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의 빈자리와 자유 그 사이
평일 점심시간은 해진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자유시간이었다.
그마저도 주중 화수목 정도만 해당했다.
월요일은 주말의 잔해를 치우기 위한 날이었고 금요일은 주말 동안 주말을 예비하기 위한 날이었다.
남편은 여섯 시에 출근했지만 해진은 늘 그보다 일찍이었다.
남편보다 먼저 일어나 회사에 가져갈 견과류와 드립백 커피를 챙겼다.
샌드위치와 과일 스무디를 갈아 두 딸의 아침을 준비했다.
별것 아닌 일 같지만 해진에겐 하루를 여는 의식이었다.
남과 다를 바 없이 규격화 된 삶이 최고의 미덕이라 여기는 집에서 자란 해진은 묵묵히 했다.
새벽녘, 포트에 물을 올리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무수히도 많은 창문들에서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은 몇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맞는 듯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아침저녁으로 식구들과의 식사시간은 아이들의 일상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지만
올라가는 식재료부터 마무리까지 해진의 손을 거치기 때문에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중간중간 전화해서 아들이 아픈 데는 없는지 밥은 잘 먹는지를 체크하는
시어머니의 연락도 신경 쓰지 않는 다고는 하지만 영향이 없진 않았다.
단정한 집에서 깔끔하게 먹고 싶어 하는 해진의 성격 덕에 집은 늘 깔끔했다.
그런 집을 유지하는 일은 해진에게는 중요한 의식 같은 것이었다.
유지하기에 너무 많은 노력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단정한 집이 주는 위안이 해진의 유일한 돌파구였다.
식사시간도 그 때문인지 그 덕분인지 단정했지만 남들의 배로 시간이 걸렸다.
해진은 물건을 구입할 때부터 정리를 고민하는 타입이었다.
누구도 그걸 인정하고 도와줄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해진은 꿋꿋히, 묵묵히 해냈다.
해진은 사실 요리를 즐기는 타입은 아니었다. 다만 단정하게 먹는 것에 무게를 두었다.
그런 해진에게 쏟아지는 식재료가 미덕인 줄 아는 어른들이 버거웠고
매번 쏟아내는 식재료들을 마다하는 것도 일이었다.
주는 것을 마다하는 것을 이상히 여기는 어른들에게
매번 낭비니 안먹느니 하며 거절하는 것이 힘들어 받아오곤 했는데
성실한 해진은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처럼 봉투째 버리는 일은 못하는 부류였다.
다른사람이 잘 차려준 밥상을 마다하는 주부가 있겠냐만은
한 가득 차려오는 어른들의 상차림은 사랑이라기 보다 버거움이었다.
어떤 날은 실컷먹고 적립해 두었다 하나씩 꺼내 효도하라는 카드처럼 느껴졌다.
해진은 그런 음식이 싫었다.
그 때문인지 양가에서 식사를 한 날의 최후는 일주일간의 한의원치료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가득싸주신 반찬과 식재료는
밥상에 올리는 일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으로 귀결되어 해진의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어떻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조항이 이리도 많을 일인 것인가?
폭력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건 분명 일종의 폭력이 확실했다.
해진에게 평일 점심은 전화도 받고 싶지 않은 마지막 산소통이었다.
새벽의 종종거림도, 어른들의 압박으로 부터도 잠시 눈닫고 귀닫고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식사시간!
아이가 태어나고 어린이집에 다닐 때 즈음부터 시작된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먹고 남긴 음식을 먹거나 라면으로 때우는 일이 많았다.
얼른 먹고 가족들이 돌아오기 전에 집안일을 마무리해야 하는 것도 있었지만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는다는 죄책감 같은 것이 뒤섞여서
아무렇게나 먹어버리는 일로 정당화했다.
어느 순간 몰려온 억울함이 해진을 뒤엉켜 괴롭혔고
해진은 자신을 위한 점심밥을 차렸고 꼭꼭 씹었다.
곡물빵 사이에 치즈와 햄을 넣어 프라이팬에 꾹 눌러 구워낸
따뜻한 샌드위치를 두유를 데우고 인스턴트커피가루를 휘휘 저어 낸 커피와 함께 먹었다.
꼭꼭 씹어 천천히 먹었다.
"아 맛있다."
별것 아닌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으며 해진은 정말 맛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식사의 종류 때문이 아니라
해진이 원하는 시간에 해진이 원하는 그릇에 원하는 만큼 시간을 써서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식사 중간에 타인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다.
오늘은 버섯과 양파를 볶고 두유에 살짝 졸여 빵사이에 끼워 넣어 먹으며
해진은 국밥집 일을 상기하고 있었다.
열다섯의 해진이 생각한 마흔의 점심시간은 어떤 것이었을까?
열다섯의 해진은 탈출을 꿈꿨지만 일탈은 아니었다.
마흔 즈음에는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급한 회의를 하며 서류더미에서 샌드위치를 먹는 장면이라던지
급한일을 마무리하고 신나는 회식을 하고 다음날 팀원들과
추운 날 호호 불어가며 순댓국을 먹는 일을 상상했던 것 같다.
대부분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 생각한 이미지였지만
그런 날을 직접 겪어본 적 없는 해진은 아직도 그런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를 꿈꾸고 있었다.
커피잔을 들고 다가간 창문이 어항처럼 느껴졌다.
어항에 담겨 주는 밥을 먹고 공급되는 산소를 먹고 있는 해진은 과연 어항밖에 삶이 있긴 한 건지
나가는 순간 팔딱이는 금붕어처럼 해진은 숨을 쉴 수 없는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커다란 어항 안에서도 숨은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