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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영신 Jun 05. 2023

일상에세이#3. 바코드가 인식되지 않습니다.

가정주부라는 사회적 투명인간

1. 삼성과 시어머니


 시어머니는 유난히 '메이커'를 좋아하신다. 하루는 텔레비전이 고장 났다고 전화가 오셨다. 결혼 10년 차인데 어머님의 굵직한 가전제품은 이번에 세 번째 고장이다. 그 이전부터 오래 사용해 오신 것이니 그럴 법도 하다. 세탁기, 두 번째 김치냉장고에 이어 세 번째다. 아이아빠는 텔레비전 같은 제품은 디자인을 고려하지 않는 다면 중소기업의 제품도 같은 패널을 사용하기에 사용상 무리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너희 알아서 해!"라고 답변하셨지만 나는 안다. "삼성제품으로 해줘!"라는 것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메이커'를 중시하시는 어머님은 기술적 우위 같은 것에 관계없이 '삼성'제품을 좋아하신다.  내 남편에 대한 평가 역시 어머님께는 '메이커'로 통했다. '메이커 있는 대학을 나와 메이커 있는 회사를 다니는 자랑스러운 아들.'(상징적으로 규정한 말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사용된 언어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딘가 씁쓸하다. 거꾸로 메이커 없이 살아가는 가정주부로서의 나는 계산대에 올라가 "삑! 삑! 삑! 바코드가 인식되지 않습니다." 하는 것 같다.

 


2. 맞벌이가정의 경우에는 긴급 돌봄이 가능합니다.


 둘째 딸은 2020년 가까운 병설유치원을 다녔다. 코로나와 첫 대면해 모두가 혼란 속이었던 2020년, '아이엠스쿨(온라인 학교 알림장 앱)에서 자주 등장한 문장이 있다. '맞벌이가정의 경우 긴급 돌봄이 가능합니다.'. 정확히 저 문장 그대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가정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은 최대한 머물도록 하라는 권고가 계속되었다. 연초에는 생전 처음 대면한 바이러스에 내 아이들을 내가 직접 돌볼 수 있음이 감사했다. 그런데 장기화될수록 이상하게 저 문장만 보면 울컥했다. 정확히는 서러웠다. 일종의 굴레 같았다. 거리 두기는 해야겠고 국가의 경제를 멈출 수는 없으니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은 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대로 멈추라는 것 같았다. 내 새끼를 안전히 돌보는 일이지만 우리를 제외한 다른 '바쁜'사람들은 바이러스가 퍼지더라도 돌아다녀야 하니 한 명이라도 줄이려면 너희는 집에 있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3. 가정주부라는 사회적 투명인간


 가정주부는 사회적으로 '무소속'이다. 무소속의 사전적 정의는 '어느 단체나 정당에도 속하여있지 않음, 또는 그런 사람'이라고 되어있다. 자의적이라지만  나의 가족을 위해 내가 그렇게 살아야겠노라 시작되었다. '노는 사람' 혹은 '잉여인력'으로서 기능하기 위하여 선택한 것이 아니다. 온전한 사회방어막의 부재로 선택했지만 사회에서는 "오케이, 탈락!"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맞벌이 가정이 외치는 그 외침도 가정주부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어떠한 자비도 테두리도 허락하지 않는다. 존재하지만 투명해졌다. 나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밀가루라도 뒤집어써야 할까 보다.


4. 그럼에도 오늘을 산다.

 

 씁쓸하고 억울하다. 그렇다고 불행하지는 않다. 나에게는 오늘이 있고 오늘을 살아야 할 가족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그 전날의 흔적을 지워내고 아침을 짓고 청소기를 돌린다. 바코드는 없지만 그러기에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다 믿으며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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