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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영신 Jul 26. 2024

302호 마녀 할머니

저는 건물주가 꿈인데요?

다른 집은 층간소음으로 싸움이 나고 난리라고 엄마가 귀에 딱지가 지도록 말해 주어서 우리 집은 늘 슬리퍼를 신는다. 땀이 자꾸 나서 너무 싫은데 어디서 그런 더운 슬리퍼를 사 오는 건지 엄마가 자꾸만 더운 슬리퍼를 사 온다. 통통하고 걸어도 소리가 안나는 그런 슬리퍼이다. 어떨 때에는 이게 욕실슬리퍼가 아닌가 하는 걸 사 오기도 하는데 아예 욕실에도 신고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나만의 복수를 엄마한테 해 버린다. 욕실에 꼬릿 한 냄새가 마룻바닥에 퍼져버리겠지?


며칠 전에 하민이네가 이사 와서 그렇지 나희네가 이사 가기 전까지 사실 나희네 이모는 뛰어도 된다 놀아도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엄마가 유난이다.

엄마가 유난 떨어서 아예 나희네 놀러 가서 논 적도 많다.

그게 더 예의가 아닌 거 같은데 엄마가 닦달해서 방법이 없다. 난 집에서 놀아야겠고 엄만 나가 놀라 하니 아래층 가서 노는 수밖에!


 층간소음이 문제라고 딸을 남의 집에서 간식먹이고 놀게 하는 게 더 문제 아닌가?

다행히 나는 동생이 없고 나희는 외동이라 이모가 나 오는 걸 아주 싫어하시는 것 같지 않다.


일부러 더 밥도 잘 먹고 나희도 잘 챙긴다.


하나 깨달은 것도 있다.

늘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뿌듯하긴 하지만 낮에 만나 노는 정도가 딱 좋다는 걸 나희랑 놀면서 알았다.


그래도 우리 집은 1층 식구들이랑 나 덕분에 아니 나의 완전한 노력으로 잘 지내고 있는데 

3층은 너무 싫다.


거기엔 우리 할머니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아줌마 아저씨  두 분 도 산다. 


나는 그 아줌마 아저씨가 결혼한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근데 둘 다 그 할머니 할아버지 아들 딸이라고 한다.


그 할머니는 분명히 우리 할머니 보다 늙었는데 볼이 빵빵하고 피부가 하얗다. 

할머니가 너무 하얗니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래서 나는 마녀할머니라고 부른다.

성격도 마녀 같다.


내 이름도 모르고 내가 누군 줄도 모르면서  

엘리베이터에서 친구랑 이야기라도 하고 있으면

“얘, 너 2층 사는 애지? 엘리베이터에서 어른 만나면 인사하는 거야! 그리고 조용히 하는 거야!”

그러신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지만 진짜 볼 때마다 불편하다. 

안경 너머로 나를 관찰하는 듯한 그 눈빛이 너무 싫다.

아마 5층 할머니처럼 “안녕! 아이고 인사도 잘해 예쁘다!”이렇게 말했다면 난 늘 인사했을 거다.

어른들만 아이들을 판단하는 게 아니다. 

어린이도 어른을 보면 기분 좋은 어른이 있고 기분 나쁜 어른이 있다.


그리고 매번 만날 때마다 할머니 딸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는데 나는 그 할머니딸 처럼 되기 정말 싫다. 뚱뚱하고 못생기고 안경 쓰고 매번 뭐가 그렇게 바쁜지 휴대폰을 보면서 모닝빵을 입에 물고 머리는 젖은 채로 어딘가에 간다. 


큰 병원 의사 선생님이라고 엄마한테 들었다.

더 싫다. 잠도 못 자고 아픈 환자들만 맨날 봐야 하니까.

아빠가 수술할 때 병원에 가 봤는데

내가 생각했던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왔던 선생님 같은 분들은 없었다.

그냥 다 졸려 보였고 다 너무 안 친절했다.


나는 날씬하고 예쁘고 적게 먹고 안경 안 쓰고 머리도 잘 말리고 나오는 건물주 백수가 될 거다.

이상해 보이지 않으려고 학교에서는 '화가'가 되겠다고 장래희망을 밝혔지만 내 진짜 꿈은 건물주 백수다.


언니는 뭘로 벌어 건물주가 될 거냐고 했다. 

학교 졸업하면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모을 거랬더니 언니가 코웃음을 쳤다. 그걸로 언제 건물을 사냐고 한다. 그럼 언니가 스튜어디스가 되어 나한테 투자하라니까 언니가 왜 나한테 투자하냐고 한다.


그래서 어른을 공략했다. 할머니한테 전화했다 “할머니, 나 건물주 되려는데 나 돈 좀 빌려줘. 그러면 내가 건물에서 임대료 받아서 다른 건물 또 사서 할머니 돈 많이 줄게~!” 할머니가 처음에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더니 내가 찬찬히 설명을 하니 웃기만 했다. 나는 진지한데 왜 다들 내 얘기를 농담으로 듣지?


여하튼 나는 건물주가 될 거다.


3층은 어른만 넷이 살아 그런지 새벽부터 쿵쾅거린다. 무게가 무거운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훨씬 더 쿵쾅거리는 것 같다. 층간소음이 아이들 있는 집만 있는 건 절대 아닌 거 같다. 엄마 아빠는 밤에도 쿵쾅거린다는데 나는 잠이 들어 잘 듣지 못하는데 학교 갈 준비를 하려고 7시부터 일어나 있으면 망치 두드리는 소리 같은 게 난다. 엄마한테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윗집이 걷는 소리란다. 우리도 시끄러우니 이해하자고 하는데…. 우리 엄마 참 이상하다. 나한테는 시끄럽다고 신발 신으라고 그 난리면서 왜 윗집에는 한 마디도 못하지? 우리 엄마가 그 그 그 뭐냐 약자한테 강하고 강자한테 약한 그런 사람인가? 흠….


여하튼 제멋대로 시끄럽고 언제는 창문청소한다고 베란다에서 물을 퍼부어서 내 방 창문으로 물이 줄줄줄 새어 들어온 적도 있다. 

엄마가 경비실 통해 말을 전해달라고 하니 당장에 윗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려왔다. 

미안하다고 하는 줄 알았는데 다짜고짜 우리 집에 내려와서는 이웃끼리 이해를 하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아빠가 드디어 화났다. 이웃끼리 이해를 해야지 우리만 이해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화를 냈다.

엄마도 그때서야 와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쏟아내는데 우리 엄마 랩하는 줄 알았네!

여하튼 윗집 할머니는 여러모로 마녀 같다.

너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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