꼭 그런 재미를 알려주고 싶었다. 큰 아이가 다섯 살 즈음 아이와 함께 동전을 모았다. 건조기 양모볼을 샀는데 그 양모볼이 저금통으로 디자인된 통 안에 들어있었다.  그것이 우리 집 첫 저금통이었다. 그 통을 가지고부터 아이들과 외출하고 나면 생기는 동전을 모았다. 차곡차곡 모아 한 통이 빼곡해졌을 즈음 은행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저희 지점에는 동전교환기가 없습니다." 두세 지점의 은행을 방문했는데 거의 같은 답이었다. 사실 나는 아이들이 직원들과 앉아 자신들이 세어온 금액이 맞는지 확인도 하고 눈 마주치며 통장에 얼마를 넣었는지 보기를 바랐는데 일단 그런 것은 너무나 큰 꿈이었고 기계조차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들고 온 금액이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큰 금액을 들고 오더라도 동전이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오늘도 은행에서 조금 다르지만 거의 비슷한 일을 또 겪었다. 집안을 정리하다가 이렇게 저렇게 모인 외화 잔돈이 꽤 많았다. 달러도 있고 싱가포르 달러도 있고 위안화도 있고 이래저래 모으면 대략 10만 원이 넘는 돈이었다. 서랍 속에 두는 돈은 죽은 돈이라는 생각이 들어 잘 환전해서 입금하고 남는 잔돈은 기부 저금통으로 향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심호흡을 하고 창구 직원에게 갔다. 

"외화 입금 하려고요."

"얼마나 되시는데요? 많지 않으시면 그냥 가지고 계시는 게 나을 텐데요? 동전은 안되고요 파손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당연히 매입 안되시고요, 더해서 제3 국 돈도 안됩니다."


내가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도 해보지 않고 와다다다 쏟아내는 직원의 말들에 기가 눌려 그냥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더라. 번뜩 내가 가진 잔돈푼을 꺼내 이 백 원짜리들이라도 내 통장에 넣어달라고 하고 입금을 하는 사이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 10만 원이라는 돈이 적은 돈도 아니고 그 돈은 돌고 돌아 순환을 하게 만드는 것이 잘못된 생각도 아닌데 왜 내가 기가 죽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어 있는 돈을 다 꺼내 놓았다. 


"이 중에 가능한 건 모두 입금 부탁드립니다."


동전들을 제하고 은행에서 받아 줄 수 있다고 한 금액들을 모두 정리하니 94,386원 나는 당당하게 입금하고 나머지 잔돈은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 기부 저금통에 모두 넣고 돌아왔다.


나는 그 10원들이 모여 1만 원이 되고 차곡차곡 모아 백만원이 넘고 천만 원이 되는 것이 너무 신기한데 이제 우리나라가 너무 잘 살아버린 걸까? 100원을 맡겨주어 114원으로 되돌려 주노라 말했던 새마을금고 언니의 한 마디가 머리 싸매고 책으로 교육시키는 경제교육보다 훨씬 컸음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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