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이야기하는 시간은 힐링
현아, 잘 지내고 있지?
너에게는 늘 '잘 지내고 있어?'라는 말보다 '잘 지내고 있지?'라는 말로 시작하게 돼.
어떤 일이 있어도 스스로를 잘 지켜내며 잘 지내고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인 것 같아.
현아, 나는 나의 삶이 지치고 힘들 때 너의 삶을 들여다보고 각자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너와 나 임에도 진심으로 서로를 듣고 이해하며 (네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듣고 또 들어주는 것에) 굵은 줄기들이 무너지는 순간들을 버텼던 것 같아.
살갑게 매일을 나누고 공유하는 친구가 아님에도 일으켜줄 수 있는 힘은 참 대단한 힘인 것 같아.
현아 나는 너와 같은 인생을 가꾸고 싶었다. 나를 일으키는 힘이 나에게 있고 가족들은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는 가운데 나의 인생에 큰 영향이 없이 잔잔하고 묵묵하게 뒤에서 받쳐주는 존재로서만 존재하는 삶이기를, 응원해 주는 존재이기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는 지금 내가 꾸린 가정에서는 그런 모습을 만들고자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단다.
하지만 나의 근원과 뿌리가 되는 가족이 나에게는 무거움이고 내가 아무리 나의 삶을 일으키려 해도 끝없는 심해로 나를 잡아당겼던 지난날들이 성인이 된 지금 내가 많은 부분 잘라내고 잘라내었다지만 여전히 나는 그 그물 한 끝이 걸려있고 그 한 가닥마저 자르는 것이 진정으로 좋은 일인지를 생각하면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당연히 잘라내고 수면 위로 나를 끄집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물의 자국이 몸에 새겨지고 몸보다 깊이 마음에 새겨져 0으로 시작하는 것이 신생아라면 나는 내 나이만큼 -40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내 지금의 삶의 번듯함과는 다른 차원이다. 나는 난도질당하고도 번듯하게 세워진 멋쟁이지만 그럼에도 내 안의 칼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더라. 나는 마이너스인 내 마음이 나이만큼 플러스가 되어 있는 인간처럼 웃기 위해 더 많은 노력으로 서있다.
현아 나는 마흔이지만 열여섯의 그 중학생의 마음에서 사실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벗어날 수 있었던 스물다섯의 여름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나는 빼앗겼다. 가족은 가장 다정할 수 있지만 가장 잔인할 수 있음을 매일매일 새기며 아이들에게 다정하지 못하더라도 칼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아무리 잘해나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잘해나가는 성인의 아이에게도 가족의 상처는 멈추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현아, 나는 이 상처에 머무르고 하소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너에게 이야기하고 너에게 조언을 얻고 응원을 얻으며 나도 우뚝 설 수 있음을 너의 긍정에너지를 얻을 수 있음을 이야기하려 한다.
나는 내 삶에 루틴을 단단히 하고 단순하게 살며 주변의 곁가지들을 쳐내가고 있어. 곁가지들이 나의 삶을 좀먹었던 지난날들이 후회되고 분노가 일지만 나는 나를 다시 세우기로 했어.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똑바로 살기 위해 아주자주 나의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을 앞두고 삶을 정리한다 생각하면 물건도 마음도 조금은 더 담담히 정리가 되는 것 같아.
물론 완벽주의적인 나에게 그것이 용서이고 힐링이고 모든 것을 리셋해 주는 버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나마 나를 숨 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