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너무 강한 소설

파리의 아파트-기욤 뮈소

by 휴레스트

이야기를 시작할 때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고, 우선 단어를 뱉고 나서 그 단어에 맞춰 말을 이어 붙이는 사람이 있다. 나의 경우는 후자다. 우선 첫 단어가 좋아야 다음에 이어지는 글이 잘 뻗어나간다. 소설 '변신'을 쓴 카프카 역시 자신의 글은 앞에 쓴 단어를 책임 지기 위해 쓴다고 말한 바가 있다.


소설 '파리의 아파트'를 읽다가 기욤 뮈소의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미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적인 작가라 말할 수 있는 기욤 뮈소. 그의 소설은 영화로도 여러 작품이 만들어진 만큼 스토리 전개나 캐릭터 그리고 흡입력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휼룽하다.


주위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은 반면에 선호하지 않는 분들도 간혹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한다.

"기욤 뮈소는 너무 소설이 비슷비슷한 느낌이 나."


'종이 여자', '구해줘',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등 여러 소설을 썼지만, 그의 책을 여러 번 읽어본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확실히 구분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문체는 비슷하고 이야기도 클리세가 많다.



1. '파리의 아파트'는 어떤 소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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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신작 파리의 아파트는 이전 작품과 조금 다른 느낌이다. 특유의 잘 읽히는 느낌은 유지하면서 서스펜스적인 요소가 더 첨가되었다. 그래서 마치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또한 작품의 소재가 되는 그림이라는 소재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좋은 매개체다.


이번 소설을 읽다 보면 간혹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가 생각난다. 그 소설 역시 유명 작가와 그의 숨겨진 작품에 관해서 이야기하며 진행된다. '파리의 아파트'도 천재 화가라 불렸던 숀 로렌츠와 그의 숨겨진 작품을 찾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유명 작가와 그의 숨겨진 작품. 이 두 가지 요소만 해도 독자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더군다나 장소적 설정을 '파리'라는 낭만의 도시로 설정한 점. 고집불통의 머리가 비상한 극작가 가스파드와 열혈적인 전직 형사 매들린을 이야기 화자로 둔 점 등. 작품을 하나씩 꼬집어 보면 실패할 수 없는 조합들로 이 책은 이루어졌다.



2. 가장 훌륭한 것끼리 조합되었을 때의 시너지?


수채화에서 가장 예쁜 컬러들만을 모아 놓으면 결국에는 검은색이 되고야 만다. 아무리 강점이 많은 제품이라도 메시지를 집중하지 못하면 소비자들은 제품의 진가를 알지 못하고, 제품력이 안 되니까 좋아 보이는 것들만 모아 놓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파리의 아파트'도 그런 조합이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좋은 소재들이 각각 너무 영향을 미치니까 결국에는 어느 하나 날카롭게 빛나지 않았다. '파리'의 경우를 살펴보면 가스파드와 매들렌의 첫 만남 이후에는 큰 사건 해결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으며, 천재 화가 로렌츠와 그의 숨겨진 작품의 스토리는 책이 채 반도 지나기 전에 풀려 버린다. 마지막 고집불통의 극작가 가스파드와 전직 열혈 형사 매들린의 경우, 갈등이 본격화되기도 전에 마치 합의한 듯 서로에 대한 불협화음을 종식시켜버린다.


결국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도대체 이 작가가 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되뇌게 된다. 특히 왜 제목을 '파리의 아파트'로 짓었는지 의문까지 들 정도였다.



전체적인 총평


기욤 뮈소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가 다였다. 그 작품에 대해서는 무척 흥미로웠다. 마치 드라마 '시그널'을 보는 듯 캐릭터와 스토리는 사랑하는 연인을 살리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간다. 그리고 그 결과로 평생지기 친구를 잃고 혼자 슬슬한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말이다.


'파리의 아파트'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에 비해 간이 쌔다. 무엇하나 중심이 되는 맛이 없고 짠맛, 단맛, 쓴맛이 다 난다. 열매 중에 오미자라는 게 있다. 이 열매는 5가지의 맛이 모두 난다고 해 오미자라고 이름 붙여졌다. 오미자는 본디 5가지의 맛이 서로 조화롭고 방해 없이 입안을 감돌기에 많은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파리의 아파트'라는 소설은 각각의 맛이 강한 데다 서로 간섭이 심해 결국 니맛 내 맛도 없다.


최근에 읽은 파울로 코엘로의 '스파이'도 그런 느낌이었다. 자기 색채가 너무 강하다는 작가는 오히려 그 색채를 버리려고 많은 시도들을 하는 듯하다. '스파이'도 그렇고 '파리의 아파트'도 그렇다. 하지만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 변화는 결국 자신의 강점마저도 죽이는 결과가 된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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