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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영신 Aug 14. 2023

여름방학일기#6. 따로 또 같이

너는 내가 아니고 나도 네가 아니라서.

남편까지 휴가를 받았다.

8월의 휴가는 정말로 온전한 휴식이 필요했다.


약간의 의무감 마저 드는 연중행사 같은 긴 여행은 사실 4월에 가족이 시간을 내서 다녀왔기 때문에

8월의 휴가는 그야말로 '피서'와 '휴식'에 집중되었다.


8월 5일 토요일 오전 6시 30분,

나의 휴대폰에서는 알람이 울렸다.

심호흡을 한다.


감초가 들어가 달큰향 향이 올라오고 내 세포 속

하나하나에 촉촉함을 전해주는 노오란 차를 마신다.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열흘은 평온할 것이고

 나는 어떠한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안다. 이 다짐이 몇 시간 후면 무너질 것이고

지지고 볶는 열흘이 될 것이라는 걸.

그래도 나는 적당히 느긋하고 평온한 말을 하고 식욕은 억제할 줄 아는 그런 엄마라는 마음을 먹어야

단 한 번이라도 나의 화를 걸러낼 수 있다.


통제 성향이 강한 나는 가족들의 쉼도 이론적으로

온전한 off였으면 한다.

채식을 하고, 휴대폰을 멀리하고 소음은 최대한 낮추고 싶다.  실상은 반대이다. 고팠던 휴대폰 게임을 하고 아빠도 미디어를 보며 낄낄거리고 과자봉지가 나뒹굴고 치킨과 피자 따위로 끼니를 때운다.


나라고 그 가운데서 온전히 채식을 하고 미디어를 멀리하겠느냐만


노력이나마 해보고자 아침의 시작은 따뜻한 차와 사과, 토마토 같은 것으로 차려내 본다.

사실, 거기서 부터 시작이다. 수프와 빵 혹은 시리얼과 간단한 과일이었다면 스무스했을 우리의 아침은 아이들 마음에 들지 않는 식사를 함께 먹어보고자 시도하면서 쉼이 무너진다.

먹고 싶지 않다고 말도 하지 않고 쓱 밀어내는 첫째와 한 두 입 대보고 혈당 스파이크를 불러일으킬 것 같은

초코잼을 잔뜩 바른 식빵을 원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되기도 하고 그냥 주고 웃으며 시작하는 날들도 있지만 아이들에게 몸과 마음이 모두 쉬는 내려놓음을 선사해 주고 싶은 의지가 불끈한 날들은 "음! 너무 맛이 있는 걸"같은 발연기를 하며 노력해 본다. 노력이 먹히지 않아 속상한 날도 있고 말도 안 되게 화를 내는 날들도 있지만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에 나오는 아빠의 잔소리처럼 진심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일 것이다.


먹는 것과 닌텐도 같은 크게 중요하지도 않지만 막상 닥치면 그 순간이 다인 것 같은 주제들로 왈가왈부를 하며 시간이 가고 일상이 찾아온다.


오늘 같은 날은 꽤나 허하다.


아이들과 남편도 그런 감정이 드는지 모르겠는데 각자들 일상으로 돌아가 바쁜 하루를 보내니 아마 가정주부인 나보다는 덜하지 않을까 싶다.


이불전쟁으로 박 터지게 싸우던 자매들, 아이들 훈육하는 문제로 다툰 부부들의 며칠이 머릿속에 쓱 지나가고

그렇게도 혼자 있고 싶었던 시간들이 생기지만

결혼식 치른 다음 날처럼

장례식 치른 다음 날처럼

그냥 멍하니 사람이 그렇게 된다.


시간이 많은 하루를 알차게 보내겠노라 다이어리를 쓱쓱 적으며 나는 또 다짐한다. 나만 나이다. 너는 내가 아니고 나도 네가 아니니 각자의 시간을 만들어가고 같은 공간에서 그것을 나누자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침구를 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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