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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영신 May 16. 2023

간단 살림#3. 유선청소기로 청소하는 집

있는 불편함보다 없는 불편함이 낫더라고요

과자가루를 흘리면 무선청소기를 꺼내 위잉 순식간에 흡입했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무선청소기를 처음들인 건 첫째 아이가 돌 무렵이었다. 뜨거운 물에 젖병을 소독하고, 유선청소기로 청소를 하는 삶에 지쳐가고 있을 때쯤 각종육아템을 구입하면 육아가 쉬워질 것만 같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주말에 함께 한 번 청소기를 돌리고 대강 닦아내고 욕실까지 한 번 솔질을 하면 그 주의 청소가 끝났다. 청소를 주 1회만 했기 때문에 청소도구가 주는 불편함은 없었다. 그저 깨끗하게 되는 것이 중요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떨어지는 머리카락은 더 늘어났는데 청소벽은 더욱 심해졌다. 주 단위의 청소는 일단위로 거기서 일 3회 단위로 늘어나고 있었다. 아이는 이유식을 흘리고 나는 닦고 아이는 과자를 뒤집고 나는 비질을 했다. 손청소로 부족해 청소기의 줄을 죽죽 빼내고 있는데 줄을 빼내느라 굽힌 허리도 너무 아프고 서러웠다. 무선청소기가 있으면 나을 것 같았다. 무선청소기가 필요했다.


무선청소기가 시작이었다.

나는 도우미 아주머니도 오시지 않는데 '육아템'이라도 있어야지라고 합리화했다. 그렇게 무선청소기, 젖병소독기, 야채다지기 등등 다양한 육아템들로 수납공간 곳곳이 채워져 갔다.

가벼워지는 통장도 통장인데 어쩐지 엄청 편하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관리해야 할 물건은 많아지고 집은 점점 더 좁아지는 기분이었다.

유선청소기에서 무선청소기로 뜨거운 물 소독에서 젖병소독기로 칼로 세심하게 다지는 대신에 야채다지기가 생겼지만 나는 여전히 청소와 요리 육아의 루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부지런히 벌고 부지런히 소비하는 일상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고쳐야 하는지는 모르고 그저 피로감은 계속되었다.


지금은 우리 집에 유선청소기만 있다. 막대걸레하나도 있다. 큰 먼지가 보이면 얼른 티슈로 닦아내기도 하고 비질을 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제대로 된 흡입력을 갖춘 유선청소기 하나로 바닥도 벽도 천정도 심지어는 매트리스 청소헤드까지 갖추고 매트리스도 청소한다. 

무선청소기의 배터리가 다 되고 나서 배터리 교체 대신 폐기 후 유선청소기의 생활로 돌아올 때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의외로 무선청소기의 먼지통을 비워내고 씻어내는 수고보다 유선청소기의 먼지봉투를 구입하는 일이 간단했고 깔끔했고, 약간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소형가전의 힘보다 잠깐 일어나 후다닥 마무리를 하는 수고가 훨씬 더 만족스럽고 덜 힘들었다.


동네 언니들과 모일 때에 과자를 먹다 흘리는 날이면 언니들은 여지없이 무선청소기를 찾는다. 치워주고 가겠다는 고마운 마음인데 내 대답은 늘 "우리 집은 유선청소기만 써요!" 하며 걸레를 들고 나와 지저분해진 자리를  쓱 훔쳐낸다. 너무 불편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엄마들도 많지만 나는 대답한다. 무선청소기를 관리하는 수고로움보다는 지금이 좋다고!

나는 앞으로도 툴을 늘려서 약간의 편안함을 얻기보다는 느리더라도 물건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대신 내가 조금 더 움직이는 방향을 택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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