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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영신 Jul 25. 2023

여름방학일기#4.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아서

그래도 알람은 끄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 방학 전 맞추어 둔 알람시간을 바꾸지 않았다.

여섯 시 반이면 아이의 휴대폰에서도 나의 휴대폰에서도 알람이 울린다.


사실 손쉽게 알람을 꺼버리거나 시간을 바꿀 수도 있었지만 잠결에 지금 울리는 휴대폰 소리만 잠재우고 아직까지 바꾸지 않고 있다.


원래는 일어났어야 하는 시간에 대한 인지는 하되 나머지 시간의 잉여로움을 즐기는 묘함이랄까? 혹은 다시 시작할 때 이 때는 일어나야 한다는 최소한의 양심이랄까? 그런 것이다.


아이들의 방학기간 동안 죽이 되든 밥이 되는 매일 글을 쓰겠노라 다짐했다.

아침을 먹고 써보는 날도 자기 전에 눈을 비비며 쓰게 되는 날도 있겠지만 해보리라 생각했다.

나중에는 잘 기억나지 않는 찰나의 느낌이나 순간의 감동 같은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부분도 있지만

돌밥돌밥의 매일에서 잠깐이나마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만나고 싶었다.


오늘은 무슨 주제를 쓸까 컴퓨터를 여는데 어제 글을 쓰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 또한 방학의 묘미가 아닐까?

늘어지는 하루하루에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아서 어제 뭐 했지 오늘 뭐 했지가 잠시 몽롱해지는

그 느긋함.

고양이가 기지개하듯 방바닥에 누워 기지개를 해가며 만화책을 보는 딸의 모습도 반갑다.

그런 모습에 이 닦아라 가방매라 할 필요 없이 그저 그대로 행복한 모습이다.

겨울방학은 길고 (최근 많은 초등학교에서 봄방학이 없이 겨울방학을 늦게 시작하고 그것으로 종업식을 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더욱 길어졌다.) 감각이 예민해질 만큼 추워서 긴 글을 읽거나 새 학기를 앞두고 각자 마음먹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실행하기가 좋다. 더욱이 1월 1일이라는 새 마음 새 뜻과 함께 오는 새해가 있어 더욱 그렇다.


반면 여름방학은 짧고 덥고 직장인 아빠의 여름휴가 스케줄에 맞추어 일주일 놀고, 잠시 늘어지다 보면 끝나기 마련인 것 같다. 이번 여름방학은 더욱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무계획의 계획'으로! 아이와의 일일스케줄이나 식단 예산 같은 것이 없으면 조금 불안해하는 나이지만 이번만큼은 흘러가는 대로 둬 보리라 굳게 다짐했다. 아이와 만들어 먹는 음식이나 책을 읽는 시간들에서 더욱 오랜 시간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시간'과 '무계획'이라 생각했다.


벌써 5일 남짓한 시간에 아이들과 우리는 도서관에들러 2시간가량 집중해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시리즈 물 9권을 대여해 왔고, 함께 먹을 점심으로 파스타, 된장국, 삼겹살구이, 김밥을 함께 준비했다.


아이들 주변 친구들을 보면 방학을 이용해 꽉꽉 찬 스케줄로 부족한 과목을 채우는 친구들도 있고 해외나 국내 외국인학교 프로그램을 등록해서 방학을 보내는 친구들도 있다. 종종 그런 친구들을 보면 아이들을 즐거울 수도 있는 데 아예 기회조차 제공해보지 않고 나는 아이에게 이것이 삶의 즐거움이라고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때마다 나의 내면에서 스스로 답한다. 엄마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엄마가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단단하게 자기가 주워진 환경에서 다지고 즐기는 방식을 주는 거라고...... 어차피 모든 것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기에 잠시 숨 고르기 연습을 시키고 있노라 나를 다독인다.


이 잉여로움이 지겨워질 때쯤 다시 달리기 위해 우리의 알람은 그대로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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