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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영신 Apr 26. 2023

시댁EP4. 이거 네가 홀딱 마셔버려라.

분유가 산모영양식이 되는 순간

지금은 지금의 에피소드들이 마구마구 쌓이지만,

나의 시댁에 관한 화가 임계점을 넘은 것은 둘째를 낳고 오갈 때 없는 신세가 되면서였다.

당시 이래저래 잘 살고 있던 전셋집을 빼서 다음 집 입주 때까지 친정집에서 6개월 정도를 머무르게 되었는데 하필 그때 둘째 출산이 맞물렸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둘째를 출산했다.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일을 하시는 친정엄마는 학기 초였기에 나의 산후조리를 도맡아 해 주실 처지가 못되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친정오빠는 다니던 회사를 이직한다며 혼자 자취하던 집을 빼서 친정집에 들어왔다. 인구밀도가 높아진 친정집은 쉴 공간이 아니었고 산후조리원으로 들어가기에는 돌 겨우 지난 큰 딸아이가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냥 에라 모르겠다 시댁에서 지내기로 했다. 다른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외동아들 하나 있는 집이라 다른 형제들의 눈치를 볼 것은 없으니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돌 지난 큰 딸아이만 시댁에 맡겨두고 산후조리원에 갈 수는 없었고 남편도 일주일은 휴가를 쓸 수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이었다.


분명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건 알았지만 나는 도움을 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산후도우미라는 옵션 도을 생각할 수 있었는데  친정오라버니와의 껄끄러움 때문에 친정집에 머무는 옵션과 시댁으로 들어가는 옵션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했다.


오류였다. 결혼 2년이 겨우 지난 새댁의 선택오류!

삐리삐리비!


어쩌면 그때까지도 내가 받을 상처보다는 가족들이 잘하려다 보니 상처 주는 일들이 생긴다는 쪽으로 마음을 다지며 나를 채찍질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번 더 믿고 한 번 더 치유받아보고자 했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일순간 어떤 계기로 아무 일도 아니게 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여하튼 여차저차 나는 시댁에 머물렀다.

2박 3일의 병원입원 이후 즉시 시댁으로 가게 되었다.

젖몸살이 시작되었고 그때까지도 모유수유와 분유수유 중에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첫 아이 때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다는 마음에 모유수유를 고집하다가 엉망이 된 기억이 떠올랐다. 모유수유에 적합하지 않은 유방의 모양과 유선이 양쪽이 많이 달라 짝가슴으로 일 년을 버텼던 기억이...... 이번에는 첫 아이가 돌 갓 지난 아이이다 보니 큰 아이에게 소외감을 주지 않고 기나긴 독박육아 타임에 함께 보내야 한다는 미션까지 추가되었다. 젖몸살이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아 이번에는 분유수유해야겠다!'라는 결심이 섰다.


문제는 여기는 조리원도 내 집도 아닌 시댁이었다.


고민을 하다가 문을 잠그고 몰래 수유하는 척을 하고 분유를 먹이기도 했다. 어른들의 이해를 바라기에는 나에게는 생존의 문제였고 간극을 메우기보다 넘기기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문 밖에서 큰 아이가 우는 일이 잦았고 아버님 핑계를 대며 문을 잠그기에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말을 해야겠다 결심했다.

어머님이 음식솜씨가 좋으신 편이라 시어머니가 끓여주신 미역국이 참 맛있었는데

심리적 안정이 되지 않아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와 마주 앉아있는 식탁에서 용기를 내어 말하려는 찰나,


"모유 안 나오고 그러는 거 다 모성애가 부족한 거야!"

시아버지가 직격탄을 날리셨다.

시어머니는 밥을 잘 먹으라는 말을 저렇게

하시는 거라고 했다.


그거랑 어떻게 저 말이 같은 말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 우리 가족은 넷이 되었고 물러날 곳이 없었다.

"어머님, 제가 큰 아이 때 모유수유로 고생을 해서요,  이번에는 그냥 분유를 먹이고 싶어요."


시어머니는 분유통을 들고 다니는 것도 고생이고 어디든 엄마만 있으면 아이는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안 좋은 선택인 것 같다며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네 선택이 그렇다면 그냥 그렇게 하라고 분유도 잘 나오겠지라고 마음을 다잡으셨다.


사실 여기까지만 동의해 주신 것만 해도 나는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하며 감사하다고 여겼다.


아이에게 유두 혼동을 주지 않기 위해 나는 초유도 젖병에 담아 먹였고, 순탄하게 수유는 진행되었다. 안 나오는 젖을 짜내는 노력보다 시간을 잘 지켜 먹이고 아이를 안고 눈 마주치는 시간이 나에게는 훨씬 수월했다.

아장아장 겨우 걷는 큰아이와도 이야기하며 함께 분유를 타기도 주기도 했으니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막내가 분유를 많이 남겼다. 아이를 분유를 먹이다 보면 종종 일어나는 일 중의 하나가 분유가 남는 일이다. 아이가 컨디션에 따라 정량을 다 못 먹는 날도 많고 당연히 백만 스물한 가지쯤의 이유로 아이의 분유는 남는다.


헹구어 정리하려는데 젖꼭지를 열더니 젖병을 나에게 내미시며 시어머니가 건넨 말

"네가 남은 거 홀딱 마셔라! 이거 다 영양 덩어리고 분유 비싼데 산모가 먹으면 모유도 잘 나오지 않을까?"


말없이 개수대에 버렸지만, 그 말을 들은 내 귀를 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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