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여인의 키스-마누엘 푸익
‘거미여인의 키스’라는 작품은 책보다는 연극이나 영화가 더 유명한 작품인 듯하다. 검색을 해도 책에 관한 내용보다는 영화나 연극에 대한 후기나 블로그가 먼저 뜨는 것을 보면. 그만큼 이 책의 작품은 연극의 시나리오 같은 느낌을 많이 전달한다. 이야기의 전체적 구조는 하나의 큰 이야기가 있고, 그 사이사이 이야기 속 이야기들이 대여섯 편 정도 들어있다.
이 책에서 실제적으로 여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무대 역시 사랑이야기와는 조금 거리가 멀어보이는 교도소 안이다. 여기서 몰리나라는 미성년자 성범죄자인 게이와 정부에 반하는 게릴라 혁명군 발렌틴이라는 두 인물이 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서로 비슷한 것이 하나도 없이 이 두 사람. 하지만 그 두사람은 교도소라는 강제적인 공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공간에 룸메이트로 지내게 된다.
둘은 매일 밤 잠이 오지 않는 다는 이유로 영화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몰리나가 자신이 봤던 영화를 발레네틴에게 들려주는 꼴이다. 처음으로 들려준 이야기는 검은 표범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떤 여자가 자기는 키스를 하면 검은 표범으로 변한다고 믿는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어쩔 수 없이 다가가는 것을 꺼린다.
몰리나가 들려주는 영화이야기 어디에서도 거미여인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거미여인은 과연 누구를 가르키는 걸까? 사실 이 내용은 스포를 담고 있어서 조심스럽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이 책을 다 읽었다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진행하자면, 그 거미여인은 몰리나 바로 자신을 상징하는 대목이다.
동성애자인 몰리나는 자신이 언제나 여자의 젠더성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몇몇 연극에서는 여장남자의 모습으로 몰리나를 묘사하기도 한다. 몰리나가 여성성을 상징한다면 그럼 남성성을 상징하는 것은 누굴까? 바로 발렌틴이다. 발렌틴은 게릴라를 했던 반정부체제 인물이다. 그렇기에 괄괄하기도 하며 뭔가 거칠다. 완전 다른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있으면 결국 다투게 된다. 처음에 이 둘은 서로 친해지리라는 것을 예상하기 어려웠다. 몰리나는 엄청 예민했고, 발렌틴은 쉽게 비아냥 거리는 껄렁쇠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점차 발렌틴이 바뀌기 시작한다. 바로 몰리나의 영향으로 그 둘은 교도소라는 작은 공간에서 서로 의지하며 결국에는 하나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헤어질 떼, 발렌틴이 몰리나를 보고 이렇게 이야기 한다.
‘넌 거미여인이야. 네 거미줄에 남자를 옭아매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생각을 해보면, 교도소는 하나의 질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발렌틴의 남성적인 이미지는 마치 정자를 의미하는 듯하다. 또한 몰리나는 난자의 느낌이다. 이 둘은 서로 만나서 결국 몰리나가 교도소를 나가게 된다. 마치 아기를 품고 출산을 하듯이. 어찌보면 이런 생각을 하도록 일부로 작가가 설계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책 하단에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을 가지고 동성애를 설명하는 부분이 길게 나온다. 마치 프로이트의 이론처럼 캐릭터 한 명 한 명을 비유해서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생명의 탄생에 대해서 비유적으로 나타난 거라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소설을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20대 여성이 가장 많이 검색한 도서라고 나온다. 정말 20대 여성이 이 책을 많이 검색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들은 몇몇 보인다. 그 중 하나가 영화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영화 이야기는 한 다섯 여섯 편 나온다. 그래서 그렇게 영화 이야기만 따로 읽으면 마치 단편소설집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영화 이야기는 이 책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작가가 원래 시나리오를 공부했던 인물이라 그렇게 영화이야기를 넣은 것도 있겠지만 가만히 흐름을 살펴보면 이 영화 이야기는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우선 처음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하는 영화이야기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을 거부한다. 마음은 끌리지만 그것을 애써 진정시키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소설 후반부에 갈수록 영화 속 주인공은 정말 금방 사랑에 빠져버린다. 눈만 마주쳐도 사랑하게 되고, 심지어는 그 사람을 위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깊게 살펴볼 대목은 바로 이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가 누구이냐 하는 점이다.
똑같은 이야기라도 누가 그 말을 들려주냐에 따라 의미는 180도로 달라질 수가 있다. 동성애자인 몰리나는 어쩌면 처음부터 남성다운 발렌틴한테 끌렸을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가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하며 자신을 자제한 것이 영화 이야기에서 얼핏 나온게 아닐까? 그와 같은 맥락이라면 소설 후반부에 나오는 여인처럼 이제는 그의 손짓 하나 말 한마디에도 더이상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을 느끼게 되버린게 아닐까?
여담이지만 몰리나와 발렌틴이 서로 관계를 맺고나서는 더이상 영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또한 이 소설에서는 행동 묘사보다는 대본처럼 대화문만 계속 이어져 있다. 그래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그들의 말투나 어휘에서만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몇 페이지를 혼자 말하는 영화설명 부분은 몰리나의 내면이 반영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지 않을까?
서로 맞지 않을 듯한 두 사람이 서로를 그렇게 못잊을 정도로 찾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한 통의 편지가 아니었을까 한다. 발렌틴 앞으로 온 동지들의 편지는 지금 현재 교도소에 갖혀 있는 발렌틴의 처지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 와중에 몰리나는 이제 석방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예전에 생각을 나누었던 동지들과는 더이상 연락할 수 없고, 교도소에서 티격태격했지만 그래도 서스름 없이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했던 동기가 나간다고 하니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더군다나 발렌틴은 몹시 아픈 상태였다. 그리고 몰리나는 매번 면회를 하고 오면 맛있는 음식을 그에게 주었다. 발렌틴은 몰리나에게 줬던 건 하나도 없는데.
신체적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발렌틴은 자신도 모르게 몰리나에게 의지하고 싶어졌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강하고 뚝심있으며 생각이 확실한 인물이라도 그런 상황에 나약해지지 않기란 쉽지 않을것이다. 결국 사람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거미는 자신의 거미줄에 걸린 먹이감을 한번에 죽이지 않는다. 천천히 그가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거미줄을 이용해 감아버린다. 그런 점에서 정말 몰리나는 거미여인에 가깝다.
이 책은 40년 전에 쓰여진 동성애와 게릴라의 이야기다. 물론 그 나라에서는 금지작품으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 두 소재도 소재지만 인간의 감정변화의 관점에서 읽으면 또 다르게 읽히지 않을까? 근 370쪽의 긴 페이지지만 그만큼 비유와 생각거리로 가득한 작품이 또 이 작품이지 싶다.