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석원
이석원이라는 이름은 내게는 가수보다는 작가라는 타이틀이 더 먼저 떠오른다. 그의 밴드였던 ‘언니네 이발관’ 노래를 내가 좋아하지 않을 뿐더라 이런 사람이 있었나? 하는 흔히 듣.보에 속했던 인물이 이 책의 작가다.
영화 ‘데드풀2’를 보면 데드풀이 이런 말을 한다.
“이 영화의 감독이 누구냐고? 영화 존윅에서 강아지를 죽인 인물이 바로 감독이야.”
그의 말처럼 이석원과 ‘언니네 이발관’은 나에게 데드풀2의 감독을 설명하는 것같은 느낌일 뿐이다. 이름만 들어본 작품의 등장인물. 이름만 들어본 밴드의 가수. 그래서인지 저자를 떠올리면 ‘보통의 존재’라는 책에서 읽었던 암울하고 자격지심이 똘똘뭉친 한 심술쟁이 어린아이가 떠오른다.
시와 소설의 차이점을 들라고 하면 문창과 수업에 들었던 한 교수의 말을 인용한다. ‘하나의 글에서 길이를 줄이고 비유를 더하면 시가 되고, 하나의 글에서 서사를 넣고 구체화 시키면 소설이 된다.’ 이번 책은 교수님의 말처럼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그 ‘하나의 글’ 그 자체이다. 그래서 저자 역시 자신의 이름 말고는 다른 누군가를 넣을 자신이 없었는게 아닐까한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시와 소설의 구분이 더 묘해진 탓인지라 소설 같은 시가 있기도 하고 시 같은 소설도 있는 판국에 이 책은 표지에 적혀 있는 말처럼 ‘이야기 산문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딱 그 정도가 적당했다.
산문집 안에서도 적혀 있지만 이석원씨는 첫 작품인 ‘보통의 존재’를 내고 나서 작가로서의 많은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조금 더 작가다워져야지 하는 생각. 그로 인한 압박. 그래서 두 번째 작품으로 장편 소설을 채택했고, 그 작품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는 못한 듯하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고 했다. 그 이후 그는 슬럼프에 빠진 듯했다. 밥벌이에 출판사와 계약은 했으나 막상 써놓은 글은 없는 상태. 도로 한 복판에 이래저래 꽉 막혀 어느 쪽으로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태가 그때 였을거다.
그의 소설적 압박감을 읽고 나서야 왜 이 책을 소설도 에세이도 아닌 이야기 산문집으로 지었는지 이해가 갔다.
이 책이 주는 묘한 매력은 화자를 자기 자신으로 두면서 발생한다. 그는 작가로 어려운 시기에 어떤 여인 한 명을 소개 받는데 그 둘의 만남이 평범하지는 않다. 어찌보면 정말 섹파같은데 이걸 이렇게 드러내놓고 밝혀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치 카페 옆테이블에서 하는 연애인 가십거리처럼 들리는 이야기라 몰입도는 가히 두 배가량 높아졌던 것 같다.
톡으로 받는 찌라시처럼 빠른 전개는 아니지만 셀럽, 실명, 그리고 섹스. 이 세 가지 요소만으로도 충분히 관심도를 끌었다. 더군다나 그 사이 사이의 ‘보통의 존재’에서 읽었던 것같은 투명하면서도 한 걸음씩 힘들게 걸어가는 듯한 삶에 대한 회의와 감정들은 어느새 독자로 하여금 이석원 그 자체로 스며들게 만들었다.
이번 책에서 했던 그의 설정은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단지 우리가 믿고 싶으면 믿고 말고 싶으면 말면 되니까. 언제 우리에게 사실이 중요했던가, 결국 세상 모든 것은 답.정.너 인데.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일까? 글쓰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일까? 혹은 인간관계에 관한 이야기일까? 처음에는 분명 작가에 대한 글로 봤다. 그래서 일반적인 에세이 집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중간에는 사랑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들어 있었다. 마지막에는 작가에 대한 글이 들어가 있다. 맺음에는 인간 관계와 사랑에 대한 마침표가 있다.
결국 책을 다 읽어도 내가 뭘 읽었는지 알 수가 없는 책이다.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사랑을 찬미하지 않으며, 글쓰는 작가의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 힘든 점만을 이야기한다.
군대에 가면 누구나 자신이 있는 보직이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이는 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건 단지 그런 힘듬을 견뎌 낼 수 있게 해주는 말들이 아닐까? 우리가 버틸 수 있게 만드는 말들. 군대라면 전역이 될 것이고, 글을 쓸 때는 누군가가 보낸 잘 읽었다는 말이 될 것이며,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연인이 해주는 사랑해 라는 말일 것이다.
그가 가지고 가는 이 마지막 모호함 마저도 그의 글이 대개 잘 설계되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내게 힘이 되고 지금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놓친 부분이 뭔지 하나하나 곱씹어 보고 싶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너무 스토리에 집중해서 읽은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고, 두 번째 읽었을 때는 그의 감정 하나하나를 되집어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