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나는 이미 어른이었다.
분명 아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낯설었다.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아이가 “오랜만이다! “라고 말할 이유는 없었다.
해진은 하얀 국물 위로 퍼지는 빨간 양념을 바라보며, 숟가락을 천천히 저었다.
진한 국물이 흐릿해졌다. 마음도, 같이 퍼졌다.
그러다, 그 아이가 말했다.
“여전히 무말랭이를 좋아하는구나!”
해진은 숟가락을 든 채 얼어붙었다.
익숙한 말투,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교복.
체크무늬 주름치마.
삼선 주름이 잡힌 고풍스러운 소매.
금장 단추가 박힌 단정한 조끼.
이해진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교복.
“… 이건, 나야.”
그 아이는 웃었다.
열다섯 살의 해진.
“지금도 마트 가면 무말랭이는 꼭 넣어두잖아.”
그 아이는 말했다.
“엄마는 내가 무말랭이를 진짜 좋아하는 줄 알잖아.
근데 사실은 그냥… 오독오독 씹고 있으면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아서, 그랬던 건데.”
맞았다.
해진은 이제는 무말랭이 대신 헤드폰을 끼고 오디오북을 듣는 시간을 사랑한다.
물론 무말랭이 반찬도 여전히 먹고 있지만
다른 수단이 하나 더 늘은 것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혼자이고 싶다”라고 말하는 대신
그저 뭔가를 “오독오독 씹는 걸로” 대체해 왔다.
쿠키보다는 과자, 아몬드 같은 견과.
쌉쌀하고, 단단한 것.
씹을 때만큼은 세상과 단절되는 맛.
장면이 겹쳐졌다.
초등학교 5학년.
엄마는 늦은 밤까지 입시생 개인교습.
아빠는 술에 잔뜩 취해 귀가했다.
거실이 아비규환이었다.
아빠는 욕실에서 토했고,
할머니는 해진에게 말했다.
“치워라.”
오빠도 있었고, 어른도 있었지만
가장 어린 해진이 청소를 맡았다.
거절하지 못했다.
욕실 가득 마늘과 음식물 냄새, 그리고…
엄마가 오기 전까지 ‘모든 걸 정리해야 한다’는 본능.
해진은 그때, 이미 지금의 마음으로 살았다.
그 나이에, 이미 어른이었다.
내 딸 또래였다.
하지만 분명 저 아이는 나였다.
마흔의 내가
열다섯의 나를 마주했다.
그 어린아이가
내 딸 같기도
나 자신처럼도 느껴져
마음 깊숙이 저릿했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보듬어 주고 싶었다.
그때는 누구도 그 아이를 안아주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